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 '운명의 날' 개성공단, '인질 카드' 내민 북한
입력 2013-04-29 11:57  | 수정 2013-04-29 17:25
개성공단이 운명의 날을 맞았습니다.

남과 북의 '중대 조치'로 개성공단에 머무는 50명이 잠시 뒤 돌아오면 개성공단에 우리 근로자는 단 한 명도 남지 않게 됩니다.

이들은 특히 개성공단관리위원회 직원들과 변전소, 식수 처리 등 기반시설을 관리하는 한전과 토지주택공사, 수자원공사 직원들입니다.

이들이 빠져나온다는 것은 곧 개성공단의 올스톱을 의미합니다.

현재 개성공단은 우리 쪽이 전기와 공업용수를 공급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없이는 기계를 돌릴 수 없습니다.

말 그대로 개성공단이 폐쇄되는 셈입니다.

개성공단 기계가 모두 멈춘 것은 2003년 설립 이후 10년 만에 처음입니다.


▶ 인터뷰 : 정몽헌 / 현대아산 회장(2003년 당시)
- "꼭 이 사업을 성공시킬 것이며, 그에 대한 모든 결실은 반드시 온 겨레와 함께 나눌 것입니다."

이제 개성공단은 어떻게 될까요?

그냥 먼지 쌓인 채 흉물로 전락할까요? 아니면 다시 공장 기계 소리가 들리는 날이 올까요?

10년간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기업들은 눈물을 삼키며 애써 마음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들어보시죠.

▶ 인터뷰 : 한재권 / 개성공단 기업협회장(4월27일)
-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정부의 갑작스러운 잔류인원 전원귀환 결정에 대해 매우 당혹스럽고 그 결정이 사실상의 공단폐쇄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갑작스런 결정이라도 우리 정부의 결정이라는 점에서 받아들이기로 하였습니다. 하나. 거래선 소유의 제품, 원부자재 관리를 위해 잔류인원이 있었던바 전원귀환 후 이의 보호를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주십시오."

직원들이 무사히 다 빠져나오고, 정부가 피해보전만 확실히 해준다면 기업들로서는 어쩔 수 없지만 개성공단 폐쇄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정부는 기업들의 피해액을 1조 원 정도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개성공단에 남겨 놓은 설비투자만 해도 최소 6천억 원 이상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라도 북한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합니다.

박 대통령의 말입니다.

▶ 인터뷰 : 박근혜 / 대통령(4월17일)
- "위협과 도발을 하면 또 협상과 지원을 하고 위협과 도발이 있으면 또 협상과 지원을 하는 그런 악순환을 우리는 끊어야 합니다."

북한 역시 우리의 강한 압박에 쉽게 굴복할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근로자들 신변이 걱정되면 다 데리고 가라고 오히려 큰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 인터뷰 : 북한 조선중앙TV (4월27일)
- "우리는 괴뢰패당의 무분별한 망동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반드시 비싼 대가를 치르게 하고 말 것이다. 개성공업지구가 완전히 폐쇄되는 책임은 전적으로 괴뢰패당이 지게 될 것이다."

지금 남과 북의 이런 분위기라면 개성공단 폐쇄는 예정된 순서일 것 같기도 합니다.

진짜 북한의 속내는 뭘까요?

정말 개성공단 폐쇄를 감수하겠다는 걸까요?

일각에서는 북한이 남측 인력이 철수하고 나서 개성공단 시설을 이용해 직접 제품을 생산하려 한다는 전망도 있습니다.

지난 2008년 관광객 박왕자 씨 총격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자, 북한이 금강산 호텔과 온정각 등을 몰수해 직접 운영하고 있듯이 말입니다.

개성공단 시설도 이렇게 몰수해 직접 제품 생산을 하겠다고 한다면 우리가 막을 방법은 딱히 없습니다.

전기와 공업용수 공급을 중단하는 정도인데, 글쎄요?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요?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북한이 개성공단 사태 해결을 원하다는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개성공단 우리 쪽 근로자들의 귀환이 시작된 27일 북한은 느닷없이 지난해 억류 중인 한국계 미국인 배준호 씨를 재판에 회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중국에서 북한 전문 여행사를 하던 미국 국적자인 배 씨는 지난해 11월 북한 나진항에 들어갔다가 억류됐습니다.

지난 6개월간 조용히 있다가 갑자기 배 씨의 재판 얘기를 꺼낸 이유는 뭘까요?

재판 결과에 따라 배 씨의 신변은 매우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미국으로서는 자국민인 배 씨의 상황을 모른 척할 수 없습니다.

혹시 북한이 노리는 게 이런 것일까요?

지난 2009년 3월에도 북한은 중국 접경지역을 취재하던 미국 여기자 2명을 억류했고, 이들을 재판에 회부하겠다며 끊임없이 미국을 압박했습니다.

당시 미국은 이들을 구하기 위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평양에 보냈고,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2차 핵실험에 따른 국제 사회의 제재를 누그러뜨리는 선물을 챙겼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미국 특사가 직접 와서 배 씨를 데려가라, 대신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3차 핵실험에 따른 유엔 제재를 풀어라'는 조건을 달까요?

더불어 개성공단 문제에 대해서도 미국이 강경한 우리 정부를 설득해 주길 내심 원하지 않을까요?

북한이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개성공단 폐쇄 카드를 쓰다 잘 안되자 마지막 '인질 카드'를 쓰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어쨌거나 이는 북한이 개성공단 폐쇄를 정말 원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실제로 북한은 '청와대 안주인이 개성공업지구마저 대결 정책의 제물로 만들 심산이 아닌지 지켜보고 있다'는 말만 했지, 먼저 폐쇄하겠다는 얘기는 꺼내지 않았습니다.

북한도 적당히 물러설 것 같지 않고, 우리 정부도 이번에는 북한의 버릇을 고쳐놓겠다는 뜻이 강경합니다.

그렇더라도 남과 북 모두 진짜 개성공단 폐쇄를 원하는 것은 아닌 듯하니, 그 희망의 끈을 완전히 놓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개성공단은 경제협력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남과 북 모두 잘 알고 있으니까요.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신민희 PD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