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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일의 맥]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 자식들의 ‘머리’를 깨우다
입력 2013-07-02 10:25 

최강희 감독은 ‘아버지 유형의 지도자다. 세세하게 지적하거나 소소하게 간섭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급하게 무언가를 내놓으라고 닦달하지도 않는다. 방향을 제시하면, 그에 맞게 지시한 뒤 꾸준하게 지켜보며 믿고 기다려주는 타입이다.
스스로도 단기간에 성과물을 거둬야하는 ‘대표팀보다는 장기레이스를 선수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클럽에 더 어울리는 지도자라고 말하는 것도 그런 성품과 무관하지 않다.
최강희 감독은 아버지 유형의 지도자다. 넉넉한 품으로 자식을 받아준다. 하지만 그런 푸근한 아버지가 한 번 화를 내면 집안이 발칵 뒤집히는 법이다. 사진= MK스포츠 DB
어지간한 잘못은 허허 넘어가는, 품이 넓은 아버지 같다. 자식 입장에서는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바위나 큰 나무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그런 아버지가 한 번 화를 내면 정신이 번쩍 드는 법이다. 불호령이 떨어지면 집안은 온통 긴장모드 발동이다. 집을 꽤 비웠던 아버지가 돌아와 호통을 한 번 쳤던 전북의 상황이 그러했다.
‘봉동이장 최강희 감독이 6월30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경남FC와의 K리그 클래식 15라운드 홈경기를 통해 전북의 사령탑으로 돌아왔다. 국가대표팀 수장으로서 1년6개월의 ‘외도 아닌 외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그를 반기기 위해 훈련장까지 많은 팬들이 찾았을 정도로 기대도 설렘도 컸다. 선수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애초 선수들은 두 팔 벌려 최강희 감독을 반기려했다. 그런데 막상 팔을 벌리려는 차, 머쓱한 일이 발생했다.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전북의 구단 관계자는 첫 훈련 때 주장이나 고참 선수가 꽃다발을 증정하면서 감독님을 맞이하는 아름다운(?) 그림을 계획했다. 그런데 선수단 미팅 후 그럴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이유인즉슨, 돌아온 아버지가 근엄한 표정으로 흔치 않은 호통을 쳤기 때문이다.
경남과의 경기 전후로 최강희 감독의 입을 통해 그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최 감독은 원래 1년 내내 팀을 이끌면서도 싫은 소리나 자극적인 말은 잘 하지 않는 편이다. 1년에 한 번 할까말까 할 잔소리를 돌아오자마자 했다”고 고백했다. 팀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기에 ‘아버지 입장에서 나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최 감독은 팀 분위기나 정신적인 준비가 엉망인 수준이더라. 시즌 중인데도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설렘이나 집중력이 현격히 떨어져있었다”면서 얼토당토않은 경기력이 나오는 것은 그만큼 정신력이 해이해졌다는 뜻이다. 훈련할 시간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내가 선수들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정신 상태를 다잡는 것 밖에는 없었다”는 말로 ‘혼쭐 낸 배경을 설명했다.
애초 대표팀 감독에서 물러난 후 어느 정도 휴식기를 가질 것으로 예상됐던 최강희 감독의 복귀 시점이 예상보다 빨랐던 것도 팀의 하락세를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던 까닭이다. 최 감독은 나도 어느 정도 지켜본 뒤 복귀하고 싶었으나 내 욕심만 채울 수는 없었다. 이것도 내 운명”이라는 말로 서둘러 되돌아 온 이유를 설명했다. 아버지 입장에서 더 이상의 수수방관은 아버지의 책임과 의무에 어긋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래서일까. 경남전에 임하는 전북 선수들의 ‘정신무장은 달라져 있었다.
별 다른 훈련 없이 따끔한 일침하나로 전혀 다른 경기력이 나오는 것도 또 축구다. 돌아온 아버지가 자식들의 ‘머리를 깨웠다. 사진= MK스포츠 DB
결과적으로 4골이나 뽑아내고 내준 실점은 없으니 시원한 대승이었다. 최강희 감독을 처음 접한 외국인 공격수 케빈, 그리고 부연 설명이 필요 없는 애제자 이동국 등 의미 있는 공격수들이 나란히 2골을 터뜨리면서 최강희 감독과 함께할 ‘닥공시대 2부의 서막을 제대로 알렸다. 그러나 실상 경기 초반의 흐름은 썩 좋지 않았다.
공격을 주도한 쪽은 경남에 가까웠고 전북이 밀렸던 흐름이다. 경기 후 최강희 감독은 경남의 최근 상승세가 워낙 매섭기 때문에 전반에는 실점을 하지 않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는 뜻을 전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더 강했다”는 말로 고전도 시인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또 중요하게도 골은 허용하지 않았다.
경남 스스로의 실수가 무득점의 주원인이기는 했으나 보이지 않는 힘의 영향을 간과할 수 없었다. 전북 선수들의 투지다. 전술적인 약속된 플레이는 수준에 미치지 못했으나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뛰고 있음은 눈에 보였다. 신바람을 내면서 상대를 윽박지르는 것이 익숙한 전북과는 어울리지 않는 강한 ‘투지가 보였던 경기다. 사실 최강희 감독이 경남전에서는 가장 바랐던 모습이었다.
경기 후 최 감독은 인위적으로 분위기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 경기는 어쩔 수 없었다. 선수들이 이해해줄 것이다. 이제 고비를 잘 넘겼기 때문에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라면서 정신적인 면만 강조했던 것은 선수들이 가진 재능이 충분하다는 것을 잘 알고 또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렵고 부담스러운 경기를 대승으로 끝냈으니 이제 자신감을 찾을 것”이라는 말로 흐뭇한 기대감을 전했다. 아버지다운 덕담이었다.
정신력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말은 분명 참에 가깝다. 하지만, 정신력의 힘은 한계를 모른다는 말도 부인하기 어렵다. 몇날 며칠을 반복해서 전술훈련을 소화해도 필드에서 구현되지 않는 것이 축구이고 별 다른 훈련 없이 따끔한 일침하나로 전혀 다른 경기력이 나오는 것도 또 축구다. 그것을 봉동이장 복귀전에서 전북이 보여줬다. 그래서 지도자가 또 중요한 것이다.
경기 후 이동국은 역시 응집력의 차이인 것 같다. 우리 팀에는 좋은 선수들이 많다. 하지만 그 좋은 선수들이 다른 생각들을 가지고 각자 따로 놀았던 것도 사실”이라고 고백한 뒤 감독님이 중심을 잡아주니까, 무엇이 필요한지 짚어주시니까 뭉치는 힘이 달라진 것 같다”면서 ‘최강희 효과를 에둘러 설명했다. 돌아온 아버지 효과다.
이제는 축구판도 과학의 힘이 크게 영향을 미치지만 여전히 과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축구판이다. 딱 부러지게 설명되면 그것도 재미없는 법이다. 어차피 축구는 둥근 공을 손보다 부정확한 발이나 머리로 하는 경기다. 그 머리에는 ‘정신도 포함이 된다.
[MK스포츠 축구팀장 lastuncle@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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