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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일의 맥] ‘순수’와 ‘자발’을 잊은 붉은악마의 실력행사
입력 2013-07-30 14:25 

유감스러운 일이다. 사실 안중근 열사와 이순신 장군을 담은 통천부터 부담스러웠다. 가슴이 뜨거워지긴 했다. 그걸 노렸다면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FIFA가 지양하길 당부하는 일이다. FIFA의 지시를 왜 따라야하냐는 항변은 성숙하지 않은 자세다. ‘당부하는 일이다. ‘역사 ‘사회 ‘정치 ‘종교 ‘인종 등 굳이 무거운 단어를 꺼내지 않아도, 부디 스포츠를 스포츠로 보자는 이야기는 많은 이들의 공감대를 끌어내는 목소리다. 스포츠가 주는 큰 감동 중 하나는 어떤 연결고리에도 얽매이지 않는 ‘공간이다.
누가 봐도 일본과의 역사적 사실들과 관련된 위인들이다. 안중근 열사가, 이순신 장군이 무엇을 했는지 대다수가 알고 있다. 28일 경기는 한일전이었다. 결부된 해석이 불가피하다.
붉은악마의 행동이 과했다. 순수하지도 자발적이지도 않았던 탓에 그들의 행동이 응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사진= MK스포츠 DB
선인들의 얼굴이 담긴 통천까지는 그래도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경기 시작과 함께 내걸린 문구는 오해소지가 컸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문구는, 아주 감동적인 격언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남긴, 후세들이 두고두고 가슴에 새길 명언이다. 하지만 ‘공간이 어울리지 않았다. 상대가 일본이었다. ‘역사를 알고 있는 한국인과 일본인이라면 결부 지을 수밖에 없다.
일본이란 대상에 대한 감정을 모르는 바 아니나 장소가 잘못됐다. 축구장이었다. 타이밍도 좋지 않았다. 박종우의 ‘독도 세리머니로 논란이 야기됐던 것이 지난해의 일이고 꽤나 오랫동안 당사자는 괴로웠다. 축구협회의 대응이 아쉽기는 했으나, FIFA의 시선에서는 건강한 공간을 만들자는 전 세계의 약속을 어겼다는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입장차를 이해했기에 동메달이 돌아왔으나 밖에서의 시선은 다를 수 있다.

한일전에서 펼쳐진 통천은 더욱 자극적이었다. 제지당할 일이라는 것을 붉은악마 측이 모를 리 없었다. 강행이었다. 일종의 힘겨루기였다. 힘을 겨룰 대상은 아마도 축구협회(혹은 대회 주최 측)였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그 행동으로 피해를 본 것은 일반 팬들이었다. 대응방법에 문제가 있었던 탓이다. 실상 이것이 한일전에서 보여준 붉은악마 행동 중 가장 아쉬웠던 대목이다.
축구협회에 의해 통천이 철거되자 붉은악마는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침묵했다. ‘응원 보이콧이었다. 정말이지, 유감이다. 멀리서도 다리를 꼬고 앉거나 팔짱을 끼고 ‘어디 한 번 해보자던 그들의 자세가 보였다. ‘우리 없이 될 것 같냐던 그들의 속마음대로, 붉은악마가 침묵한 잠실벌에는 울트라 니폰의 목소리만 울려 퍼졌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붉은악마가 응원을 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 집단은 아니다. 때문에, 왜 응원을 하지 않았냐고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또 유감이다. 어떤 형태로든 응원을 해야 할 의무가 있는 집단이라면 ‘보이콧 결정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순수한 형태의 ‘자발적 모임을 주장하는 붉은악마이기에 유감이다. 다른 의도가 보이는 메시지를 내건 뒤 그것이 제지당하자 ‘실력행사를 하던 그들의 모습은 전혀 순수하지도, 자발적이지도 않았다.
축구협회의 한 직원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욕을 많이 먹는 집단은 축구협회”라는 자조 섞인 푸념을 전했다. 그만큼, 어지간한 행동이라면 좀처럼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축구협회다. 어떤 대상과 대립각을 세웠을 시 비난을 듣는 쪽은 대부분 축구협회였다. 하지만, 한일전에서의 힘겨루기 후에는 이례적으로 붉은악마를 향한 화살이 많았다. 순수하지도, 자발적이지도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왜 그랬을까에 대한 붉은악마 내부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응원이란 응원을 받는 대상이 힘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행위다. 누군가의 곁에서 성원을 보내는 행위다. 붉은악마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힘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들이었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잘할 수 있도록 성원을 보내주던 고마운 이들이었다. 그들의 응원은 단순한 목소리 이상의 힘을 전했기에 ‘12번째 선수라는 박수가 나왔다. 그들도 응원을 받던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응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붉은악마는 순수하게 모인 집단이기 때문에 형체가 없는 단체다. 이는 붉은악마 측의 주장이다. 형체가 없는데 항변하는 목소리를 내는 주체가 있다는 것부터 모순이다. 통천을 내건 누군가도 있고, 침묵하자고 선동한 이들도 있는데 붉은악마는 조직이 아니라고 말한다. 모순이다.
붉은악마 덕분에 2002년이 있었다. 온 국민이 붉은악마로 행복했다. 붉은악마가 되어 행복했다. 자기 자신이 붉은악마였다. 순수했고 자발적이었다. 하지만 변질됐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한일전의 침묵은, 겉으로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은 것이나 분명 실력행사였다. ‘힘과 ‘세를 과시한 것이었다. 그 행동이 응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힘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기(응원)에는 힘이 너무 커버린 탓이다.
[MK스포츠 축구팀장 lastuncle@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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