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기름 먹는 하마의 역전 드라마…크라이슬러 300C 연비왕 도전기
입력 2013-10-16 11:08 
기름 먹는 하마가 연비왕을 선발한다고. 차라리 ‘왕 안해가 낫지. 친환경자동차 바람이 부니 시늉만 내려고 하는군”
크라이슬러 300C 연비왕 선발대회 참가요청을 받았을 때는 사실 시큰둥했다.

미국을 대표하는 대형세단인 크라이슬러 300C의 연비가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미국차는 기름 먹는 하마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잘 하면 1등도 할 수 있겠네. 다른 브랜드 연비 대회에 참가한 경험도 있는데다, 오너 참가자 대부분은 연비보다는 300C의 마초적 매력에 반해 차를 사 연비 운전에 익숙하지 않을테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게다가 공정한 심사를 위해 조건을 까다롭게 설정한 것도 마음에 들었다. 연비 성능 향상을 위해 튜닝하거나 차에 장착된 부품을 제거하면 참가 자격을 박탈당했다. 휴게소 또는 주유소에 들르는 것은 인정되지 않았다.



하이패스로 통과할 수도 없었다. 통행료 영수증을 모두 제시해야 했다. 또 2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를 3시간 이내에 들어와야 했다.

연비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시트를 제거하고, 시간제한이 없는 것을 악용해 경운기 뒤를 따라다니는 참가자들을 본 적이 있다. 이번에는 이런 참가자들을 막을 장치가 마련됐으니 평소 실력으로 달리기만 해도 상위권에는 충분히 들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대회에서 전문가들이 연비 팁을 알려주는 시간에도 이미 다 아는 내용인데”라며 듣는 둥 마는 둥 넘기고 시승차에 탔다. 참가팀은 총 21개팀. 21대의 300C가 지난달 28일 토요일 오전 11시쯤 여의도에서 올림픽대로를 거쳐 인천국제공항에 이르는 100km 구간에서 연비 주행을 펼쳤다.

연비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되도록 7~8단 기어를 유지하며 1000~1500rpm이 넘지 않도록 신경썼다. 크루즈 항속 시스템도 되도록 많이 사용했다.

올림픽대로와 강변도로에서는 1000rpm을 되도록 유지하면서 60~80km/h로 달렸다. 검정색 300C 3~4대가 비슷한 속도로 달리자 다른 차들이 뒤에서 멀찌감치 떨어졌다. 추월하는 차도 드물었다. 300C의 마초적 존재감 때문이다.

국도로 접어든 뒤에는 예측 운전으로 속도를 줄이며 되도록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다. 2시간 남짓 걸려 목적지 주유소에 도착해 봉인을 해제한 뒤 기름을 가득 채워 소모량을 산출한 결과, 연비는 14km/ℓ 정도 나왔다. 공인연비가 9.5km/ℓ(복합)이니 상당히 좋게 나온 셈이었다.

내심 1등은 아니더라도 상위권에 포함될 것으로 기대했다. 먼저 도착한 팀은 속도를 내기 위해 가속페달을 더 많이 밟았을 테니 당연히 연비가 나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록지를 슬쩍 보는 순간 기대는 무참히 깨졌다.

먼저 도착했는데도 연비는 16~17km/ℓ에 달하는 기록 3~4개가 눈에 들어왔다. 공인연비 13.8km/ℓ인 디젤 부문에서는 20km/ℓ가 넘는 기록들도 보였다.

상위권에는 들지 못하겠지만 중간은 하겠지라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으며 행사장에서 발표를 기다렸다. 최종 우승 기록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가솔린 부문에서는 공인 연비보다 두 배 남짓 좋은 18.34km/ℓ, 디젤 부문에서는 두 배 이상 향상된 28.14km/ℓ가 나왔다. 기름 먹는 하마가 경차는 물론 하이브드리카에 맞먹는 성적을 거둔 것이다.

가솔린 부문 우승자인 이정구(48, 서울 신길동) 씨는 가속이나 고속 주행을 하지 않고 정숙 주행하던 습관이 좋은 결과를 낸 것 같다”며 대형세단인데다 가솔린 차인데도 이 정도 연비가 나올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대회가 끝난 뒤 시승차를 반납하고 집으로 향할 때 문뜩 과속단속 카메라를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의 외침이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무의식 중에 1000~2000rpm 정도로 유지하면서 규정 속도를 지키고 10여km를 달린 셈이다. 2시간 남짓 연비 운전했을 뿐인데 습관이 된 것. 역시 연비는 운전자 하기 나름이다.

[매경닷컴 최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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