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상철 기자] 오승환의 한신 타이거즈 이적이 확정되면서 일본 프로야구 진출 첫 해부터 ‘끝판왕의 위력을 떨칠 지가 관심을 모은다.
원 소속구단인 삼성 라이온즈는 22일 한신과 오승환의 이적 협상을 마무리 지었다고 밝혔다. 역대 최고 몸값(총 9억5000만엔·약 100억원) 대우를 받았는데, 그만큼 한신이 오승환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는 방증이다.
그렇다면 오승환은 한신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한신이 오승환에게 바라는 건 무대가 바뀌어도 ‘끝판왕의 모습을 보여달라는 것이다. 올해 한신이 속한 센트럴리그 세이브 1위는 니시무라 겐타로(요미우리 자이언츠)로 42세이브를 기록했다.
한신은 후지카와 규지(시카고 컵스)가 메이저리그로 떠난 뒤, 뒷문이 헐겁다. 후쿠하라 시노부와 구보 야스토모가 세이브 부문 5위와 공동 10위를 기록했지만, 각각 14세이브와 6세이브에 그쳤다.
오승환은 국내 무대에서 9년간 8차례나 두 자릿수 세이브를 올렸다. 30세이브 이상만 5차례였다. 프로 첫 해부터 잘 했는데, 10승 1패 16세이브 11홀드 평균자책점 1.18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실력은 이미 검증됐다. 국제무대에서도 통한다는 걸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부터 보여줬다.
그렇지만 달콤한 성공이 100% 보장된 건 아니다. 단기전이 아닌 장기전이다. 낯선 환경에서 오랫동안 뛰고 공을 던져야 하는데, 텃세와 집중견제를 이겨내야 한다. 또한, 첫 해 징크스도 극복해야 한다.
오승환에 앞서 수많은 선수들이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른바 국내 무대를 씹어 먹었던, ‘과물들이었다. 선동열, 이상훈, 정민철, 정민태, 구대성, 임창용(이상 투수), 이종범, 이승엽, 김태균, 이범호, 이대호(이상 야수) 등이 일본 무대에 진출했다.
이대호(2012년 144경기 150안타 24홈런 91타점 54득점 타율 2할8푼6리), 김태균(2010년 141경기 타율 2할6푼8리 141안타 21홈런 92타점 68득점) 같이 첫 해부터 잘 했던 선수도 있다. 하지만 그 수가 많지 않다. 이승엽도 첫 해(2004년)에는 타율 2할4푼 14홈런 50타점에 그쳤다. 1년 전 56홈런으로 당시 아시아 홈런 신기록을 세웠던 이승엽이었다.
투수는 더욱 심각하다. 현지 적응 실패와 팀 내 불화 등으로 첫 해 부진했다. 온갖 기대와 엄청난 몸값을 받은 걸 고려하면 굴욕적이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첫 해 평균자책점이 4점대 이상이었다. 예외는 없었다.
그렇지만 적응을 마치고 명예회복을 다짐하면서 2년차부터 눈부신 투구를 했다. 정민철, 정민태는 끝내 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쓸쓸히 돌아와야 했다.
투수 가운데 첫 해부터 잘 한 건 임창용이 유일했다. 임창용은 2008년 1승 5패 33세이브 3홀드 평균자책점 3.00을 올렸다. 이후 2011년까지 일본 정상급 마무리 투수로 활동했다.
‘첫 해 징크스가 있지만 한 번 깨진 적이 있다. 확률은 높지만 그렇다고 절대적인 게 아니다. 오승환은 과거의 전철을 밟을까, 아니면 임창용 같이 다른 길을 걸을까. 텃세 및 집중견제와 함께 부담감을 견뎌내느냐에 달렸다.
[rok1954@maekyung.com]
원 소속구단인 삼성 라이온즈는 22일 한신과 오승환의 이적 협상을 마무리 지었다고 밝혔다. 역대 최고 몸값(총 9억5000만엔·약 100억원) 대우를 받았는데, 그만큼 한신이 오승환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는 방증이다.
그렇다면 오승환은 한신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한신이 오승환에게 바라는 건 무대가 바뀌어도 ‘끝판왕의 모습을 보여달라는 것이다. 올해 한신이 속한 센트럴리그 세이브 1위는 니시무라 겐타로(요미우리 자이언츠)로 42세이브를 기록했다.
오승환은 2014년부터 한신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고 일본 프로야구 무대에서 뛴다. 임창용을 제외하고 한국투수들은 하나같이 일본 진출 첫 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오승환의 2014년은 어떨까. 사진=MK스포츠 DB |
오승환은 국내 무대에서 9년간 8차례나 두 자릿수 세이브를 올렸다. 30세이브 이상만 5차례였다. 프로 첫 해부터 잘 했는데, 10승 1패 16세이브 11홀드 평균자책점 1.18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실력은 이미 검증됐다. 국제무대에서도 통한다는 걸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부터 보여줬다.
그렇지만 달콤한 성공이 100% 보장된 건 아니다. 단기전이 아닌 장기전이다. 낯선 환경에서 오랫동안 뛰고 공을 던져야 하는데, 텃세와 집중견제를 이겨내야 한다. 또한, 첫 해 징크스도 극복해야 한다.
오승환에 앞서 수많은 선수들이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른바 국내 무대를 씹어 먹었던, ‘과물들이었다. 선동열, 이상훈, 정민철, 정민태, 구대성, 임창용(이상 투수), 이종범, 이승엽, 김태균, 이범호, 이대호(이상 야수) 등이 일본 무대에 진출했다.
이대호(2012년 144경기 150안타 24홈런 91타점 54득점 타율 2할8푼6리), 김태균(2010년 141경기 타율 2할6푼8리 141안타 21홈런 92타점 68득점) 같이 첫 해부터 잘 했던 선수도 있다. 하지만 그 수가 많지 않다. 이승엽도 첫 해(2004년)에는 타율 2할4푼 14홈런 50타점에 그쳤다. 1년 전 56홈런으로 당시 아시아 홈런 신기록을 세웠던 이승엽이었다.
투수는 더욱 심각하다. 현지 적응 실패와 팀 내 불화 등으로 첫 해 부진했다. 온갖 기대와 엄청난 몸값을 받은 걸 고려하면 굴욕적이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첫 해 평균자책점이 4점대 이상이었다. 예외는 없었다.
그렇지만 적응을 마치고 명예회복을 다짐하면서 2년차부터 눈부신 투구를 했다. 정민철, 정민태는 끝내 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쓸쓸히 돌아와야 했다.
투수 가운데 첫 해부터 잘 한 건 임창용이 유일했다. 임창용은 2008년 1승 5패 33세이브 3홀드 평균자책점 3.00을 올렸다. 이후 2011년까지 일본 정상급 마무리 투수로 활동했다.
‘첫 해 징크스가 있지만 한 번 깨진 적이 있다. 확률은 높지만 그렇다고 절대적인 게 아니다. 오승환은 과거의 전철을 밟을까, 아니면 임창용 같이 다른 길을 걸을까. 텃세 및 집중견제와 함께 부담감을 견뎌내느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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