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 "최후통첩" VS "일방 통보"…그래도 회담은 열린다!
입력 2013-09-13 11:32 
정치란 그런 가 봅니다.

서로 으르렁대다가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웃으며 악수하고, 상대방에 대한 분노보다는 그걸 지켜보는 국민의 눈치를 더 보는 그런 이상한 '장'인가 봅니다.

해외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전격적으로 여야 대표와 3자 회담을 제안했습니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의 말입니다.


▶ 인터뷰 : 이정현 / 청와대 홍보수석(9월12일)
- "이번 3자회담을 통해서 국정 전반에 관해 여야가 하고 싶은 모든 문제와 현안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해서 기존에 국민이 가진 의구심과 정치권 의구심을 털고 나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야당도 회담에 응해줘서 국민을 위한 정치가 되길 바란다."

청와대는 이게 사실상 마지막 제안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더는 민주당에 양보는 없다는 겁니다.

더욱이 대통령이 청와대가 아닌 국회로 직접 가 여야 대표를 만나겠다는 '파격'도 선보였으니 청와대로서는 할 만큼 다한 것일까요?

청와대로서는 어쨌든 국정 파행의 책임이 대통령에게 계속 쏠리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법합니다.

또 새누리당 내에서도 대통령이 야당 대표를 만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신경쓰였을법합니다.

추석을 앞두고 자칫 대통령 책임론이 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민주당은 이 제안을 덥석 받지 않았습니다.

그토록 대통령 회담을 원했는데 말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김관영 민주당 수석대변인의 어제 논평입니다.

▶ 인터뷰 : 김관영 / 민주당 수석 대변인(9월12일)
-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에 전화해서 회담 형식과 일시를 통보했습니다. 양측이 합의 없이 한다면 상황 더 꼬일 수도 있다고 말하니 이에 나는(김기춘) 윗분 말 전할 뿐이라고 했습니다. 김기춘 비서실장의 통보 내용과 그에 이은 청와대 일방적 발표는 대화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없는 것입니다."

이정현 수석이 3자 회담을 발표한 것이 오후 2시쯤 넘었고, 이에 앞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12시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전화해 3자 회담 제안을 한 셈입니다.

2시간 전에 민주당에 회담 제안을 알려준 것까지는 좋은데, 문제는 회담 의제와 방식을 조율 없이 일방 통보했다는 겁니다.

김기춘 비서실장도, 이정현 홍보수석도 회담 의제와 관련해서는 '윗분 말씀'이 없었다며 회담 방식과 시간만 통보했습니다.

그래서 민주당은 당장 3자회담 제안을 받기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민주당 역시 뾰족한 수가 없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한발 양보해 3자 회담까지 제안한 마당에 민주당이 또 거절한다면 여론의 역풍은 물론이고, 천막당사를 벗어날 기회조차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또 이정현 수석의 말처럼 국정 전반에 걸쳐 모든 문제를 논의하자고 한만큼, 국정원 개혁이나 민주주의 회복 문제를 청와대가 거부한 것도 아닙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청와대에 민주당이 허를 찔렸다고 해야 할까요?

고심하던 민주당 지도부는 오늘 서울 시내 한 음식점에 만나 논의한 끝에 3자 회담 제안을 전격 수용했습니다.

오늘 아침 김한길 대표의 말입니다.

▶ 인터뷰 : 김한길 / 민주당 대표
- "어제 청와대가 제안한 대통령과 여야 대표의 3자 회담에 응하겠다. 회담의 형식보다는 내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국정원 개혁 등 민주주의 회복에 대한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 담보돼야 합니다."

아마도 민주당으로서는 이 국면에서 만남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훨씬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일단 만나서 국정원 개혁과 민주주의 회복 등 하고 싶은 말을 박 대통령에게 강하게 얘기하고 그 이후는 대통령에게 넘기자는 계산을 했을 법합니다.

대통령이 국정원 선거개입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면 민주당으로서는 얻을 건 얻은 것이고, 만약 대통령이 유감 표명을 거부하면 그것대로 대여 투쟁을 강화할 명분을 얻게 되는 셈입니다.

민주당으로서는 회담 제안에 응하는 것이 결국 꽃놀이패라 할 수 있고, 청와대에 공을 넘기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셈법이었든 청와대와 여야는 지난 8월3일 김한길 대표의 양자 회담 제안 직후 꼭 40여 일 만에 머리를 맞대게 됐습니다.

청와대의 기대대로 꼬인 정국을 풀고 '민생 현안'을 위한 9월 국회를 만들 것인지, 아니면 보여주기식 이벤트로 끝날지 예단하기 어렵습니다.

청와대로서는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쥐어야 하고, 민주당으로서는 천막당사를 접고 국회로 들어가야 할 명분을 스스로 만들었으면 합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김희경 이민경 신민희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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