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 "서울 탈환" 여당 건배사, 박원순 "소통은 설득"
입력 2014-01-08 11:28  | 수정 2014-01-08 16:42
어제 저녁 청와대는 모처럼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고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새누리당 의원과 당원협의회 위원장 250여명을 초청해 만찬 회동을 가졌습니다.

신년 기자회견과 마찬가지로 의원들과 당협위원장들과 만찬은 취임 후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박 대통령은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와 덕담을 나누고 1대1 기념촬영도 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오후 6시로 예정된 만찬이 50분 늦게 시작됐습니다.

신년 기자회견을 마친 박 대통령은 한결 가벼운 마음이었을 것 같습니다.

박 대통령의 말입니다.


"여러분과 소통하다 보니 저녁 식사가 늦어졌다. 여러분과 만나는 통로를 더욱 넓히겠다"(박근혜 대통령.어제 청와대 만찬)

박 대통령이 앉은 헤드테이블에는 황우여 대표와 최경환 원내대표, 서청원, 정몽준, 이인제, 민병주, 이현재 의원 등이 앉았다고 합니다.

건배사는 '통일은 대박'이었습니다.

돌아온 친박 좌장인 서청원 의원이 건배사로 '통일은'을 선창하자, 참석자들이 '대박'이라고 화답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헤드테이블에서는 통일 얘기가 많이 나왔다고 합니다.

특히 정몽준 의원은 이명박 정부때 내린 5.24 조치의 해제를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에 대한 신규투자를 금지한 5·24조치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정몽준 새누리당 최고위원. 어제 만찬)

"북한이 약속을 안 지켜서 문제다. 북한에 대한 인도적인 지원은 앞으로도 계속하겠다"(박근혜 대통령)

어제 만찬에서는 통일과 안보 얘기가 주로 나왔지만, 흥미로운 건배사도 있었다고 합니다.

서울시당 소속 의원들이 건배사로 '서울 탈환'을 외쳤다는 겁니다.

박 대통령은 웃음으로 답했다고 합니다.

분위기가 상상이 되네요.

그런데 이 말을 듣고 있었던 정몽준 최고위원은 어떤 표정이었을까요?

서울시장 차출설 얘기가 끝없이 나오는 터라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을 법합니다.

헤드테이블에 앉았던 서청원 의원은 청와대 만찬에 앞서 지역구인 경기도 화성에서 기자회견을 먼저 하고 왔습니다.

- "(2011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지고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번에) 경기도에서도 지면 박근혜 대통령이 어려움을 겪게 된다."(서청원 의원. 어제)

- "김문수 지사가 3선에 도전해야 한다"(서청원 의원. 어제)

새누리당 지도부로서는 정몽준, 김문수, 남경필 등 경쟁력 있는 인적 자원은 모두 총동원하고 싶은 눈치입니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한사코 고사하고 있습니다.

정몽준 의원과 김문수 지사는 대권에 꿈이 있고, 남경필 의원 역시 '내가 나설 선거가 아니다'라며 뒤로 물러선 상태입니다.

'서울 탈환', '경기 승리'를 외치는 새누리당 의원들의 요구를 이들이 언제까지 모른 척 할 수 있을까요?

새누리당 의원들이 서울 탈환을 외치는 동안, 박원순 시장을 소통을 얘기하며 '서울 사수'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박 시장 역시 어제 출입기자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박 대통령도 소통을 얘기했는데, 박 시장이 생각하는 소통은 무엇이냐는 기자 질문에 박 시장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은 있다. 시민의 세금과 편의는 양보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범위 안에서 협상으로 주고 받으면서 서로를 설득해야 한다"(박원순 서울시장. 어제 기자간담회)

서로를 설득하는 것이 소통이라고 했습니다.

비정상적인 관행과 대화하는 것은 소통이 아니라고 했던 박 대통령은 은근히 비판한 것일까요?

박 대통령의 소통과 박원순 시장의 소통은 분명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통일은 대박'이라는 박 대통령 생각에도 박 시장도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뉘앙스 차이는 또 있었습니다.

"(통일은 대박이라는 말에)100% 공감한다. 독일 통일이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은 것처럼 대박은 조금씩 준비해야 한다.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통일은 너무 위험하다. 충격을 준다. 점진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박 대통령 역시 당장 통일을 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통일의 꿈은 이뤄질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통일을 적극 공론화하는 것은 박 시장과는 조금 다른 듯합니다.

남재준 국정원장이 2015년 통일은 언급한 터라, 박 대통령이 생각하는 통일 시기는 박원순 시장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운 시일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규제와 관련해서도 박 대통령과 박 시장은 생각이 많이 다릅니다.

어제 만찬에서 박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경제는 뛰라고 하면서 불필요한 규제로 발목을 잡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 과감하게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박근혜 대통령. 어제 만찬)

경제혁신 3개년 계획과 일자리 창출의 핵심이 '규제 완화'를 통한 '성장'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 셈입니다.

그러나 박 시장은 달리 생각하고 있습니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선 투자가 필요하고, 투자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때로 규제가 필요한 것도 있다."

박 대통령의 말은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에, 그리고 박 시장의 말은 '규제가 필요하다'는 점에 각각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시장이 생각이 같은 듯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쨌든 새누리당은 박 대통령의 인기를 등에 업고 서울 탈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박원순 시장은 꼭 '서울 사수'가 아니라 하더라도, 박근혜 대통령과 대립점을 만들며 차별화하고 있습니다.

지방선거는 지역 일꾼을 뽑는 선거지만, 이런 관점의 차이때문에 흥미로운 정치 대결의 장이 되기도 합니다.

6월 지방선거는 생각보다 그리 먼 일이 아닌 듯합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신민희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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