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강남역 1번 출구 앞 한 지하상가. 크지 않은 규모의 가게에는 다양한 포즈의 사진 속 황금희가 손님을 맞이한다. 옷가게뿐 아니라, 다른 모든 분야에서 가게를 하는 분들이 존경스럽다”는 그는 오픈한 지 한 달 정도밖에 안 됐지만 일이 정말 고되다”고 웃었다.
한달 매출은 기백만원 정도. 부자가 될 만큼 장사가 잘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어떤 옷에 관심이 있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관찰을 할 수 있는 게 좋다”고 무한 긍정했다. 또 원래는 교환과 환불이 안 되지만 상황을 보고 웬만하면 해주려고 한다”며 싸지만 질 좋은 옷을 판매하니 대부분 만족하시는 것 같다”고 좋아했다. 그를 알아보는 이들도 있고, 먼저 저 연기자인데요”라며 다가가기도 한다. 시쳇말로 얼굴이 팔렸는데 거짓말하고 속이지 않는다는 걸 어필하기 위해서다. 벌써 장사꾼티가 났다.
배우라고 해서 연기만 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많은 일을 하고 싶을 뿐이에요. 예전부터 패션에 관심이 있었는데 엄마와 같이 일을 벌였죠.(웃음) 영화 제작도 꿈을 꾸고 있고, 학교에서 후배들을 가르쳐보고 싶기도 해요. 물론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할 일이지만요.”
20대 초반 연예계에 화려하게 데뷔한 황금희는 SBS와 전속계약이 끝날 때쯤 당시 꽤 괜찮은 매니지먼트 회사로부터 제2의 심은하, 채시라로 만들고 싶다”는 제의를 받았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아직도 이해할 수 없지만, 당시 그에게 들어오는 일도 소속사로부터 제지당했다. 더 열심히 일하고 싶어 계약 해지를 요구했는데 계약금 500만 원의 10배에 해당하는 위약금과 매니저, 차량 렌탈비 등 1억 원에 가까운 돈을 토해내라는 얘기를 들었다. 법정 싸움으로 이어졌고, 2년가량 일을 쉬어야만 했다. 부모님은 충격에 쓰러지기도 했다.
공황장애와 대인기피증, 우울증을 심하게 겪었어요. 일을 못 할 정도였죠. 사람 만나면 벌벌 떨리고, 누군가 나를 죽일 것 같았어요. 참을 수 없었던 건 그때가 연예인 비디오테이프나 최음제 사건 등이 터졌을 때였던 것 같은데 나를 색안경을 끼고 쳐다보더라고요. 슬펐죠. 세상이 무섭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됐어요.”
황금희는 배우 이광기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시간이 조금 흘러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프로필을 돌리고 다닐 때 이광기가 2003년 경인방송 시트콤 ‘러브러브에서 파트너로 출연하지 않겠느냐고 제의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개그맨 이봉원, 최양락 등과도 호흡을 맞출 수 있었다. 이후 황금희는 연기력 칭찬을 받은 드라마 ‘신돈, ‘나쁜여자 착한여자 등에 출연했다.
또 무엇보다 통쾌한 복수도 할 수 있었다. ‘나쁜여자 착한여자 할 때였는데 그 매니저가 촬영장에 중국 관광객들을 데리고 견학을 다니고 있더라고요. 눈이 마주쳤는데 무슨 깡이었는지 썩소를 날리고 ‘잘 지냈느냐?며 악수를 했어요. 제가 똑똑했다고 생각했는데 충격이 커서 그런지 그 사람 이름은 생각은 안 나네요. 그 사람은 이쪽 일을 더는 안 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몇몇 동기들은 활동을 접었지만 대부분 여전히 열심히 활동하는 것 같아요. ‘나는 주인공만 할 거야라는 생각에 스스로를 가두면 안 되죠. 또 ‘고상하게 살 거야하면 배우 하면 안 되는 것이고요. 우리는 남에게 희로애락을 주는 직업이잖아요.”(웃음)
황금희는 최근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를 다룬 단편 ‘진달래꽃 지다, 비정규직 노동자 이야기를 담은 ‘소리 없는 남자 등을 촬영했다. ‘누구나 비밀은 있다(2004), ‘게임의 법칙(1994) 등을 연출한 장현수 감독의 9년 만의 복귀작 ‘애비도 끝냈다.
예술영화, 실험영화에 관심이 있는 듯 보인다고 하자 황금희는 배우에게 작품을 어떤 장르로 나누는 건 우습다고 생각한다”며 배우는 어떤 장르에서건 모두 만능이어야 한다”고 웃었다. 하정우씨나 최민식 선배 등이 예술 영화에도 가끔 참여하시잖아요. TV나 영화뿐 아니라 연극에도 열정적인 분들도 계시고요. 관객들에게 조금 더 다가가고 다양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8월에는 또 다른 영화와 TV 작품으로도 관객과 시청자들을 찾는다. 옷 가게 사장 역할도 병행한다. ‘이 일은 하고 이건 안 해야지!라며 고를 때는 앞으로 나갈 수 없었어요. 고르지 않고 책임 의식을 가지고 소통하겠다는 생각을 하니 뭔가 좀 일이 되는 것 같아요. 열심히 연기하는 모습을 보니 감독님이나 제작사들로부터 전화도 꽤 많이 받고요. 과거를 생각해보면 참 바보 같았던 것 같아요. 지금 알고 있는 것을 왜 그때는 몰랐을까요?”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