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남북한 긴장고조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태양절이었던 어제는 다행히 충돌 없이 넘어가기도 했는데요. 현재 상황, 정동영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어떻게 보고 계신지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아래는 방송 인터뷰 전문입니다.
▶어서 오십시오.
-안녕하세요.
▶ 2004, 2005년 당시 통일부 장관을 지내셨는데 당시가 공교롭게도 개성공단이 활성화 되던 초기였어요,
-개성공단이 처음으로 가동된 시기였죠.
▶ 지금 이 상황을 보시고 굉장히 안타까우시겠어요.
-많이 안타깝습니다.
▶ 어떻게 풀어가야 된다고 보세요?
-큰 고비는 넘겼는데요. 우리 정부가 좀 더 적극적이고 창의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선 상황관리를 세심하게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엊그제 삐라를 날려 보낸 단체를 막은 것은 잘 한 겁니다. 실익이 없고 백해부익한 일이거든요, 남북관계 악화에 빌미가 될 뻔 했는데 정부가 잘 조치했다고 생각합니다. 조평통이라는 대남 선전기구입니다. 거기서 부정적인 언사를, 남쪽의 대화제의에 알맹이가 없다, 빈 껍데기다 라고 이야기 한 것에 대해서.. 이것은 선전기구에 불과한데 청와대가 나서서 대응한 것은 미숙했다고 봅니다.
▶ 대화거절이 아니다 라고 반응하다가 청와대가 다시 대화거절이 유감스럽다는 뜻을 밝혔는데. 의견조율이 제대로 안 된 부분이 있다고 보세요?
-상황관리를 잘해야 된다는 말씀과 연결되는데요. 내부적으로 조율 되서 단일 된 목소리가 나와야 되거든요. 그 점에서 과거 민주정부 때 운영했던 NSC, 국가안전보장위원회시스템. 저는 그게 우리 실정에 맞는 모델이라고 봐요. 이명박 정부 때는 그것을 없애버리고 이번에는 비슷하게 부활되었는데 안보실하고 외교안보수석실이 나뉘어져 있어요. 둘로 나뉘어져 있으면 일사분란하기가 어렵거든요. 그래서 그 시스템을 잘 손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이번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의 발언에 많은 외신들과 우리 언론들도 귀추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 저희들이 봐야 되고 앞으로 해결책이 모색될 수 있다고 보십니까?
-크게 봐서 케리 효과가 지금 발휘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12일이죠. 서울, 북경, 베이징, 한중일 순방을 했는데. 의례적인 순방이 아니라 오바마 대통령 2기 행정부의 대한반도 정책의 그림을 가지고 왔다고 봅니다. 서울에 와선 6자든 양자든 대화를 하자 라는 원론을 이야기했고 중요한 이야기는 중국에 가서 했어요. 2005년 9.19 공동성명 당시 NSC 위원장이었습니다. 또 통일부 장관으로서 전말을 제가 다 지켜봤고 지휘부를 맡았었기 때문에. 9.19의 의미는 한반도 핵 문제에 본질에 닿아있거든요. 케리 장관이 9.19를 이행할 준비가 되어 있다. 굉장히 중요한 언급이고. 거기에 덧붙여서 동아시아 미사일 방어막 MD가 만일 북한이 비핵화를 하게 되면 축소할 용의가 있다. 굉장히 중요한 언급입니다. 대한반도 대 중국 정책에 있어서. 특히 중국은 미국이 동아시아에 미사일 방어막을 강화하는 것을 중국 자신의 잠재적인 적으로 보고 여기에 대한.. 사실 방어막이라고 하는 것은 공격막으로 전환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이것에 대한 불만과 위협을 이야기 해왔거든요. 중국에 북한 핵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나서라 하는 의미가 있죠. 다시 돌아가서 9.19 이야기를 더 해보면요. 생소 하실 테니까요. 9.19를 실천하면 한반도에 평화가 옵니다.
▶ 9.19 공동성명에 이번 존 케리 국무장관이 의미를 두었고요. 거기에 대한 전제조건 가운데 하나가 한반도 비핵화를 전제로 북한의 정권교체를 시도하지 않겠다는 내용 아닌가요?
-전제라고 하기 전에 9.19자체가 비핵화입니다. 북미 대화든 6자 대화든 테이블에 앉는 것 자체가 비핵화를 전제로 한다고 볼 수 있는 거죠. 9.19의 핵심이 북은 핵을 조건 없이 포기한다는 거거든요. 대신 북이 원하는 얻은 거죠. 미국도 조건 없이 비핵화와 미국의 대북관계 정상화를 교환한 것이거든요. 상호 전제조건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이 두 가지가 다 9.19 에 들어가 있는 건데. 사실 9.19가 그동안 수면아래 있었고 쉬고 있었어요. 특히 지난 5년 동안 9.19 합의를 생산했던 6자 회담은 열리지 못하고 죽어있었어요. 물론 지금 9.19에는 운반수단, 미사일 문제가 빠져 있어요. 북이 가지고 있는 핵무기와 개발 중인 핵 개발 프로그램을 포기 하겠다 라고 선언했고 미국은 수교하자, 그리고 평화체제를 논의하자. 이것이 핵심 골자인데 거기에 운반수단, 미사일 문제는 빠져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것까지 포함해서 9.19의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거죠. 자꾸 이것을 말씀드리는 이유는 내용의 중요성과 함께 이것을 만들어내는 주도적인 역할을 미국도 물론 했지만 한국 외교가 거둔 개가라는 거죠. 한국외교가 적극적으로 주도적으로 역할을 발휘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는 것은 나름대로 전략적 결단이거든요. 포기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겠다는. 그때 그 결단은 남과 협력해서 살아남을 수 있겠다는 판단을 한 거거든요. 9.19를 이끌어낸 것은 2005년 6.17. 김정일 위원장과 제가 대통령 특사로 간 것이 결정적 전기가 되는 거죠. 당시 김정일 위원장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대해 적극적인 희망을 이야기하면서 미국이 자신들을 적대하지 않으면 핵을 포기하겠다는 이야기를 명백히 했고. 제가 평양에 돌아와서 우리 정부가 미국을 적극적으로 설득했고,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의 강경파였던 딕 체니 부통령이라든지 미국의 조야당국에 대해서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북이 원하는 체제 생존. 체제 생존에 대한 문제는 북미 적대관계 해소를 주고 북한의 비핵화를 얻어내야 한다는 주장으로 한국정부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던 것이죠. 그런데 이것이 지난 5년 동안 수면 아래로 들어가고 5년 동안 6자회담이 한 번도 안 열렸었는데. 이번에 케리 장관이 9.19를 이행할 준비가 되어 있다 라고 말한 것은 대단히 중요한 거죠.
▶ 과거 5년 동안 그렇게 의미 있는 9.19 가 묻혀 졌던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과거 MB 정권이 의도적으로 이 부분을 무시했던 건가요?
-크게 봐서 이른바 부시 대통령 정부가 2008년까지 가고 그 이후 오바마 정부 4년이 연결되는데.. 전략적 인내라고 말하지만 실제 전략적 무시 정책이죠. 그러면서 동맹국인 한국의 입장을 존중하겠다고 했는데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대결정책이었단 말이죠. 그런 속에서 남북관계의 악화와 함께 소위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6자회담 틀도 멈춰 선거죠. 역사적 경험으론 대화가 진행되고 있을 때 북한 핵의 능력은 멈춥니다. 그러나 대화가 그치고 대치, 대결 국면으로 접어들면 북은 그 시간과 공간을 활용해서 적극적인 핵 능력을 강화합니다. 지난 5년 동안 대북무시, 압박 정책 속에서 북은 핵실험, 미사일 발사, 인공위성, 우라늄 농축. 5년 전에 비해서 수십 배 커진 핵능력을 가지게 된 거죠. 문제를 풀기가.. 9.19 합의할 당시에 비해서 굉장히 어려워졌습니다. 9.19 합의 당시엔 미국이 북한과 국교를 정상화하고 평화체제 논의를 하면 북은 핵을 폐기할 결단을 했었고. 그래서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도 폭파하지 않았습니까. 미국은 북한을 테러리스트 국가에서 빼주고 한 발 한 발 나가고 있었거든요. 이 방향으로 갔어야죠. 그런데 이것이 멈추면서 지난 5년 동안 북은 핵능력을 엄청나게 키운 거죠.
▶ 미국의 외교적 스탠스 변화가 지금 현재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방안까지 도출할 수 있을 거라고 보세요?
-이제 오바마 대통령도 더 이상 대북 무시 정책을 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어쨌건 북은 대륙간탄도미사일로 전용할 수 있는 기초기술, 위성까지 성공한 입장이고 이미 핵실험은 3번째 했고 거기에는 우라늄 폭탄일 가능성이 있고. 우라늄은 플루토늄보다 훨씬 더 위험합니다. 플루토늄은 여러 가지 시설이 필요해요. 그래서 감시와 추적이 가능한데 우라늄은 지하실에 숨어서 끊임없이 핵 물질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지난 5년 동안의 교훈이 앞으로 4년 동안 오바마 2기 정부의 대북 무시전략, 압박정책으로 방치할 경우 북의 핵능력은 지금보다 훨씬 더 커질 것이기 때문에 이제는 팔을 걷지 않으면 안 되는 단계에 온 거죠. 중요한 것은 미국 혼자로는 안 됩니다. 왜냐면 미국은 북의 핵 보유를 용납할 수 없다, 북은 이제 핵을 포기할 수 없다 라고 부딪치고 있잖아요. 미국과 북이 마주앉아서 절충점을 찾긴 어렵습니다. 누구의 문제입니까. 미국과 북한만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2005년 9.19를 우리가 만든 것처럼 우리가 주도적이고 창의적으로 개입해서 역할을 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우리가 들어가야죠. 북핵문제는 북미문제라고 빠져있을 일이 아니죠. 들어가기 위해서는 전제가 있어야 합니다. 남북이 통해야 합니다. 남북이 소통하지 않으면 아무 수단이 없어요. 북한 핵은 1차, 2차, 3차로 나뉘는데요. 93년 1차, 2003년 2차, 2013년이 3차, 10년 주기예요. 93년 1차 때는 북미제네바 협상. 한국은 완전히 문밖의 남자였어요. 문밖에서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는지 귀를 대고 듣는 참담한 입장이었고. 2차 핵 위기 때는 한국이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개입해서 2005년 9.19를 만들어서 북이 핵 포기하도록 결단을 만들어냈죠. 그렇다면 2013년 어떤 선택을 할거냐. 자명하죠. 한반도는 1동족, 1동맹, 3동반자 구조로 되어 있어요. 어쨌든 남과 북은 동족입니다. 동족은 소통해야 합니다. 동맹은 공조해야죠. 동반자는 끌고 가야 합니다. 협력을 얻어내야 하는데 오늘 현재 남북 동족의 소통은 끊어져 있습니다. 물론 동맹의 공조는 긴밀하지만. 그리고 동반자들의 협력도 시원치 않습니다. 한중, 한러, 한일관계가 대단히 불편하기 때문에. 우선순위로 개성공단 문제를 풀어내는 것, 이것이 소통을 복원하는 것이고 이 소통을 하게 되면 어떤 효과가 있느냐, 한국의 발언권이 올라가게 됩니다.
▶ 최근 인터뷰를 보니까 고문님께서 개성공단을 개인적으로라도 가서 이야기 하고 싶다는 인터뷰를 봤어요.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어떻게 풀어가고 싶으세요?
-특사 이야기가 나와서 제가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특사는 박 대통령의 최측근이 가야 합니다. 저는 개인자격으로 역할을 할 수 있다면 하고 싶은 거죠.
▶ 어떤 역할을?
-개성의 문지기라도 하고 싶은 거예요. 지금 한반도 평화에는 두 개의 보물이 있거든요. 하나는 개성공단이고 하나는 2005년 9.19이고. 둘 다 우리가 나서서 만든 거예요. 하나는 위기에 처해있고 하나는 5년 동안 죽어 있었고. 이 두 가지를 다시 살려내는 것이 우리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이고 그 일을 하는데 공교롭게 제가 통일부 장관, NSC 위원장 할 때 개성공단이 가동했고 9.19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역할을 해보고 싶은 거죠.
▶ 지금 고문께서 생각하시는 것과 국민들은 다르게 생각하시는 부분들도 있을 거예요. 그런 부분들은 어떻게 설득해 나가야 합니까?
-햇볕 정책이 퍼주기다. 북의 핵능력만 키웠다 라고 하는 사실관계와 전혀 다른. 대화가 진행될 때 북의 핵은 동결되거나 멈췄습니다. 대치국면 속에서 북의 핵능력은 커졌거든요. 민주정부 10년 동안 아들을 군대 보낸 부모 중에 걱정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고 분명히 정상회담 이후에 김대중 대통령이 선언했고 모든 국민들이 이것을 사실로 받아들였습니다. 이제 더 이상 전쟁 운운하는 시대는 오지 않는다고 믿었던 것이 13년 전입니다. 그러나 13년이 흘렀지만 다시 냉전시대로 돌아가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정치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정권 담당자들이 결국 안전하게 하고 보위하고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하니까 그 첫 번째는 남북 간의 긴장을 완화시키고 소통을 재개하는, 무엇보다도 개성공단 재개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 먼저 일했던 분들이 어떻게 생각했고 어떻게 했었는지를 알면 정답을 찾아가는데 더 쉬울 것 같은데요. 앞으로도 좋은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