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정완진의 The CEO] 국산 3D 프린터 개발로 세계 시장을 노린다! (주)캐리마 이병극 대표
입력 2013-09-13 13:50  | 수정 2013-09-13 13:53


최근 의료용, 산업용, 대학 실습용으로 많이 쓰이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는 3D 프린터. 이 3D 프린터를 독자적으로 개발해 국산 3D 프린터를 만든 CEO가 있습니다. 바로 (주)캐리마의 이병극 대표입니다.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과 끈질긴 열정으로 숱한 위기를 이겨내고 국내 3D 프린터의 선두주자가 된 이병극 대표. 그의 이야기를 MBN ‘정완진의 The CEO에서 직접만나 들어 볼 수 있었습니다.

7남매 중 셋째였던 이병극 대표는 ‘별종이었다고 합니다. 공부하기 바빴던 다른 형제들에 비해 그는 온갖 가전제품을 분해하고 조립하고 새로운 장난감을 직접 만드는 등 기계 조립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특히나 일본에 갔던 형에게 선물 받은 사진기는 그의 기계 사랑에 정점을 찍었습니다.

적성을 살려 ‘현대칼라라는 곳에 입사 했습니다. 사진을 현상하고 사진 현상기를 수리하고 판매하는 곳이었습니다. 역시나 제 적성에 잘 맞았고 잘 고쳐지지 않는 기계가 있으면 밤을 새워서라도 끝까지 고쳤죠. 끈질기게 일하는 모습에 회사에서는 일본으로 연수를 보내주기도 했고 새로운 기계를 먼저 접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현대칼라에서 사진 현상기에 대한 많은 경험을 한 이병극 대표. 그는 ‘현대칼라를 나와 ‘한국천연색이라는 동종 업계로 이직합니다.

두 곳의 회사에서 경험이 쌓을 후 일본산 ‘사진 현상기를 우리나라에 판매하는 ‘CK산업을 창업했습니다. 별 탈 없이 잘 운영을 해나갔는데 한 2년 정도 지났을까요? 나라에서 국산 제품을 사용하자는 취지로 일본산 제품 수입을 금지했습니다.”

이 소식에 그는 사진 현상기를 국산화하기로 결심합니다. 기계 조립에는 일가견이 있고 또 사진 현상기에 대한 지식이 풍부했던 그였지만 국산화를 하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몇 년을 꼬박 개발에만 몰두한 끝에 결국 그는 사진 현상기 국산화에 성공하게 됩니다. 해외 브랜드보다 가격 면에서 저렴하고 성능은 뒤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사진 현상기는 입소문을 타고 퍼져나갔습니다. 국내에서 뿐 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그의 제품을 찾았고 순조롭게 수출 길까지 열게 됩니다.


국산화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게 된 이병극 대표. 하지만 곧 시대는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었고 아날로그 현상기가 아닌 디지털 현상기를 쓰는 추세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새로운 제품 개발이 절실했습니다. 고민을 하던 중에 아날로그 현상기를 계속 사용하고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죠. 가격은 저렴하면서도 성능은 디지털 현상기와 같은 제품을 만든다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개발한 게 ‘착탈식 디지털 현상기였습니다. 아날로그 현상기에 DLP(Digital Light Processing) 라는 칩을 장착하면 디지털 현상기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었습니다.”

‘착탈식 디지털 현상기를 개발 후, 그는 다시 전성기 때의 모습을 되찾는 듯 했습니다. 활발하게 해외 수출까지 이루어졌지만 다시 한 번 그에게 비극이 닥칩니다. 중국에서 그의 제품을 불법으로 복제해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눈앞이 캄캄해져 왔죠. 그 때 각종 매체를 통해 ‘3D 프린터가 앞으로 각광을 받을 것이라는 소식을 접했고 3D 프린터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3D 프린터는 앞으로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등의 제조업에 엄청난 혁신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그는 ‘착탈식 디지털 현상기에 사용했던 DLP 장착 기술을 바탕으로 3D 프린터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개발을 시작하면서 수입은 줄고 투자금만 들어가자 직원들은 그의 곁을 떠났고 그 동안 벌어놓은 돈 마저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힘든 상황이었지만 이병극 대표는 결코 개발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3D 프린터뿐 만 아니라 조형물을 만드는 화학 재료까지 개발해야 했습니다. 고분자 박사들을 찾아다니며 조언을 구하고 독학으로 공부했죠. 900번이 넘는 시도와 100억 원이 넘는 자금을 쏟아 부은 끝에 5년 만에 3D 프린터를 완성하게 됐습니다.”

그는 3D 프린터를 사용할 만한 곳은 어디든 달려가 영업을 펼쳤습니다. 3D 프린터에 대한 인식이 자리 잡지 못하고 있던 당시에는 판매 하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고 그는 기억합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결실을 맺으며 대학 실습용과 병원 등으로 서서히 팔려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3D 프린터는 제조업에 혁신을 일으킬 것.이라는 발언을 하면서 판매에 가속도가 붙었습니다. 또한 해외에서도 저렴한 가격과 5년의 연구로 뛰어난 성능을 자랑하는 그의 3D 프린터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제조업뿐 만 아니라 의료나 가정에서도 그 용도가 다양하게 쓰일 것이라고 말하며 아직도 호기심 어린 눈빛을 반짝이는 이병극 대표 그의 이야기는 9월 14일 ‘정완진의 The CEO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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