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 고모부 끌어낸 '공포 정치', 피 바람 부는 북한
입력 2013-12-10 11:35  | 수정 2013-12-10 17:02
어제 우리는 매우 충격적인 한 장의 사진을 봤습니다.

바로 이 사진인데요.

김정은이 북한의 2인자이자 고모부인 장성택을 체포해 가는 모습입니다.

8일 평양에서 열린 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장성택을 끌어내는 모습입니다.

이 자리에 있던 많은 당과 군의 간부들은 장성택이 끌려가는 모습을 놀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단 한 사람만 놀라지 않고 묵묵히 그 모습을 쳐다봤습니다.

바로 김정은입니다.


연단 위에서 김정은은 장성택이 끌려가는 모습을 바라봤고, 주변 사람들이 끌려가는 장성택을 어떻게 쳐다보는지도 똑똑히 바라봤습니다.

김정은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자 봐라! 2인자든 고모부든 나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은 저렇게 된다. 다들 똑똑히 봐라'

뭐 이런 생각을 했을까요?

장성택을 많은 사람 앞에서 끌어내고, 또 그 모습을 TV를 통해 공개하는 것은 다분히 의도적입니다.

적어도 고모부에 대한 일말의 정이 남아 있다면 이렇게 모욕을 주는 방식을 택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조선중앙TV가 전한 장성택의 체포 이유를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북한 조선중앙TV (12월9일)
- "정치국 확대회의에서는 먼저 장성택이 감행한 반당 반혁명적 종파행위와 그 해독성 반동성이 낱낱이 폭로되었다. 장성택은 권력을 남용하여 부정부패 행위를 일삼고 여러 여성과 부당한 관계를 맺었으며 고급식당의 뒷골방들에서 술놀이와 먹자판을 벌였다. 사상적으로 병들고 극도로 안일해이된데로부터 마약을 쓰고 당의 배려로 다른 나라에 병 치료를 가있는 기간에는 외화를 탕진하며 도박장까지 찾아다니었다. "

이 발표만 보면, 장성택은 파렴치범으로 전락했습니다.

실제로 장성택이 그 같은 일들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김정은은 고모부를 심하게 말해 '인간 쓰레기'로 만들어 불명예 퇴진시켰습니다.

북한이 종파 행위라는 죄목으로 대대적 숙청을 한 것은 1967년 김일성이 같이 항일 빨치산 활동을 했던 동료들을 숙청한 '갑산파' 사건 이후 46년 만입니다.

숙청 대상 역시 장성택 일당이라고 한 걸 보면 장성택 측근들이 대거 숙청당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북한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숙청은 1997년 이른바 심화조 사건입니다.

김정일이 '고난의 행군' 이후 200만~300만명이 굶어 죽은 것에 대한 책임을 물어 서관희 당 농업비서를 간첩으로 몰아 2만5천명을 숙청한 사건입니다.

어쩌면 이번 장성택 숙청은 그 규모를 뛰어넘을지도 모릅니다.

1970년대부터 북한의 2인자로 활동했던 장성택이기에 그의 측근은 수만명에 달할 것이라는 얘기도 들립니다.

장성택 체포 사진을 공개한 것은 그 피의 숙청의 전조일지 모릅니다.

김정은이 공포 통치를 강화하기 위해 앞으로 1년간은 피바람이 북한 전역을 뒤엎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 인터뷰 : 조선중앙TV(어제)
- "당의 영도에 도전하며 당과 국가의 이익, 인민의 이익을 침해하는 자는 그가 누구이든 직위와 공로에 관계없이 추호도 용서치 않을 것이다."

피바람을 피해 장성택을 지지했던 군인 200여명이 중국으로 도망갔다는 설도 있습니다.

체포된 장성택은 어떻게 됐을까요?

일부 탈북자들은 장성택이 이미 처형됐을 것이라 말하기도 하고, 일부는 호위사령부 내에 감금됐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장성택은 재기 불능이고, 16일 김정일 사망 2주기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김정은 장성택을 끌어낸 것이 정당화는 여론몰이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노동신문이 전한 북한 주민 반응입니다.

"당장이라도 장성택과 그 일당의 멱살을 틀어잡고 설설 끓는 보이라(보일러)에 처넣고 싶다" (평양화력발전연합기업소의 리영성 열관리공)

"그놈들을 한 놈도 남김없이 강선으로 보내달라, 저 전기로 속에 몽땅 처넣고 흔적도 없이 불태워버려도 직성이 풀리지 않겠다"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의 진영일 직장장)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는 장성택이 지난 1970년대 후반 김정일의 지시로 쫒겨와 '혁명화'라는 이름으로 노동을 한 곳입니다.

그곳 노동자들로부터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들었으니 참으로 기구한 운명입니다.

장성택이 이렇게 처참한 운명을 맞이 한 것은 단순한 부정 비리때문이 아니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북한이 밝힌 장성택의 죄목 가운데 한 부분을 보겠습니다.

"당의 유일한 영도를 거세하려 들면서 분파 책동으로...동상이몽과 양봉음위를 하고, 자기 환상을 조성하고 배신행위를 했다"(노동신문)

'거세' '동상이몽' '양봉음위' 이 말을 보면 장성택이 김정은을 몰아내기 위한 시도를 했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일각에서는 개혁 개방노선을 놓고 김정은과 사사건건 부딪히던 장성택이 김정은의 이복 큰형인 김정남을 옹립하려 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김정은의 둘째 형인 김정철이 장성택 제거를 주도했다는 말도 들립니다.

김정철이 장성택 제거를 위해 치밀하게 준비했고, 이런 장성택 숙청 계획에는 그의 아내인 김경희도 참여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런 설이 맞다면 중국과 마카오를 떠돌고 있는 김정남 역시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

김정남은 은근히 보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중국은 북한 내부의 일이라고 선을 긋고 있습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말입니다.

▶ 인터뷰 : 훙레이 / 중국 외교부 대변인
- "(장성택 숙청은) 북한의 내부 문제입니다. 중국은 북한의 우호적 이웃국가로서 북한의 안정이 유지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러나 중국은 북한에서 대규모 피의 숙청이 시작되고, 그 여파로 체제가 흔들리는 것을 원치 않을 듯합니다.

북한 내부 동요는 중국이 가장 경계하는 것이니까요.

그렇다고 피의숙청으로 김정은 1인 체제가 확고히 되는 것도 우리로서는 달갑지 않습니다.

이렇게 잔인한 젊은 지도자가 오랫동안 북한을 통치한다면, 북한 주민들의 고통의 시간은 더 길어질 것이고, 남북 통일은 더 요원한 일이 될테니까요.

국내 정치도 머리 아픈데, 북한 변수까지 커져 우리의 근심이 깊어만 갑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신민희 PD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