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검정고시출신 손빈희씨 변호사됐다…'실력이 우선!' 화제
입력 2013-05-10 14:01  | 수정 2013-05-10 14:04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요. 같은 생각, 같은 고민을 공유하다 보면 10살 많은 언니·오빠들과의 벽도 없어지죠"

대학에 갓 입학했을 법한 앳된 얼굴의 손빈희(22·여)씨가 제2회 변호사 시험에 당당히 합격해 어엿한 변호사가 됐습니다.

14살 때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하면서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그는 대학을 조기 졸업하고, 19살 때 동아대 로스쿨에 최연소로 합격해 또다시 주목받았습니다.

학원과 과외를 전전하며 명문대를 고집하고, 스펙쌓기에 열을 올리는 교육 풍토에서 그가 걸어온 길은 새로운 '롤 모델'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다음 달 중순이면 손씨는 '국제거래 전문변호사'가 되겠다는 다부진 꿈을 안고 미국 유학길에 오릅니다.


"우리나라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 많아지면서 국제 무역이 급증했잖아요. 수요는 많은데 이를 전문적으로 뒷받침해 줄 변호사가 부족한 실정입니다. 제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제거래 전문변호사가 돼보고 싶어요."

중의학을 공부하는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 갔을 당시 법을 잘 몰라 사기당하는 한국인을 많이 목격하고부터 손씨는 변호사의 꿈을 꿨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법'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선진국이라고 믿었던 우리나라도 아직 국제거래법에 있어서는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알고 더 큰 도전을 꿈꾸게 됐어요"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현지 사정을 잘 모르는 외국 로펌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현실도 그가 국제거래 전문변호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됐습니다.

한자가 가득한 두꺼운 법전을 공부하는 것이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어릴 적 '홈스쿨링'을 통해 익힌 공부 방법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늘 스스로 공부해왔기 때문에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이나 집중도를 높이는 노하우 등이 몸에 배어 있는 것.

덕분에 손씨는 자신보다 평균 10살이나 많은 로스쿨 동기들 사이에서도 모의고사 시험을 보면 1등을 하는 등 꾸준히 상위권 성적을 유지해왔습니다.

"부모님은 늘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져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주셨어요. 좌절하고 극복하고 이겨내기를 수천번 반복했죠. 나이는 어리지만 누구보다 깊고 넓은 시야를 가졌다고 자부할 수 있어요. 문득 중국 생활이 떠오르네요"

손씨의 부모는 초등학생인 딸 셋을 중국에 두고 먼저 귀국했습니다. 타국에서 생활비며 살림살이며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대소사를 아이들 스스로 책임져야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손씨 세 자매는 일찌감치 '자신만의 인생철학'을 세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제 고향은 인구 20만명의 작은 소도시인 충북 충주예요. 그런 제가 세계에서 제일 인구가 많은 중국 땅에서, 맏이로서 집안일을 이끌어 나가다보니 생활하는 것 자체가 배움이었죠"

어머니 윤미경(47)씨는 "어린 나이에 로스쿨에 들어갈 때만 해도 '수업을 이해만 해줬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훌륭하게 적응하더라"며 "간절히 원하는 목표가 있다보니 어려운 공부도 즐겁게 이겨내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딸이 주변에 휘둘리지 않고 넓은 세상 한 가운데에 우뚝 섰으면 좋겠다"고 소망했습니다.

손 씨는 2004년 8월 고입 검정고시를 통과한 뒤 8개월 만인 2005년에는 고졸 검정고시에도 합격했습니다. 이듬해 자신의 공부 노하우를 담은 '손빈희의 공부가 쉬워지는 동화'(미다스북스)를 펴내기도 했습니다.

이어 2006년 부산외대 법학과에 4년 장학생으로 입학, 3년 만에 수석으로 조기졸업 했으며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에 최연소로 합격해 국제 변호사를 목표로 공부해왔습니다.

손 씨는 "홈스쿨링의 가장 큰 적은 '불안함'인 것 같아요. 사회에 나가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지 늘 불안하죠. 하지만 자신을 믿고 극복하면 분명히 성공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해요"라고 조언 했습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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