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발길질 작렬 공효진, 욕하는 박해일, 더러운 윤제문…환상의 가족

‘공블리(공효진+러블리)는 오간 데 없고, 욕하고 발길질 작렬인 미연만 있다. 두 번 실패했으나 세 번째 남자와 행복해지려는 ‘자유연애주의자다. 외모와 목소리만으로 여심을 흔들어 놓는 박해일도 없다. 영화 한 편 말아 먹고 자살까지 생각하는 지질하고 궁상맞은 인모만 있을 뿐이다. 조카가 담배 피우는 걸 눈감아 주는 대가로 ‘삥 뜯는 삼촌이기도 하다.
윤제문은 또 어떻고. 언제 어디서나 카리스마를 내뿜던 그였는데 시도 때도 없이 방귀를 부욱 뀌어대며, 사타구니를 긁어대는 한심한 첫째 아들 한모로 변신했다. 여자 팬티를 뒤집어쓰고, 혼자 성적 욕구를 해결하기도 한다. 교도소에 몇 차례 갔다 온 전력도 있는 건달이기도 하다. 전형적인 민폐, 빈대 캐릭터다.
첫째와 둘째 한모와 인모는 얼굴을 대면하자 흡사 프로레슬링을 보는 것 같이 육탄전을 벌이고, 막내 미연은 첫째 오빠가 소파에서 낮잠을 자며 까뒤집어 놓은 거대한 배를 있는 힘껏 밟아버린다. 이들이 펼치는 ‘욕 배틀 같은 막말은 리얼함 그 자체다.
삼 남매의 엄마 윤여정도 평범하진 않다. 집 앞에 핀 한 송이 꽃이 예쁘다는 감수성 가득한 여자이면서, 삼겹살과 된장찌개를 매일 준비하며 자식들을 배부르게 먹이고 싶은 엄마다. 다른 배우들 못지않게 중심축을 제대로 잡아낸다. 이 집안의 조카이자 손녀인 미연의 딸 민경(진지희)도 막무가내 10대라는 점에서 한 핏줄이다.

이들 5명이 영화 ‘고령화 가족의 천방지축 콩가루 집안 구성원들이다. 정말 말도 안 되는 가족 같다. 하지만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이들을 인정하게 되는 게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 같다. 뉴스를 보면 때때로 말도 안 되게 이상하고 괴상한, 또는 무서운 가족들도 있으니까. 또 한모나 인모, 미연의 행동이 남다르긴 해도 패륜을 저지르지는 않는다.
각자 나름의 고충이 있는 이들이 한집안에 모여서 가족과 식구라는 단어의 뜻을 찾아가는 과정. ‘고령화 가족의 줄거리다. 어느새 가족의 따뜻함과 구심점이 필요한 이유, 가족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기쁜 일이라는 것을 가슴 뭉클하게 전한다. 그간 일이 잘 풀리지 않았어도, 세상이 살기 어려워도 집과 가족은 재충전의 기회를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영화는 특히 가족의 의미를 전하는 방법이 쥐어짜 내는 감정이 아니라 편하고 재미있게 다가온다. 콩가루 집안 같지만, 콩(으로 만든 된장찌개) 하나도 같이 나눠 먹는 집안이 되는 모습이 기분 좋은 여운을 남긴다.
영화 ‘파이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등을 연출한 송해성 감독은 천명관 작가의 동명 소설의 무겁고 낮은 이야기를 주제의식을 살리면서도 조금 더 밝게 그려냈다.
그 때문인지 신선하면서도 재미가 두 배가 된다. 소설의 분위기를좋아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배우들의 디테일이 살아있는 연기가 영화를 풍부하게 살렸으니 믿고 봐도 될 만하다. 112분. 15세 관람가. 9일 개봉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