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 공공의 적이 돼버린 이석기 의원, 그 이유를 알까?
입력 2013-09-02 12:08  | 수정 2013-09-02 16:35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이 모든 정국을 집어삼켰습니다.

이석기 의원과 통합진보당은 억울하다며 국정원이 사실을 날조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들을 빼놓고는 누구 하나 귀담아 듣는 이 없습니다.

과거 같으면, 국정원의 불법 사찰이나 공작 얘기가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진보 진영조차 싸늘하게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오히려,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이 이번 내란음모사건때문에 묻혔다며 원망하는 목소리조차 진보진영 내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마치 이석기 의원과 통합진보당은 고립무원에 빠진 '공공의 적'이 돼버린 듯한 인상입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요?

본질적으로는 2013년, 한반도의 중심 서울에서 북한을 맹목적으로 옹호하거나, 총기나 유류 시설 폭파 같은 허황된 얘기를 했다는 것 자체가 상식적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녹취록에 나오는 얘기를 잠깐 보죠.


"오는 전쟁 맞받아치자. 시작된 전쟁은 끝장을 내자 어떻게? 빈손으로? 전쟁을 준비하자. 정치 군사적 준비를 해야 한다."

"종국적으로 조선 민족으로 표현되는 자주 역량이 힘에 의해서 승리로 가는 국면은 분명하다"

"북은 모든 행위가 다 애국적이야. 다 상을 받아야 돼. 그런데 우리는 모든 행위가 다 반역이야. 지배 세력한테는 그런 거야."

"80만 원짜리 장난감 총 가스쇼바 개조하면 총으로 쓸 수 있어. 지금은 인터넷에서 무기를 마드는 것들에 대한 기초는 나와 있어요" - 이상호 경기진보연대 고문

"평택에 있는 유조창...벽돌로 시멘트로 그래서 그것이 총알로 뚫을 문제는 아니거든요"

북한은 애국적이고, 그래서 전쟁을 맞받아치자는 말은 십분 양보해도 제정신이 박힌 사람의 말 같지 않습니다.

또 무고한 시민이 다칠 수 있고, 평범한 시민이 희생될 수 있는 '총기, 시설 폭파'와 같은 시도는 결코 '혁명'이나 '통일'이라는 대의명분으로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통일을 위해 애꿎은 사람이 죽어도 된다는 뜻인가요?

5월12일 모임에서 토론 도중 누군가 흥분해 이같이 '폭파' 얘기를 했다 쳐도 주변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면박을 줬어야 하는데, 그럴 듯하게 넘어갔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렇게 상식적이지 못한 얘기들이 난무했으니, 통상적인 경기도당 당원 모임이었다고 주장한 들 누가 귀 기울이겠습니까?

대한민국 정당의 당원 모임에서 총, 폭파와 같은 얘기들이 오갔다 게 너무나 비상식적입니다.

두 번째는 통진당 사람들이 말 바꾸기, 또는 거짓말 의혹입니다.

국정원 수사 소식이 전해진 후 잠적했다가 다음날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이석기 의원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기자) ▲내란음모혐의 적용됐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이석기) - 황당하다. 한마디로 국정원의 날조·조작사건이라고 본다.

▲총기를 준비했다는 얘기는.

- 더욱 기가 막히고 어이없는 일이다.

▲그럼 주요시설 공격은 어떻게 생각하나.

- 상상 속의 소설. 국정원의 상상 속에 나온 게 아닌가

▲국정원에서 확보했다는 녹취록은 어떻게 생각하나.

- 사실과 다르다.

▲어떤 부분이 사실이 아닌가.

- 사살, 실탄 지시, 총기 그런 말이 언론에 나오는데 전혀 사실 아니다. 철저한 모략극이고 날조극이다.

실탄 지시, 총기 그런 말은 모두 모략극이고 국정원 상상 속에 나온다고 주장했지만, 녹취록은 이 의원의 말이 거짓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줬습니다.

한 언론이 공개한 녹취록 전문을 볼까요?

"전 세계 최강이라는 미 제국주의와 전면으로 붙어서 조선 민족의 자랑과 위엄과 존엄을 시험하는 전쟁에서 승리의 시대를 후대에 주자."

"우리가 싸우는 대상이 바로 북이 아니라 외래 침략자라는 것이다."

"인터넷 사이트 보면 사제폭탄 사이트가 굉장히 많이 있다. 심지어는 보스턴 테러에 쓰였던 이른바 압력밥솥에 의한 사제폭탄에 대한 매뉴얼 공식도 떴다."

북이 아닌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사제폭탄을 만드는 준비도 이 의원이 직접 언급한 것으로 나옵니다.

이래도 조작일까요?

5월12일 모임 자체를 부정했던 이석기 의원은 녹취록이 공개된 그날 저녁 모임에 갔었고, 강연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말았습니다.

같은 김재연 의원 역시 들어본 적도 없는 모임이라고 했지만, 나중에는 슬그머니 모임에 갔었다고 실토했습니다.

이들의 해명이 모두 거짓인 셈입니다.

이렇게 신뢰를 잃었으니 그들이 무슨 말을 하든 귀를 열어 줄 국민이 과연 있을까요?

통진당은 녹취록을 제보한 사람이 수원에 사는 당원이며, 국정원 매수했다고 어제부터 반격에 나섰습니다.

▶ 인터뷰 : 이상규 / 통합진보당 의원
- "국정원은 거액의 돈으로 '프락치(첩자)'를 매수해서 정당에 내란음모죄를 뒤집어씌웠습니다. 이 일련의 행위가 합법이란 말입니까?"

통진당은 녹취록 확보가 불법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사람들 귀에는 설령 국정원이 제보자를 매수했다 쳐도 그들의 망상가적 '내용'과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고 꾸짖고 있습니다.

증거 수집이 불법이니 모든 게 무죄고, 국정원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해도 설득력이 없는 이유입니다.

물론 국정원이 불법 사찰을 하고, 제보자를 매수했다면 그건 그것대로 나중에 따질 일이지만, 설령 그렇다 쳐도 통진당과 이석기 의원의 편향된 생각이 정당화되지는 않습니다.

이미 통진당과 이석기 의원은 정당과 국회의원의 가장 기본인 국민의 신뢰를 송두리째 잃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건 바로 그들 자신입니다.

이를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걸까요?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김희경 이민경 신민희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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