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 김정은 체제 2년…북한에서 무슨 일이?
입력 2013-12-04 11:47  | 수정 2013-12-04 17:35
2년 전인 2011년 12월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북한 은 대격변의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듯 했습니다.

▶ 인터뷰 : 조선중앙TV(2011년 12월19일)
-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신체적, 정신적 과로로 열차안에서 서거하셨다. 가장 큰 혁명의 선산 백두산에서 태어나 위대한 혁명가로 성장하신 김정일 위원장은 시대와 역사 앞에 위대한 위인이 지닐 수 있는 품격을 가지셨다."

많은 전문가들은 김정일의 사망과 뒤이은 김정은 체제의 등장을 불안한 시각으로 봤습니다.

운구차 옆을 걸어가는 앳된 김정은의 모습에서, 관 앞에서 오열을 터뜨리는 김정은의 모습에서 북한 붕괴의 전조를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2년이 지난 지금, 그러한 전망은 사실상 틀렸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30대의 젋은 김정은은 생각보다 훨씬 더 빨리 김정일 사후 북한체제를 안정시켰고, 권력을 다잡았습니다.

장성택 실각설도 그런 시각에서 봐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이 사진을 한 번 보시죠.

김정은 운구차 옆을 걸어가는 김정은과 7인.

당시 오른쪽에는 김정은과 장성택, 김기남 당비서,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이 섰고, 왼쪽에는 이영호 군 총참모장,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김정각 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이 섰습니다.

이들은 한마디로 김정은의 호위무사였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왼쪽에 섰던 군부 4인방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할아버지인 김일성과 같이 빨치산 활동을 했던 혁명 1세대, 이 군부 4인방을 제거하는데 앞장 섰던 인물이 바로 장성택이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장성택은 그렇게 김정은 체제의 기반을 공고히 하는데 큰 역할을 했지만, 마지막에 자신도 결국 쫓겨나는 운명을 맞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마치 토끼 사냥이 다 끝난 뒤 그 사냥개를 잡아먹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김정은은 이제 장성택이 없어도 북한을 쥐락펴락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걸까요?

장성택이 떠난 자리에는 최룡해가 들어섰습니다.

한때 장성택의 최측근이었던 최룡해는 결국 자신을 키워준 장성택을 밀어내는데 앞장서야 했습니다.

지난 7월 정전협정 60주년때 최룡해가 한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최룡해 /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7월 27일)
- "평화를 바란다면 전쟁에 준비되어야 합니다. 전체 인민군 장병들과 인민들은 총창 위에 평화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나라의 방위력을 강화하여 그 어떤 외세의 침략도 단호히 물리칠 수 있게 튼튼히 준비하며 앞날의 전투동원태세를 견지해야 하겠습니다."

최룡해를 중심으로 군에서는 리영길 군총참모장과 장정남 인민무력부장이, 당에서는 조연준 당조직지도부 제1부부장과 민병적 부부장, 박도춘 국방위 부위원장이 김정은을 떠받치고 있습니다.

이 새로운 측근그룹은 또 얼마나 버틸까요?

어쨌든 당분간 이 측근그룹을 통해 김정은은 당과 군부를 장악하고 집권 3년차 핵과 경제라는 병진노선을 더 힘있게 가져갈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실각한 장성택을 비롯한 그 세력들이 가만히 있을까요?

백두산 혈통으로서 장성택의 부인이자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가 가만히 있을까요?

만일 이들이 불만을 갖고 쿠데타를 일으킨다면 북한은 급변사태를 맞게 될 수도 있습니다.

현재로서 그 가능성은 낮지만 말입니다.

최근 북한은 남한 영화나 드라마를 시청한 주민 수십명을 공개처형하고, 문란한 예술단원들을 처형했다는 얘기가 들립니다.

주민들에게 사상 교육을 강화하고, 탈북루트에 대한 검열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혹시 모를 내부 반란의 싹을 미리 자르자는 거겠죠.

밖으로는 4차 핵실험과 또 다른 무력도발을 할지도 모릅니다.

김정은의 나이 30은 인생에서 가장 겁이 없고 무모한 도전을 즐기는 나이이니까요.

요동치는 김정은 체제 2년, 북한과 한반도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요?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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