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3년차 직장인 황지훈(31·가명)씨는 요즘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다. 동종 업계에 경력직으로 원서를 냈다가 현 직장에 평판 조회가 들어오는 바람에 이직을 준비한다는 소문이 부서에 파다하게 퍼졌기 때문. 황씨는 "결국 이직 성공도 못했는데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도 왠지 배신자로 보는 것 같아서 출근할 때마다 죽을 맛이다"며 한숨만 푹푹 쉬었다.
◆ 취업준비하는 직장인들, 주경야독이 따로 없네
중소기업 2년차 회사원인 최호진(28·가명)씨는 회사 몰래 이직을 아니 '신입사원 입사'를 준비하고 있다. 남자치고는 꽤 빠르게 취업에 성공한 편이지만 최근 대기업에 입사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내심 부러운 마음이 커졌기 때문이다.
최씨는 "처음에는 조금 빨리 취업하는 게 더 좋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늦더라도 대기업에 입사하는 게 좋은 것 같다"며 "일은 똑같이 힘든데 처우가 크게 차이나는 것도 입사원서를 새로 쓰게 된 이유"라고 밝혔다.
최씨는 주말을 이용해 취업 스터디에 한참이다. 회사일로 노곤하지만 장기적으로 생각했을 땐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대기업에 입사하는 게 낫다는 생각에 달콤한 휴식을 반납했다. 같은 스터디에도 직장에 다니면서 신입사원 원서를 쓰는 동료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4년차 직장인 박지윤(29·가명)씨도 이직하기 위해 밤마다 책과 씨름하고 있다. 대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한 박씨는 전공을 살려 작은 바이오기업에 취업했지만 나이를 하나 둘 씩 먹으면서 좀 더 안정적인 직업에 눈을 돌리고 있다.
그렇게 선택한 것이 바로 약사다. 박씨는 평일에는 퇴근 후 저녁 시간을 이용해 인터넷 강의를 듣고 주말에는 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있다.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도 박씨의 선택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박씨는 "아무래도 결혼과 육아를 고민하면서 평생 할 수 있는 직업을 찾게 됐다"며 "2년에서 3년 정도 장기적으로 보고 입시 준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에 근무하고 있다는 박씨의 남자친구는 "대기업 정년이 점차 빨라지고 있기 때문에 결혼 후 멀리까지 봤을 때 둘 중 한명이라도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는 건 중요한 일"이라며 결혼 후에도 학업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 직장인 10명 중 9명 "회사 옮기고 싶다"
실제로 최근 취업포털 사람인이 직장인 5151명을 대상으로 이직 의향에 대해 조사한 결과에서도 직장인 10명 중 9명은 이직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들 중 61%는 실제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직을 원하는 이유로는 '연봉이 만족스럽지 못해서'(38%, 복수응답)를 첫 번째로 꼽았다. '근무 조건이 열악해서'(35.4%)가 바로 뒤를 이었다. 계속해서 '스트레스 강도가 센 편이라서'(26.4%), '오래 일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서'(21.4%), '직장에 비전이 없어서'(18.5%), '일에 흥미를 느끼지 못해서'(17.8%), '직무가 적성에 맞지 않아서'(14.8%) 등의 응답이 이어졌다.
이처럼 이직을 결심하는 이유에 '연봉'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지만, 남들이 부러워하는 연봉에도 불구하고 회사를 옮기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다.
국내 대기업 중 신입사원 연봉이 다섯손가락에 든다는 회사에 다니는 김진우(31·가명) 사원이 그러한 예다.
남들이 들으면 하나같이 부러워 할만한 연봉에, 성과급까지 받지만 정작 김씨는 회사를 다니는 게 고역이다. 매일 이어지는 야근과 주말 근무에 몸이 남아나질 않기 때문이다.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근무와 새벽 출근을 하다보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는 채 일주일이 가고, 여자친구와의 데이트에서도 피곤하다고 하품만 하기 일쑤다.
김씨는 "내가 이직하고 싶다고 하면 다들 배부른 고민이라고 하지만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 않느냐"며 "소소한 일상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 전혀 없다"고 혀를 내둘렀다.
한편 지난해 기업 490개사의 평균 이직률은 15.8%로, 1년차 이하 신입의 이직이 53%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성별과 결혼여부에 따라서는 각각 남성(69.3%)과 미혼(79.2%)이 이직을 많이 한 것으로 집계됐다.
직장인들이 회사에 밝힌 이직 사유로는 연봉 불만족(24.2%)과 업무 불만족'(20.3%)이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김잔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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