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오의 시사 엿보기] '고성' 오간 4자회담, 그에 대한 몇가지 상상들!

어제 이어 오늘 아침에 열린 여야 4자 회담이 합의 없이 종료됐습니다.

꼬인 정국을 풀기 위해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민주당 김한길 대표에게 4자 회담을 제안했고, 민주당이 전격 수용하면서 일말의 기대를 가진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너무 이른 기대였을까요?

어제 열린 4자회담은 여야 대표들 간 고성이 오가고, 탁자를 치는 등 살벌한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조선일보가 보도한 내용을 중심으로 회담장 분위기를 구성해 봤습니다.

회담이 한 시간 쯤 지났을 무렵, 회담장에서 고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김한길 대표) "왜 자꾸 예산 얘기만 하십니까?"

(황우여 대표) "국민을 볼모로 잡자는 겁니까?"

(김 대표가 테이블을 '쾅'하고 내려치며)
"나 김한길이 관둬도 좋다 이거야. 누가 죽나 한번 봅시다"

이 분위기만 보면 정국을 풀자고 만난 것인지, 아니면 싸우려고 만난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입니다.

성과가 있다면, 서로가 속에 있는 얘기를 마음껏 했다는 겁니다.

새누리당은 4자 회담에서 '특검은 안된다'는 인식을 확실하게 심어줬다고 했고, 민주당은 이대로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결연함을 보여줬다고 합니다.

어제 회담을 마치고 나온 여야 대표의 얘기를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황우여 / 새누리당 대표(어제)
- "(예산안, 특검 때문에 대립각이 이어진 거죠?) 대변인들이 설명하기로 했으니까…. 여러가지로. 내일은 잘될거야. 자꾸 얘기하면서 하여간 풀어야죠(어제 끝난 뒤 나오면서)"

▶ 인터뷰 : 김한길 / 민주당 대표(어제)
- "갈 길이 멀지만, 내일 또 얘기해 보겠습니다. 자..갑시다"

황우여 대표의 얼굴에는 웃음이, 그리고 김한길 대표의 얼굴에는 뭔가 알듯 모를 듯한 표정이 읽힙니다.

고성이 오갔지만, 양당은 오늘 다시 만나기로 했습니다.

아무 성과 없이 끝났다면, 다시 만날 이유가 없는데, 다시 만나기로 했다면 뭔가 성과는 있었다는 뜻이 아닐까요?

혹시 특검이나 주요 현안에 대해 양당이 상당부분 의견 접근을 이룬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이런 발칙한 상상을 해봅니다.

혹시 어제 고성이 오가고 탁자를 내려치는 일련이 행동들이 혹시 쇼가 아니었을까?

각 당의 강경파를 달래기 위해, 또 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4명의 지도부가 정치적 쇼를 한 것은 아닐까?

사실 황우여 대표는 특검 논의를 위한 야당의 4자 회담 제안을 받아들인 것을 놓고 당내 강경파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아왔습니다.

특검은 절대 양보해서는 안된다는 강경론 앞에서 황 대표의 정치적 입지는 더욱 좁아졌습니다.

그러니, 야당에 대해서 고성을 지르고 '특검은 안된다'고 강경 목소리를 냄으로써 당내 강경파들의 비판을 누그러뜨리려 할 수 있습니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 역시 반드시 특검을 관철해야 한다는 당내 강경론 앞에서 협상의 여지는 전혀 없었습니다.

혹시 어중간하게 타협했다가는 정말 '직을 걸겠다'는 말이 현실화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다 보니, 여당 대표에게 고성을 지르고 '누가 죽나 봅시다'까지 강하게 나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당내 강경파들을 달랠 수 있지 않을까요?

두 대표는 당으로 돌아가서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됐습니다.

'자! 봐라..나는 할 말 다하고 왔다. 그런데 저쪽이 너무 완강하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이냐'

꼬인 정국을 풀기 위해서는 서로의 양보가 필요한데, 어제 4자 회담은 당내에서 그런 양보의 필요성을 절감케 하는 상황극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아침 이어진 4자회담은 그런 양보를 위한 준비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는 의미로 바라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회담 종료 후 양당 브리핑을 들어보죠.

▶ 인터뷰 : 유일호 / 새누리당 대변인
- "첫째, 특위, 특검에 대한 양당의 입장 차이가 여전하다.

▶ 인터뷰 : 김관영 / 민주당 대변인
- " 둘째, 국정원 개혁특위에 관해서도 위원장 인선문제, 입법권 부여문제, 개혁방안 및 수준에 관해 상당한 견해차가 있었다. 그러나 합의점을 찾기 위한 논의와 노력을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

4자 회동이 계속되는 한 대화의 문은 열려 있는 것이고, 그래도 냉각보다는 나은 것입니다.

예산안 처리를 끝내야 하는 이달 말까지는 여야가 타협점을 찾을 수 있는 정치적 여지를 남겨놓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때까지는 어쩌면 양당 지도부의 정치적 쇼가 계속될 지도 모릅니다.

설령 이 정치적 쇼가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를 나쁘게 볼 수는 없습니다.

합의점을 찾아가는 수단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쇼인지, 진짜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게 있습니다.

어제 4자 회담이 열리는 동안 청와대가 감사원장과 검찰총장, 복지부 장관 후보자에게 임명장을 주기로 발표한 것이 그것입니다.

야당의 반발이 극심할 게 뻔한 임명장 수여를 하필 4자 회담을 열리는 동안 발표하다니요?

청와대의 정무 감각이 떨어지는 걸까요? 아니면 국회를 무시하는 걸까요?

청와대는 임명장 수여에 정치적 고려는 없다는 원론적 설명을 내놨습니다.

▶ 인터뷰 : 이정현 / 청와대 홍보수석(어제)
- "일단 정치적인 고려는 없다. 국정을 미룰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감사원장과 검찰총장 자리는 오래 비워둘 수 없는 처지라는 것을 십분 이해하면서도 왜 하필 어제 그 시간에 발표했을까에 대한 의구심은 남습니다.

사실 우리와 같은 범인들이 어찌 정치 10단들의 정치행위를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저런 상상과 추측은 가능하지만,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알 길이 없으니 말입니다.

정치적 쇼든, 진실이든, 무엇이 됐든, 어떤 수단을 쓰든, 이 꼬인 정국을 풀고 빨리 서민살리기에 정치권이 나서줬으면 합니다.

민생이 나아진다면 정치인들이 쇼를 한다고 해서 그리 비판할 것은 아니겠죠.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신민희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