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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넘은 ‘판정 논란’ 악순환…프로야구 멍든다
입력 2013-07-01 06:04 

[매경닷컴 MK스포츠 서민교 기자] 올해 프로야구에 새로 등장한 불명예 화제어가 있다. 심판 판정과 오심이다. 유독 많다. 오심이 나올 때마다 이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해당 심판의 이름이 등장하는 웃지못할 해프닝이 속출하고 있다.
심지어 곪을대로 곪은 판정 시비 끝에 사고가 결국 터졌다. 지난 29일 대구 KIA-삼성전에서 선동열 KIA 감독이 심판 판정에 강한 불만을 품고 선수단을 철수시키는 사태가 벌어졌다. 심판에 대한 불신이 어느 정도인지 분노로 표출한 사례다. 결과적으로 오심이 아닌 정확한 판정을 위한 과정이었지만, 이미 불신으로 가득한 선 감독 입장에서 나온 이해할 만한 수준의 불상사였다.
프로야구 판정 논란 악순환의 결정판. 지난 29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심판 판정에 분노를 참지 못한 선동열 KIA 타이거즈 감독. 사진=김재현 기자
예컨대, 심판은 그림자 같은 존재다. 빠르고 정확한 판정과 매끄러운 경기운영이 심판의 최우선 역할이고 책임이다. 흔히 심판을 ‘포청천에 비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 프로야구는 심판이 심판을 받고 있다. 씁쓸한 현실이다. 유독 올해 오심이 많이 부각되는 이유가 뭘까.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심판의 명확하지 않은 판정 때문이다. 심판도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횟수가 잦다. 그 가운데 명백한 오심도 있었고, 오심이 아닌 정확한 판정도 있었다. 또 리플레이 영상으로 수차례 돌려봐도 판단하기 힘든 애매한 판정도 있었다. 이유를 막론하고 심판의 책임이 크다. 심판의 자질 부족은 심각한 문제다.

하지만 오로지 심판의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잇단 오심에 피해의식이 쌓인 구단과 팬들의 예민한 반응도 악순환을 부추기고 있다.
올해 프로야구 심판들은 설 곳이 없다. 자칫 판정 실수라도 하면 매장 당하기 일쑤다. 당장 야구계를 떠나야 할 판이다. 방송 카메라의 획기적인 발전으로 현장에서 순간적으로 판단하기 힘든 판정도 리플레이 영상으로 정확하게 잡아낸다. 야구 팬들의 비난이 폭주하는 시점도 이때부터다. 심판들은 순식간에 사람보다 못한 죄인이 된다. 도 넘은 비난을 맨몸으로 감수해야 한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소속의 A심판은 요즘은 야구장에 가는 게 무섭다”고 했다. 이 심판은 내가 왜 이런 직업을 택했는지 회의감을 처음 느끼고 있다. 우리는 큰 혜택을 받는 직업군이 아니다. 그런데도 야구를 좋아하기 때문에 시작했고, 사명감으로 그라운드에 나간다. 그런데 요즘은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은 심정만 들 뿐이다”라고 털어놨다. 이어 가족도 있는데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과 비난을 받으면 정말 괴롭다. 잠도 못자고 심장이 뛰어 죽을만큼 스트레스가 크다”고 괴로운 심정을 토로했다.
반복되는 심판 판정 시비도 이런 부담감과 압박감에서 나온다는 의견도 많다. A심판은 경기가 시작되면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오심을 하지 않기 위해 집중만 한다. 혹시라도 오심을 할까봐 느끼는 압박과 부담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며 그러다보니 여유도 없어지고 더 경직된다. 그러다보니 시야도 좁아지고 순간적으로 머리가 하얗게 되는 악영향도 있다”고 했다.
4번타자가 심한 부담감을 느끼면 몸이 경직돼 오히려 타격이 되지 않는다. 심판도 선수와 같은 심적 고통을 받고 있다. 눈앞에 펼쳐진 뻔한 판정도 어이없는 오심으로 둔갑해 버리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박재홍 MBC 스포츠+ 해설위원도 최근 잇따라 불거진 오심과 관련해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쳤다. 박 해설위원은 심판도 사람이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실수를 할 수는 있지만, 중요한 경기나 중요한 상황에서 결정적 오심은 나오면 안된다”고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이어 박 해설위원은 일부러 오심을 하려는 심판은 한 명도 없다”며 심판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다. 특히 이슈가 많이 되면서 이 부분만 더 부각이 되니까 압박감이 큰 것 같다. 일방적인 욕설 위주의 댓글 문화도 심판들의 심리적인 부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배려가 좀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최근 비디오 판독의 확대 도입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KBO는 홈런 유무에 대해서만 비디오 판독을 한다. 장단점이 분명하다. 비디오 판독이 무분별하게 확대될 경우 오심을 바로 잡을 수도 있지만, 오히려 경기의 흐름을 끊고 심판의 고유 권한을 땅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 심판의 존재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실제로 오심 악순환으로 비디오 판독을 확대 도입한 사례가 있다.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은 2010년 비디오 판독의 범위를 넓혔다. 판정 시비가 있을 때마다 양 팀 벤치에서 비디오 판독을 요청하면서 경기가 늘어지고 지연됐다. 이 가운데 오심으로 판정이 번복된 사례도 많지 않다. 비디오 판독 확대의 예고된 논란은 결국 골칫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말이 있다. 스포츠는 기계로 찍어내는 것이 아니다. 완벽한 판정을 내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심판은 오심을 최소화시킬 수 있도록 자질을 키워야 하고, 구단은 심판 판정을 신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기 자체가 엉망이 된다. 팬들의 성숙한 비판 자세도 보태져야 한다.
올해 프로야구는 각 구단, 심판, 팬 모두 충분히 상처를 받았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필요할 때다. 국내 최고의 흥행 스포츠가 도 넘은 판정 시비로 멍들고 있다.
[min@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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