경제
해프닝으로 끝난 삼성그룹 총장 추천제…왜?
입력 2014-01-28 11:07  | 수정 2014-01-28 15:22

삼성그룹이 대학총장 추천제를 결국 전격 철회했다. 대학을 서열화한다는 비판과 해당 대학과 소통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시행하고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삼성은 삼성직무적성검사(SSAT)에 해마다 20만명이 지원하고 삼성고시 문제집이 등장하는 등 사회적 비용이 지나치게 높아지는 것을 해결하겠다고 야심차게 대책을 내놨지만 예상치 못한 비난에 결국 전격 철회를 선택했다. 일각에서는 이같은 사태를 예상치 못한 삼성측의 판단에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SSAT '벼락치기' 막겠다" 시도는 좋았지만...
논란을 불러 일으킨 삼성의 신입사원 채용 개선안은 지난 15일 전격 발표됐다. SSAT에 거의 100% 의존했던 기존 공채 대신 서류전형을 부활해 1차로 걸러내고 전국 200여 대학 총장에게 인재 추천권을 부여해 서류전형을 면제해주는 것이 핵심이다.
삼성은 이를 통해 SSAT가 이른바 '삼성고시'로 불리며 연간 20만명이 지원하고 풀이 문제집까지 등장해 삼성 취업 사교육 시장이 형성되는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박용기 삼성전자 인사담당 전무는 "과거에는 표준화된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기출문제를 가르치는 학원까지 생기는 등 사회적 비용이 과다하게 발생했다"며 "서류전형은 스펙의 나열이 아니라 직무 영역에 얼마나 집중돼 있는가를 보는 것이기 때문에 사교육으로 준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대학 총장 추천제에 대해서도 삼성측은 인재 선발의 기능을 대학과 기업이 협업하는 새로운 시도로 대학 사회에서 인정받는 역량있는 인재의 추천을 통해 면학분위기 유도와 우수인재 확보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즉 SSAT '벼락치기'를 통해 한번에 입사하기보다 대학 생활을 충실히 이행한 인재를 뽑겠다는 설명이다.
◆기업에 의한 대학 서열화 비판 제기
그러나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200여 대학 총장의 인재 추천권이 각 대학별로 다른 것으로 나타나자 대학 차별에 대한 지적이 제기된 것이다.
삼성그룹이 각 대학에 추천 인원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진 지난 24일 삼성이 대외비를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별 추천 배정 인원 현황이 속속 공개됐다. 성균관대가 115명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된 가운데 서울대와 한양대가 110명, 연세대와 고려대가 100명씩 배정됐으며 경북대도 100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포항공대와 KAIST는 인원을 밝히지 않아 한때 배정 인원이 전무하다는 설까지 제기됐다.
게다가 추천 인원 배정에 대학측과 아무런 협의가 없었던 것으로 밝혀지자 너무 일방적인 것이 아니냐는 비난까지 제기됐다.
이에 대해 대학가에서는 기업에 의한 대학 서열화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4년제 대학의 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는 오는 2월 5일 예정된 정기 총회에서 삼성의 대학총장 추천제에 대한 대응 방안을 안건으로 올려 논의할 것이라고 27일 밝혔다. 대교협측은 삼성이 자의적으로 추천 인원을 배정함으로써 대학의 서열화를 조장하고 있다는 총장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쳐 논의키로 했다고 말했다.
지병문 전남대 총장도 이날 간부회의에서 전남대에 영남권 대학의 절반도 안되는 인원을 배정한 것은 분명한 차별이라고 비판했다.
◆정치권 등 각계 비난 잇달아
정치권에서도 총장 추천제에 대한 비판에 가세했다. 한정애 민주당 대변인은 27일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현안 브리핑을 통해 "대학총장 추천제 인원 할당은 대학 서열화를 부추기고 특정 재벌에 대한 대학의 종속으로 귀결될 것"이라며 총장 추천 인원 할당을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도 이날 "삼성이 대학을 자신들의 입맛과 기준대로 재배열하겠다는 것은 참으로 오만한 발상"이라고 비난했다.
삼성의 대학총장 추천제가 뜨거운 이슈가 되면서 네티즌들의 비난도 잇달았다. 지난 27일 포털 다음의 실시간 검색어는 '삼성 XX대'와 같은 검색어가 1위부터 10위까지 모두 오르는 현상이 나타났다. 네티즌들은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삼성이 대학 위에 군림하려 하며 이제 대학생들이 총장 눈치도 봐야 하느냐는 등의 의견을 표출했다. 조국 서울대 교수도 페이스북을 통해 "대학 위에 삼성이 있음을 공표한 오만방자와 방약무인은 전 세계에 유래가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삼성, 여론에 밀려 결국 철회…행보 지켜봐야
삼성은 이같은 비난에 당혹해하며 27일까지 진화에 주력했다. 삼성측은 대학 총장 추천제가 학교 생활에 충실한 인재를 뽑기 위한 것이었을 뿐이며 대학별 할당 기준도 높은 성과를 내고 성실하게 일한 기존 입사자 출신 대학을 고려했을 뿐 어떤 외부 요인도 개입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비난이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자 결국 삼성은 대학총장 추천제와 서류전형 부활 등이 포함된 신입사원 채용제도 개선안을 전격 철회했다. 삼성 사교육 시장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없애려다 권위적이라는 이미지만 덧붙인 셈이다. 게다가 이같은 문제를 미리 예측하지 못했다는 상황 파악 능력에도 물음표가 붙었다.
이인용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은 28일 브리핑에서 총장추천제에 대한 반응에 대한 질문에 "총장추천제는 겉으로 드러나는 스펙이 아닌 지원자의 희생정신, 인성 등 우리가 찾지 못하는 부분을 학교에서 찾아서 추천해 줬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도입한 것이었지만 생각하지 못했던 논란이 일어나면서 이 제도를 운영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철회로 삼성의 신입사원 채용제도가 다시 SSAT 중심으로 돌아갈지는 미지수다. 삼성측은 일단 올해상반기 채용은 기존 제도대로 시행하겠다고 밝혔지만 채용제도 개선이란 과제는 계속 남아있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로 삼성은 SSAT 사교육 시장 해제와 권위적 이미지 타파라는 두가지 과제를 안게 됐다. 삼성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앞으로의 행보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매경닷컴 김용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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