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의도 정가에서는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딱한 처지에 몰렸다는 얘기가 자주 들립니다.
명색이 집권 여당의 당 대표인데, 실권이 없다느니, 심지어 무늬만 대표라는 심한 말도 들립니다.
막강한 청와대가 버티고 있는 한, 황 대표가 할 수 있는게 없다는 동정론도 있고, 그래도 당 대표인데 강력한 카리스마가 없어서 그런 것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어쨌든, 황우여 대표로서는 이런 저런 속상한 소리를 많이 들어도 드러낼 수 없어 더 답답할 노릇입니다.
꼬인 정국을 풀고자 황우여 대표는 김한길 민주당 대표의 회동 제안을 덜컥 받아들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김 대표는 특검과 예산안, 정치개혁을 논의할 4인 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했고, 황 대표는 3~4일 내 답을 주겠다고 화답했습니다.
이게 화근이었습니다.
사실상 특검을 논의하자는 야당 제안을 왜 수용했느냐며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어제 열린 긴급최고위원회의에서도 이런 불만이 가득했습니다.
"특검은 정쟁을 끊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정쟁을 불러일으키는 것인 만큼 함부로 할 수 없다. 특검을 언젠가 할 수도 있다는 뜻을 풍기면 민주당이 자꾸 더 치고 나올 것이다"(최경환 원내대표)
"야당을 자꾸 자극하면 해줄 일도 안 해줄 수 있다"(황우여 대표)
오늘 열린 최고중진회의에서도 특검 반대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 인터뷰 : 이인제 / 새누리당 최고위원
- "우리가 무리한 요구(특검)를 들어준다고 해서 막힌 정국이 풀리겠느냐? 지금 야당은 특검 요구 들어준다고 하면 정쟁을 더 격화시키면 격화시키지, 국민이 바라는 방향으로 순조롭게 정기국회에서 민생 법안, 예산을 잘 처리할 가능성이 거의 없지 않나 생각한다."
최경환 원내대표와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 등 친박계 원내지도부와 중진들은 왜 이토록 황우여 대표를 궁지로 모는 걸까요?
답은 간단한 듯 보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18일 국회 시정 연설에 답이 있습니다.
다시 들어보시죠.
▶ 박근혜 대통령
- "사법부의 판단이 나오는 대로 책임을 물을 일이 있다면 반드시 응분의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 최근 야당이 제기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포함해서 무엇이든 국회에서 여야가 충분히 논의해서 합의점을 찾아주신다면, 저는 존중하고 받아들일 것입니다."
사법부의 판단이 나오는 대로 책임을 묻겠다는 것은 사실상 특검을 반대한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이런 박 대통령의 가이드 라인이 명확하니, 친박계 원내지도부가 야당 제안을 수용한 황 대표를 따를 수는 없는 일이지 않을까요?
그런데 같은 친박계인 황 대표는 왜 이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는 걸까요?
황 대표로서는 아마도 그 말 뒤에 나오는 '국회 합의 수용'이라는 박 대통령 말에 더 천착한 것 같습니다.
국회가 합의 해서 꼬인 정국을 풀라는 얘기인데, 특검 문제도 그 안에 포함돼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듯 합니다.
야당의 특검 요구를 무조건 거부하면, '허수아비 당 대표'라는 비판이 더 거세질 게 뻔하다는 정치적 판단도 한 모양입니다.
야당에서는 '종북'이 문제가 아니라 '종박', 그러니까 대통령 말만 따른다는 비난도 나온 터라 황 대표로서는 나름의 정치력을 발휘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의 말입니다.
▶ 인터뷰 : 전병헌 / 민주당 원내대표(오늘)
- "분열 초래하는 근본은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이고 과잉 충성하는 종박적 태도에 있는 것이다. 대통령을 여왕 모시듯 하며 반대의견 묵살-매도에 급급하다. 해법마련 주도적으로 나서지 못한 채 대통령 입만 쳐다보고 있다."
새누리당에서 '종박'이라는 말을 듣기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당 대표라면 더 더욱 그렇겠죠.
꼬인 정국을 풀어야 할 집권 여당 대표로서의 역할, 그렇다고 대통령 뜻을 거스를 수는 없는 현실적 권력관계.
만일 이대로 정국이 계속 흘러 예산안을 처리하지 못하고 준예산을 편성하는 사태가 온다면, 황 대표로서는 치명적인 정치적 타격을 입을 게 뻔합니다.
150석이 넘는 과반 의석이 있지만, 황 대표가 주도해 만든 국회선진화법에 스스로 발목이 잡혀 예산안 처리를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또 받을테니까요.
준예산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그 전에 꼬인 정국을 풀고 싶지만, 특검 없이는 풀 수 없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황 대표가 처한 딜레마입니다.
야당이 좀 양보해주면 좋으련만, 야당은 궁지에 몰린 황 대표를 더 딱하게 하고 있습니다.
▶ 인터뷰 : 김한길 / 민주당 대표
- "도대체 정국정상화 위해 여야가 협의하자는 제 1야당의 제안조차 받아들이기 어려운 여당은 우리 정치사에 찾아보기 힘든 별난 여당이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중진 10인이 어제 만나 정치복원을 하자며 소방수로 나섰습니다.
그러나 지금 꼬인 정국을 풀 힘은 중진 의원들도, 그리고 황우여 대표도 아닌, 다른 곳에 있는 듯합니다.
하자만 그곳에서 들리는 소리는 정치는 국회가 하는 것이고, 여야가 합의하면 우리는 수용한다는 원칙론입니다.
황우여 대표의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명색이 집권 여당의 당 대표인데, 실권이 없다느니, 심지어 무늬만 대표라는 심한 말도 들립니다.
막강한 청와대가 버티고 있는 한, 황 대표가 할 수 있는게 없다는 동정론도 있고, 그래도 당 대표인데 강력한 카리스마가 없어서 그런 것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어쨌든, 황우여 대표로서는 이런 저런 속상한 소리를 많이 들어도 드러낼 수 없어 더 답답할 노릇입니다.
꼬인 정국을 풀고자 황우여 대표는 김한길 민주당 대표의 회동 제안을 덜컥 받아들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김 대표는 특검과 예산안, 정치개혁을 논의할 4인 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했고, 황 대표는 3~4일 내 답을 주겠다고 화답했습니다.
이게 화근이었습니다.
사실상 특검을 논의하자는 야당 제안을 왜 수용했느냐며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어제 열린 긴급최고위원회의에서도 이런 불만이 가득했습니다.
"특검은 정쟁을 끊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정쟁을 불러일으키는 것인 만큼 함부로 할 수 없다. 특검을 언젠가 할 수도 있다는 뜻을 풍기면 민주당이 자꾸 더 치고 나올 것이다"(최경환 원내대표)
"야당을 자꾸 자극하면 해줄 일도 안 해줄 수 있다"(황우여 대표)
오늘 열린 최고중진회의에서도 특검 반대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 인터뷰 : 이인제 / 새누리당 최고위원
- "우리가 무리한 요구(특검)를 들어준다고 해서 막힌 정국이 풀리겠느냐? 지금 야당은 특검 요구 들어준다고 하면 정쟁을 더 격화시키면 격화시키지, 국민이 바라는 방향으로 순조롭게 정기국회에서 민생 법안, 예산을 잘 처리할 가능성이 거의 없지 않나 생각한다."
최경환 원내대표와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 등 친박계 원내지도부와 중진들은 왜 이토록 황우여 대표를 궁지로 모는 걸까요?
답은 간단한 듯 보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18일 국회 시정 연설에 답이 있습니다.
다시 들어보시죠.
▶ 박근혜 대통령
- "사법부의 판단이 나오는 대로 책임을 물을 일이 있다면 반드시 응분의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 최근 야당이 제기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포함해서 무엇이든 국회에서 여야가 충분히 논의해서 합의점을 찾아주신다면, 저는 존중하고 받아들일 것입니다."
사법부의 판단이 나오는 대로 책임을 묻겠다는 것은 사실상 특검을 반대한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이런 박 대통령의 가이드 라인이 명확하니, 친박계 원내지도부가 야당 제안을 수용한 황 대표를 따를 수는 없는 일이지 않을까요?
그런데 같은 친박계인 황 대표는 왜 이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는 걸까요?
황 대표로서는 아마도 그 말 뒤에 나오는 '국회 합의 수용'이라는 박 대통령 말에 더 천착한 것 같습니다.
국회가 합의 해서 꼬인 정국을 풀라는 얘기인데, 특검 문제도 그 안에 포함돼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듯 합니다.
야당의 특검 요구를 무조건 거부하면, '허수아비 당 대표'라는 비판이 더 거세질 게 뻔하다는 정치적 판단도 한 모양입니다.
야당에서는 '종북'이 문제가 아니라 '종박', 그러니까 대통령 말만 따른다는 비난도 나온 터라 황 대표로서는 나름의 정치력을 발휘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의 말입니다.
▶ 인터뷰 : 전병헌 / 민주당 원내대표(오늘)
- "분열 초래하는 근본은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이고 과잉 충성하는 종박적 태도에 있는 것이다. 대통령을 여왕 모시듯 하며 반대의견 묵살-매도에 급급하다. 해법마련 주도적으로 나서지 못한 채 대통령 입만 쳐다보고 있다."
새누리당에서 '종박'이라는 말을 듣기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당 대표라면 더 더욱 그렇겠죠.
꼬인 정국을 풀어야 할 집권 여당 대표로서의 역할, 그렇다고 대통령 뜻을 거스를 수는 없는 현실적 권력관계.
만일 이대로 정국이 계속 흘러 예산안을 처리하지 못하고 준예산을 편성하는 사태가 온다면, 황 대표로서는 치명적인 정치적 타격을 입을 게 뻔합니다.
150석이 넘는 과반 의석이 있지만, 황 대표가 주도해 만든 국회선진화법에 스스로 발목이 잡혀 예산안 처리를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또 받을테니까요.
준예산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그 전에 꼬인 정국을 풀고 싶지만, 특검 없이는 풀 수 없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황 대표가 처한 딜레마입니다.
야당이 좀 양보해주면 좋으련만, 야당은 궁지에 몰린 황 대표를 더 딱하게 하고 있습니다.
▶ 인터뷰 : 김한길 / 민주당 대표
- "도대체 정국정상화 위해 여야가 협의하자는 제 1야당의 제안조차 받아들이기 어려운 여당은 우리 정치사에 찾아보기 힘든 별난 여당이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중진 10인이 어제 만나 정치복원을 하자며 소방수로 나섰습니다.
그러나 지금 꼬인 정국을 풀 힘은 중진 의원들도, 그리고 황우여 대표도 아닌, 다른 곳에 있는 듯합니다.
하자만 그곳에서 들리는 소리는 정치는 국회가 하는 것이고, 여야가 합의하면 우리는 수용한다는 원칙론입니다.
황우여 대표의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