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 '단일화'는 필승 카드인가? 독사과인가?
입력 2014-01-21 12:06 
선거가 다가오면 야권은 늘 단일화의 유혹에 빠집니다.

40%의 확고한 보수층을 기반으로 두고 있는 새누리당을 꺾기 위해서는 야권이 하나로 합쳐야만 한다는 논리가 언제나 등장합니다.

과거 DJP연합과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로 정권을 잡은 추억이 있는 터라 더더욱 그런가 봅니다.

정말 단일화는 야권의 필승카드일까요? 아니면 독사과일까요?

박원순 서울시장과 안철수 의원의 양보론으로 '단일화' 얘기가 다시 불거지고 있습니다.


안철수 의원이 '이제는 민주당이 양보할 차례라는 말'에 '100번 양보할 수 있다고'한 박원순 시장의 속내는 뭘까요?

박 시장은 오늘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서울시장이라는 자리는 나 개인의 것도 아니고 또는 어떤 정치세력의 것이 아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답이 저절로 나온다고 생각한다"

'나 개인의 것이 아니다'라는 말은 '내가 반드시 서울시장이 돼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뜻이겠죠.

'어떤 정치세력의 것이 아니다'라는 말 역시 특정 세력이나 정파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겠죠.

서울 시장 자리는 누가 양보하고, 양보받는 그렇게 흥정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뜻이겠죠.

박 시장의 말을 좀 더 들어보죠

"이것(양보론)은 정말 국민과 유권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얘기는 앞으로 하지 않았으면 한다"

다시 말해 '이번에는 양보받을 차례'라고 말한 안철수 의원에게 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좀 더 해석한다면, 박 시장은 아마도 시민경선을 통한 후보 단일화를 염두에 둔 듯합니다.

시민의 것인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놓고 박 시장과 안 의원 쪽 대리인이 시민 참여 경선을 통해 단일 후보를 만들자는 그런 뜻이 아닐까 합니다.

만일 박원순 시장과 안철수 의원 쪽이 후보 단일화 경선을 한다면 누가 이길까요?

안철수 의원이 직접 나서지 않는 한 박 시장이 우세할 겁니다.

이걸 아는 안 의원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박 시장에 필적할 만한 후보를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단일화 경선에 응할까요?

그렇다고 현직 시장에게, 5% 지지율도 안될 자신의 대리인에게 후보직을 그냥 양보하라고 했다가는 아마 상당한 역풍을 맞을지도 모릅니다.

2011년 가을처럼, 자신이 5% 지지율도 되지 않는 박원순 시장에게 통 크게 양보한 것처럼, 안 의원은 박 시장이 순순히 후보직을 양보하길 바라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당시 얘기를 좀 더 볼까요?

▶ 인터뷰 : 안철수 /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2011년 9월6일)
- "저에게 보여주신 기대 역시 온전히 저를 향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리더십에 대한 변화의 열망이 저를 통해 표현된 것이라 여깁니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 선거 출마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 인터뷰 : 박원순 / 희망제작소 상임이사(2011년 9월6일)
- "좋은 세상,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일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기 힘든 이런 결론을 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박 시장의 말을 들어보면, 박 시장이 그때 안철수 교수가 했던 것처럼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민주당을 탈당해 안철수 의원에게로 가는 겁니다.

어제 시사마이크에 출연했던 배병휴 경제풍월대표의 말입니다.

▶ 인터뷰 : 배병휴 / 경제풍월(어제 시사마이크)
- "박원순 시장이 시민에게 도움이 된다면 100번 양보하겠다는 정치적 발언을 해석하면, 민주당을 나와서 안철수 신당으로 서울시장에 입후보하는 것이 안철수 의원에게 빚을 갚는 것이라고 해석돼요. 만약에 박원순 시장이 민주당을 떠나서 저리 가면 민주당이 입에 거품 물지 않겠어요."

그러나 박 시장이 민주당을 탈당하지 않겠다고 수차례 언급한 터라 이 말을 스스로 뒤집고 안철수 의원에게 갈 가능성은 극히 낮습니다.

그랬다가는 박 시장 역시 '철새'라는 여론의 거센 역풍을 맞게 될 테니까요.

안철수 의원의 고민이 깊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서울 시장에 후보를 내긴 해야 하는데, 박원순 시장과 단일화를 하자니 승산 가능성이 없고,

서울 시장에 아예 후보를 내지 않자니, 새로 꾸릴 신당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고,

사면초가입니다.

민주당은 안철수 의원과 단일화를 하고 싶은 눈치가 역력합니다.

전병헌 원내대표의 말입니다.

▶ 인터뷰 : 전병헌 / 민주당 원내대표(오늘)
- "새 누리 정권에 대한 견제에 동의한다면 정당과 개인 막론하고, 일대일 구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점 다시 한 번 강조한다."

120석이 넘는 제1야당의 처지가 참으로 궁색한가요?

홀로 선거를 치르지 못하고,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는 새정추와 손을 잡자고 저리 매달리다니요.

이런 논리에서 안철수 의원보고 민주당에 입당하라는 요구도 많습니다.

박지원 의원의 말입니다.

"영남에 가서 어려운 싸움을 하라는 게 민심인데, 편한 노원에서 배지 달고, 야권이 이기는 호남에서 먹겠다고 하니 당선만 찾아다니는 구정치이다."

"새누리당을 63빌딩이라고 하면 민주당은 5층 연립주택이다. 안철수 의원은 친노가 무섭다고 해서 그 앞에 구멍가게 차려놓고 한다고 하면 되겠는가. 빨리 들어와야 한다"

안철수 의원을 압박하면서도 손을 내미는 모양새입니다.

새누리당은 민주당과 안 의원의 연대든, 아니면 안 의원의 민주당 입당은 어느 것도 원치 않습니다.

▶ 인터뷰 : 홍문종 / 새누리당 사무총장
- "서울시장 자리가 전유물 되는 것처럼 양보하라는 건 서울시민에 대한 오만한 발상이자 김치국 마시는 것 어떻게든 야합할 생각하는 건 구태정치와 다를 바 없다."

새누리당은 그러나 내심 그런 연대에 대비한 선거전략을 짜고 있겠죠.

이인제 의원의 말입니다.

"결국은 (야권이) 단일 대오로 갈 것이기 때문에 그걸 전제하고 우리 새누리당이 선거 전략을 짜야 한다."

야권의 단일화가 필승의 카드일지, 아니면 독사과일지는 아직 모릅니다.

선거공학적으로 이길 수 있다고 해서, 국민의 마음마저 얻는 건 아닐 겁니다.

선거의 필승카드는 아마 단일화라는 형식이 아니라, 국민의 마음을 잘 살피고, 어루만지는 실천적 행동이지 않을까요?

그게 쌓이고 쌓이면, 국민은 승리라는 선물을 안겨줄 겁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신민희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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