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정완진의 The CEO] '요트는 내 운명', 40년을 요트와 함께한 '알리아마린' 이화수 회장의 요트 이야기
입력 2013-05-03 16:10  | 수정 2013-05-03 16:11
특수층의 전유물이라 여겨지며 사람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갖지 못했던 요트. 그 요트가 이제는 대중들에게 더 다가가기 위해 변신을 준비 중입니다. 바로 알리아마린의 이화수 회장의 손을 통해서입니다. 처음 일본에서 요트를 접한 후 세계 일주를 거쳐 지금의 요트 대여 사업을 하기까지. 요트에 울고 웃었던 이화수 회장만의 특별한 인생 이야기와 사업 이야기를 MBN ‘정완진의 The CEO'에서 만나봤습니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입니다.


Q.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본다면?
제가 47년생입니다. 당장 나라 사정도 어려웠고 먹고 사는 것이 힘들 때였습니다. 저희 아버지와 친척 분들은 자동차 산업에 뛰어드셨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개척 정신과 도전 정신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경영자, 사업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Q. 대학 졸업 후, 어떤 길을 걸었는지?
가업을 잇기 위해 아버지가 경영하는 회사에 들어갔습니다. 아버지가 회사의 경영인이라고 해서 일을 게을리 할 수는 없었죠. 밑바닥 직원으로 들어가서 차근차근 하나하나 회사는 어떻게 경영이 되는 것인지 배웠습니다. 그러다보니 저에게도 경험이 쌓이기 시작했고 팀장을 지나 부장의 자리까지 앉게 되었습니다.


Q. 요트를 접하게 된 계기는?
부장의 자리에 앉게 되면서 당시 젊은 리더들을 위한 JC 청소년 회의소라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본 교토로 연수를 가게 되었는데 그 때 일본에서 처음으로 요트를 보게 되었습니다. 바다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요트를 보고 순간 ‘저런 것이 있다니!라는 생각이 들고 놀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지고 있던 도전 정신이 꿈틀거리면서 ‘언젠간 내가 꼭 저걸 타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그 생각은 한국에 돌아와서도 멈추지 않았고 요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Q. 한국에서 요트를 접하게 된 것은?
요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으면서 한국에서 요트를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한국 요트 클럽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당장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그곳에서 당시 우리나라 유일의 요트 제작자인 김학선 선생님을 만나게 됐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었던 요트를 배우겠다고 나서는 저를 보시고는 흔쾌히 요트를 가르쳐 주시겠다고 하셨고 바로 요트를 배우게 되었죠. 이왕 도전한 거 끝을 보자라는 생각에 훈련을 하고 또 했습니다. 심지어 요트를 직접 주문해 연습하기까지 했죠.


Q. 요트를 본격적으로 배운 후, 어떤 일들을 하셨나요?
대한요트협회를 설립하는데 동참했습니다. 당시 요트에 대해 많이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제가 경기담당 이사를 하게 됐습니다. 국가 대표를 선발하고 국제 대회에 참가할 수 있게 해주는 일이 주 업무였죠. 그리고 뉴델리 아시안 게임과 LA 올림픽 등에 참가를 하며 경험을 쌓았고 이 무렵 고려자동차공업사의 대표로까지 취임을 하게 됐습니다.


Q. 요트 사업을 하겠다고 생각한 결정적 이유라도?
대표로 취임을 하고 나서 어딘지 모르게 허전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요트를 탈 때의 마음을 계속 느끼고 싶었죠. 또 저는 요트가 너무 좋고 매력 있는 수상 스포츠라고 생각했지만 대중들의 시선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회사를 매각한 뒤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요트를 널리 알리고자 요트 사업을 하기로 마음먹었고 ‘알리아마린이라는 요트 대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요트를 제작해왔습니다. 프랑스에 제작을 맡기게 된 것은 제가 세계 일주를 한 계기가 되기도 했고요.


Q. 세계 일주를 시작한 계기는?
요트를 제작하는 비 외에 운반비를 따로 지급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제가 프랑스로 날아가 직접 요트를 운항해서 우리나라까지 운반해 오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이 기회가 두 번 다시없을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친김에 세계 일주를 해보자는 도전 정신이 일어났습니다. 또 그러면서 독도를 경유해 독도가 우리나라 땅이라는 것도 알리는 일을 하고 싶어졌습니다. 물론 힘든 일은 많았습니다. 악천후를 만나 요트가 뒤집힐 뻔한 일도 있었고 해적을 피해 다니는 것도 힘든 일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요트를 알리고 또 독도가 우리나라 땅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어떤 사명감 같은 것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게 했죠. 120일 간의 여정은 우리나라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고 덕분에 사람들에게 요트를 알릴 수 있었습니다.


Q. 요트 사업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달라졌나?
요트의 특성상 겨울에는 이 사업이 활성화 될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해서 일단 대중들이 많이 즐길 수 있는 방향으로 기획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요트 선상에서 파티를 열기도 하고요. 기존에 없던 또 하나의 모임 공간을 만들었다고 할까요? 차차 백화점 등의 VIP 행사나 기업 임원들의 연수 장소로 쓰는 것을 시작으로 점차 퍼지기 시작하더라고요. 또 드라마나 영화의 촬영지로도 자주 찾는 곳이 되었고요.


Q. 이화수 회장에게 요트는?
제 나이가 예순이 넘었습니다. 요트를 탄지는 어느 덧 40년이 되었네요. 요즘은 100세가 넘게 산다고 해서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인생을 80년 산다고 봤을 때 요트와 제 인생 절반을 넘게 살았다고 봐야하죠. 그러니 요트는 저에게 인생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앞으로의 꿈은?
사실 조금씩 요트에 대한 대중화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아직까지 요트는 특수층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박혀있습니다. 그런 인식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계속 하고 싶습니다. 요트라는 것을 상품화한다기 보다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게 만들고 싶은 것이죠. 또한 더 시간이 지나기 전에 세계 일주를 한 번 더 도전하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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