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임성일 기자] 경기가 끝날 때마다 눈물을 보였던 지소연이다. 1차전 북한과의 경기에서도, 2차전 중국전도 1-2로 경기가 끝나자 대한민국 여자대표팀의 에이스 지소연은 고개를 떨군 채 눈물을 훔쳤다. 석패도 아쉽고, 몫을 해내지 못한 자신을 향한 원망도 있었다.
파주NFC 훈련장에서도 지소연은 서러움의 눈물을 쏟은 적 있다. 남자대표팀에게만 향하던 언론의 관심과 남자대표팀과 비교해 여러 가지 지원이 부족한 현실에 ‘울컥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지소연은 반드시 이겨서 팬들의 관심을 받겠다”고 이 악물었다. 그 약속을 번번이 지키지 못해 또 분한 울음을 터뜨렸던 지소연이다. 그렇게 두 번 울었던 지소연이 마지막 경기에서 활짝 웃었다. 한일전에서의 웃음이라 더 의미가 컸다.
서러움을 떨치겠다는 ‘악,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겠다는 ‘깡 그리고 천부적인 축구의 ‘끼가 합쳐진 지소연의 활약상이었다. 스타는, 결정적일 때 빛나야 진짜 별이다. 사진(잠실)= 김영구 기자 |
경기 시작부터 일본은 수준 높은 패스워크를 보여줬다. 어떻게 2011년 FIFA 여자월드컵 정상에 오를 수 있었는지, 간단한 패스로도 일본 여자축구의 ‘급을 확인할 수 있었다. 때문에 전반 13분 지소연의 프리킥 골은 흔한 말로 천금 같았다.
일본(고베 아이낙)에서 뛰고 있는 지소연의 위력은 일본 선수들도 잘 알고 있었다. 지소연이 공을 잡으면 2~3명이 둘러쌌다. 지소연만 막으면 승산이 있다는 듯, 그야말로 집중마크였다. 파울도 많았다. 그 기회를 살렸다.
지소연이 드리블 치고 들어가던 과정에서 어김없이 일본 수비가 달려들었고 페널티 에어리어 앞에서 휘슬이 울렸다. 자신이 만들어낸 프리킥을 자신이 골로 완성시켰다. 오른발 인사이드로 정확하게 공을 맞춘 지소연의 슈팅은 골문 오른쪽 상단을 관통했다. 골키퍼가 몸을 날렸어도 손이 닿을 수 없는 절묘한 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일본대표팀 골키퍼는 지소연과 같은 고베 아이낙 소속의 가이호리 아유미였다. 더욱 짜릿했던 순간이다.
지소연은 골을 넣자 곧바로 벤치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윤덕여 감독에게 펄쩍 뛰어 안겼다. 묵묵히 믿어줬던 윤 감독에게 비로소 빚을 갚았다는 듯 활짝 웃었고 윤 감독 역시 흐뭇하게 제자를 격려해줬다.
지소연의 발은 한 번 더 불을 뿜었다. 1-0으로 불안한 리드를 지키고 있던 후반 21분, 권하늘이 올린 크로스를 집중력을 가지고 쇄도해 밀어 넣으면서 자신과 팀의 두 번째 득점을 성공시켰다. 정확한 트래핑, 골키퍼의 방향까지 확인한 수준급 플레이었다.
불과 6분 뒤 일본이 만회골을 넣었고, 만회골을 넣은 이후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거의 일방적으로 공격을 퍼부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지소연의 두 번째 골은 너무도 값졌다. 만약 1-1 상황이었다면 역전 당했을 공산이 컸던 흐름이다.
‘지메시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지소연이 한국 여자축구에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늘 또래 중 최고였던 지소연은 언제부터인가 또래를 넘어 대한민국 전체의 최고가 됐다. 단연 에이스다. 때문에 부담도 컸다. 일본에서 프로생활을 하고 있는 지소연에게 국내에서 열리는 동아시안컵은 무언가 보여주고 싶은, 보여줘야 했던 무대다. 하지만 1,2차전 모두 침묵했다. 역시 견제가 컸던 탓이다.
뛰는 이나 보는 이나 공통적이었던 아쉬움이 가장 중요할 때 시원하게 사라졌다. 한국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에서 자칫 3전 전패에 그칠 수도 있었다. 상대는 FIFA 랭킹 3위이자 한국의 영원한 숙적 일본이었다. 쉽지 않은 상대와의 중요한 고비에서 결국 지소연이 몫을 해냈다.
경기 후 지소연은 일본한테 이겨본 것이 처음이다”라며 활짝 웃었다. 그는 일본에서 뛰고 있기 때문에 더 잘하고 싶었다. 알게 모르게 (한국 축구를)내려 깔고 보는 경향이 있었다”는 말로 독기를 품고 있었다는 뜻을 에둘러 전했다.
서러움을 떨치겠다는 ‘악,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겠다는 ‘깡 그리고 천부적인 축구의 ‘끼가 합쳐진 지소연의 활약상이었다. 결정적인 순간, 별처럼 빛난 지소연이다. 스타는 필요할 때 가치를 발휘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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