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봄, 사납고 내성적인 성격의 9살 소녀가 동생 2명의 손을 잡고 서대문구의 한 아동양육시설로 들어왔다. 소녀의 부모는 키울 형편이 되지 않는다며 아이 3명을 서대문구 소재 구세군 서울후생원에 맡긴 것이다. 10년 후 이 소녀는 브라스밴드를 이끄는 악장이 됐고 트롬본 전공으로 서울대 음대에 당당히 합격했다.
구세군 서울후생원 브라스밴드의 악장 최슬기 양(19.신진자동차고)양은 27일 "브라스밴드 덕분에 꿈을 찾았고 잘 웃는 성격으로 바뀌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어릴 때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최 양은 서울후생원에 들어오고 나서 운영기관인 구세군의 상징인 브라스밴드에 자연스레 합류했다. 중학교 3학년 때 트롬본을 전공해야겠다고 결심을 했지만 돈이 많이 드는 예술고등학교에 갈 형편이 되지 않았다. 대신 브라스밴드 선배들의 추천으로 악단이 있는 신진 자동차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최 양은 서울 시립교향악단이 서울후생원 브라스밴드 부원들을 지도한 '브라스아카데미'를 통해 악단의 트롬본 연주자 롬제이슨 크리미(Jason Crimi)를 알게 됐고, 그의 '재능 기부'로 개인레슨도 5년간 받았다.
서울대 합격 소식은 기뻤지만 앞으로 유학도 가서 실력 있는 연주자가 되고 싶은 최 양은 앞으로 들어갈 비용을 어떻게 마련할지도 걱정이다.
서울후생원이 있는 서대문구 사회복지협의회는 최양의 합격 소식을 듣고 장학금 300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10년 전 자신과 동생들을 떠난 부모님을 다시 만나고 싶으냐는 질문에 주저함 없이 "만나고 싶다"고 했다.
최양은 "지난 8월에 가족관계부를 떼 보고 부모님이 어딘가에 잘 계시겠구나 짐작만 했을 뿐 주소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며 "헤어진 후 연락이 두절돼 이제는 얼굴조차 가물가물하지만 다시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윤진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