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중국에서 난징대학살을 저지른 뒤 시신 처리 작업에만 수개월이 걸렸다는 내용의 기밀문서가 공개됐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랴오닝성의 기록보관소는 22일 난징대학살과 관련된 일제 남만주철도회사의 기밀문서를 공개했다.
이 기밀문서에는 1937년 12월 13일 일본군이 중국 난징을 점령한 뒤 남만주철도회사의 상해 사무소가 ‘난징특무반을 현지에 파견해 침략활동을 적극 지원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어 ‘난징특무반의 성과에 대해서는 약 600여명으로 구성된 사채 매장대가 매일 사체를 땅에 묻고 있는데 2월 말까지 이미 5000구를 매장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같은 해 3월에는 3월 15일까지 3만 1791구의 사체를 난징 일대의 장소에 수용했고 매일 200~300여명의 일꾼이 필요했다”고 적었다고 밝혔다.
난징대학살은 1937년 일제가 난징에 남아있던 시민들을 닥치는 대로 끌고 가 성 외곽이나 양쯔강 하구에서 기관총 세례를 퍼부어 무차별 살인을 한 사건으로,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만여 명에 이르는 단위의 사람들이 희생됐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랴오닝성의 기록보관소는 22일 난징대학살과 관련된 일제 남만주철도회사의 기밀문서를 공개했다.
이 기밀문서에는 1937년 12월 13일 일본군이 중국 난징을 점령한 뒤 남만주철도회사의 상해 사무소가 ‘난징특무반을 현지에 파견해 침략활동을 적극 지원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어 ‘난징특무반의 성과에 대해서는 약 600여명으로 구성된 사채 매장대가 매일 사체를 땅에 묻고 있는데 2월 말까지 이미 5000구를 매장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같은 해 3월에는 3월 15일까지 3만 1791구의 사체를 난징 일대의 장소에 수용했고 매일 200~300여명의 일꾼이 필요했다”고 적었다고 밝혔다.
난징대학살은 1937년 일제가 난징에 남아있던 시민들을 닥치는 대로 끌고 가 성 외곽이나 양쯔강 하구에서 기관총 세례를 퍼부어 무차별 살인을 한 사건으로,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만여 명에 이르는 단위의 사람들이 희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