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 그리고 김정은
입력 2013-04-25 12:14  | 수정 2013-04-25 17:02
한국, 북한, 일본.

여러분은 이 세 국가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주 단순하면서도 위험한 도법으로 보면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와 북한은 한민족이니 아군이라고 해야 할까요?

과거 한반도를 침략한 일본은 남북한 공공의 적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데 2013년 지금 우리의 직접적 위협이 되는 것은 북한입니다.

일본 역시 북한의 도발을 늘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와 일본은 아군이고, 북한은 공공의 적이 되는 건가요?

복잡합니다.

그런데 이게 지금 남북한과 일본이 처한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 나라 지도자들이 어떤 발언을 하고, 어떤 외교적 관계를 맺어가느냐에 따라 동북아 정세는 늘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냉정하게 말해 지금의 동북아 관계는 우리를 매우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북한의 위협 수위는 한껏 고조돼 있고, 일본은 갑자기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우리를 자극하고 있습니다.

일본 각료들과 국회의원 168명은 우리와 중국의 반대에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했습니다.

외교적 비난이 쏟아지자 작심한 듯 또 폭탄발언을 했습니다.

아베 총리의 말입니다.

▶ 인터뷰 : 아베 / 일본 총리
- "나라를 위해 자신의 소중한 목숨을 희생하는 사람들에게 조의를 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우리 각료는 어떤 위협에 굴복하지 않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위협이라니요?

과거 침략전쟁을 인정하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지 말라는 우리의 당연한 요구를 위협이라고 받아들이다니요?

아베 총리는 '한국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항의를 시작한 것은 노무현 시대부터 두드러졌지만, 그전에는 거의 없었다. 왜 갑자기 태도가 바뀌었는지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무슨 뜬금없는 얘기입니까?

그러면 노무현 정부 이전에는 우리가 일본의 침략전쟁을 묵인하고, 용서해줬다는 뜻일까요?

아마도 박정희 대통령 때 한일 국교 정상화를 하면서 돈 몇 푼 준 것으로 모든 과거사를 용서받은 것으로 착각하는 모양입니다.

아베 총리의 말처럼 노무현 정부 때부터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항의가 두드러진 것은 그때부터 일본이 독도를 노골적으로 영토 분쟁화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낮은 지지율에 고심하던 집권 여당이 정치적 계산으로 시작한 독도 망언이 우리를 자극했고, 그래서 우리가 응수한 것인데, 이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따끔한 일침을 들어보시죠

▶ 인터뷰 : 고 노무현 전 대통령(2006년 4월25일)
- "지금 일본이 독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제국주의 침략 전쟁에 의한 점령지의 권리, 나아가서는 과거 식민지 영토권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국의 완전한 해방과 독립을 부정하는 행위입니다. 또한, 과거 일본이 저지른 침략 전쟁과 학살, 40년간에 걸친 수탈과 고문, 투옥, 강제 징용, 심지어 위안부까지 동원했던 그 범죄의 역사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결코 이것을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국민에게 독도는 완전한 주권 회복의 상징입니다."

야스쿠니 참배 역시 이 연장선에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독도뿐 아니라 일본이 저지른 과거사에 대해 결코 얼렁뚱땅 넘어가겠다는 태도를 보인 적이 없습니다.

박근혜 정부 역시 이런 기조는 흔들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박 대통령의 말입니다.

"올바른 역사 인식을 전제하지 않은 미래지향적인 관계는 어렵다. 국제사회는 주변국과 협력이 관건이라며 일본의 우경화는 일본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는 일본에 대한 항의 표시로 윤병세 장관의 방일을 취소했고, 박 대통령의 일본 방문도 미국 다음이 아닌, 중국 다음, 아니 어쩌면 러시아 방문 다음으로 미룰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본의 침략을 명시한 카이로선언과 유엔결의까지 부정하는 아베 총리의 아집이 계속되는 한 한일 관계는 쉽게 회복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북한에 대한 한·중·일 공조 역시 꼬이게 할 수 있습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사설을 통해 이렇게 꼬집었습니다.

"아베 총리의 수치스러운 충동(shameful impulses)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과 같은 이슈와 관련해 매우 중요한 역내 공조를 위협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북한의 위협에 공동으로 나서야 할 한국과 일본이 빨리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어차피 아베 총리의 발언은 국내용이니 그리 개의치 말라는 겁니다.

어제 시사마이크에 출연했던 조갑제 보수논객의 말입니다.

▶ 인터뷰 : 조갑제 / 보수논객
- "..."

어떻게 해야 할까요?

눈앞에 닥친 직접적 위협인 북한에 맞서 아베 총리의 발언은 그냥 적당히 덮어둬야 할까요?

남북 관계가 좋고, 북한이 저러지만 않는다면 일본에 대해 강하게 나갈 수 있으련만, 그런 처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북한과 강 대 강 대치국면과 동시에 일본과 긴장 국면에서 고립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일까요?

박근혜 대통령은 다음 달 미국 방문에서 동북아 정세에서 우리가 주도권을 갖는 '서울 프로세스'를 제안하기로 했습니다.

북한을 포함해 미중일러 등 기존 6자회담 당사국이 기후변화와 대테러, 원자력 안전 등 동북아가 처한 공동의 위협에 대처하자는 겁니다.

교착상태에 빠진 6자회담을 대신해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낼 수 있고, 일본과도 관계 개선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여기다 오늘은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해 남북 실무회담을 하자고 북한에 공식제의했습니다.

▶ 인터뷰 : 김형석 / 통일부 대변인
- "북한 당국은 내일(4.26) 오전까지 우리의 당국 간 실무회담 제의에 대한 입장을 회신해 줄 것을 요구하는 바임. 북한이 이번에 우리측이 제의하는 당국간 회담마저 거부한다면, 우리로서는 중대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밝혀둠."

중대한 조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명시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개성공단 폐쇄를 우리가 먼저 단행할 수도 있다는 최후통첩 아닐까요?

어쨌든 박 대통령이 '서울 프로세스'를 제안하고, 개성공단 문제와 관련해 대화를 거듭 제안한 것은 동북아 정세에서 우리가 주도권을 쥐겠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남북관계에서도, 한일 관계에서도 더는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북한과 일본이 어떻게 나올까요?

오늘은 북한 인민군 창건일입니다.

아직 북한의 특이한 동향은 없습니다.

북한이 더는 무모한 도발 위협을 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대화의 장으로 나와준다면 일본을 대하는 박 대통령의 어깨는 한결 가벼울 수 있습니다.

일본 역시 더는 도발적인 망언이나 야스쿠니 참배와 같은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북한 김정은을 대하는 박 대통령의 짐은 한결 가벼울 수 있습니다.

박 대통령은 이들을 어떻게 설득하면서 동북아 평화협력을 주도할 수 있을까요?

아베 총리와 김정은이 박근혜 대통령을 도와줄까요?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신민희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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