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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Mr. 전설] 최동원, 그는 ‘혁명가’였다
입력 2013-09-20 06:04 
지난 9월 14일은 최동원이 세상을 떠난 지 2년 된 날이었다. 최동원기념사업회는 이날 그의 고향이자 영원한 안식처인 사직구장 앞에 ‘무쇠팔 최동원 동상을 세웠다. 죽고 나서 이럴 게 아니라 살아 있을 때 좀 더 관심을 가져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지만 뒤늦게나마 한국야구의 ‘위대한 전설을 기려주니 다행이다.
최동원의 화려한 성적은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야구장 밖에서의 최동원은 과연 누구였을까. 한 마디로 그는 ‘혁명가였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고, 감히 엄두도 못 내던 일을 그는 행동으로 옮겼다. 그가 당대 최고 투수였기 때문이었을까? 고액 연봉자였기 때문에 앞장섰을까? 그에게는 어릴 때부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굽히는 법이 없는 ‘끓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1990년 1월, 삼성으로 트레이드된 최동원은 경기도 물왕저수지 해병대캠프로 극기훈련을 떠났다. 이 때가 선수생활 중 가장 힘든 시기였다.

최동원은 한국 운동선수 가운데 최초로 자신의 몸을 상해보험에 가입한 인물이다. 그것도 고등학교 2학년 신분으로 말이다. 1975년 경남고 2학년인 최동원은 그 해 가을 우수고교초청대회에서 청룡기와 봉황대기 우승팀 경북고를 상대로 노히트노런을 달성했다. 이튿날 선린상고와의 경기에서도 8회까지 노히트노런을 이어가 ‘17이닝 노히트노런이란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이 대회가 끝난 뒤 최동원(엄밀히 말하면 그의 부친인 최윤식씨)은 오른쪽 어깨를 상해보험에 들어 야구계는 말할 것도 없고 한국 사회 전체를 들었다 놨다.

이에 앞서 금테안경을 끼고 마운드에 오른 첫 번째 선수이기도 하다. 지금 생각하면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당시로선 고정관념을 깬 매우 파격적인 행동이었다.
연세대 3학년인 1979년. 최동원은 다시 한 번 야구 외적인 문제로 큰 주목을 받는다. ‘단체 기합에 반발해 숙소를 이탈한 것이다. 최동원은 이런 구시대적 문화가 남아 있는 연세대에서는 야구를 하지 않겠다”는 말을 남겼다. 당시 ‘단체 기합의 가해자가 공군 전역 후 복학한 박철순이란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이 무엇보다 최동원을 ‘혁명가로 기억하는 가장 큰 사건은 선수협 창설과 그 이후 이어진 질곡의 인생이다.
1988년 9월 13일이었다. 최동원을 비롯한 프로야구 7개 구단 선수 130명은 대전시 유성관광호텔에서 프로야구선수협의회 창립총회를 열었다. 초대 회장은 최동원이었다.

최동원은 이미 오래 전부터 프로야구 선수들의 권리와 복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선수협 창설을 구상하고 실천에 옮겼다.
구단과 한국야구위원회(KBO)의 강력 반발에 부딪쳐 삼일천하로 끝나고 말았지만 지금의 선수협회가 뿌리내린 덴 최동원의 공로가 절대적이다. 프로야구 선수들은 국내 4대 프로스포츠 가운데 유일하게 선수들의 목소리를 내는 기구를 갖고 있다는 데 대해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최동원은 선수협 ‘주동자로 낙인이 찍혀 1988년 11월 23일 롯데에서 쫓겨난다.(트레이드를 빙자한 방출이었다) 그 때 최동원의 롯데 방출에 대해 유일하게 제 목소리를 낸 사람은 이광환(서울대 감독)이었다. 모든 야구인, 해설가, 언론들이 구단 눈치를 볼 때 OB 베어스 감독인 이광환만은 이건 팀 전력상승을 위한 트레이드가 아니라 선수를 버리는 것”이라고 개탄했다.
최동원의 선수수명은 사실상 그렇게 끝났다. 1990년 은퇴한 최동원은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한다.
1991년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부산 서구 광역의원에 출마한 것이다. 그것도 3당 합당으로 맘모스 정당이 된 민자당의 집요한 공천제의를 뿌리치고, ‘꼬마 민주당 소속으로. 보기 좋게 미끄러졌지만 그만의 ‘꼿꼿한 성품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최동원은 평생 외로운 길을 갔다. 최고였을 때도, 오갈 곳 없어 야구판을 기웃거릴 때도 그는 항상 혼자였다. 야구 선후배들도, 구단도, 언론도 그를 차갑게 대했다. 마지막 가는 길에도 그의 병상은 쓸쓸했다고 한다.
한국야구사를 통틀어 최고 선수 단 한 명을 꼽으라면 누굴까. 많은 사람들은 ‘최동원이란 이름 석 자를 주저 없이 꼽을 것이다.
[매경닷컴 MK스포츠 김대호 편집국장 dhkim@maekyung.com]
사진제공=장원우 전 주간야구 사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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