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 : 한국에서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뭘.
가수 싸이가 ‘젠틀맨(Gentleman)으로 두 번째 세계시장의 문을 두드린다. 싸이는 12일 신곡 ‘젠틀맨의 음원을 전세계에 공개하고 13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단독공연 ‘해프닝(Happening)을 통해 ‘젠틀맨 뮤직비디오와 무대를 최초로 선보였다. ‘강남스타일 이후 두 번째 세계시장을 노크하는 곡이 될 ‘젠틀맨과 그 시작을 알린 ‘해프닝 공연은 싸이라는 아티스트의 정체성을 정확히 보여주는 작품이고 이벤트였다.
◯ ‘해프닝 가장 싸이스러운 쇼
‘라잇 나우(Right Now)로 포문을 연 이날 공연에서 싸이는 ‘연예인 ‘예술이야 ‘어땠을까 ‘흔들어주세요 ‘낙원 ‘위 아 더 원(We are the One) ‘강남스타일 등 자신의 히트곡을 200여 분 동안 쏟아냈다.
자신의 데뷔곡 ‘새를 록 버전으로 편곡하고, 넥스트의 ‘도시인을 국악 버전으로 편곡해 선보이기도 했다. 싸이 공연 중 가장 감동적인 레퍼토리 중 하나인 ‘아버지를 부를 때는 장내가 숙연해지기도 했다.
기실 이날 공연의 레퍼토리는 기존 싸이 공연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규모만큼은 역대 최고였다. 가로 100m, 높이 30m의 거대한 무대와 스탠딩 구역으로 쭉 뻗은 Y자형의 돌출무대에서 싸이는 땀을 흠뻑 쏟아내며 격렬한 안무를 선보였고 모든 곡에 화려한 조명쇼와 폭죽, 꽃가루쇼가 펼쳐졌다. 비욘세를 패러디한 ‘싸욘세 무대는 큰 웃음을 줬고 재치 넘치는 멘트를 쏟아졌다. 싸이는 쉼 없이 뛰어”를 외쳤다.
이날 싸이는 특별 이벤트로 360도 와이어 플라잉쇼를 준비했다. 거대한 상암 월드컵 경기장 허공을 날아다니는 싸이의 모습은 감탄을 터트리기 충분했다. 싸이는 이 무대를 위해 일본에서 특수효과 장비와 기술자들을 초빙했다.
싸이는 공연 전 가진 기자회견에서 나의 모든 활동은 콘서트를 위함이다. 신곡 역시 마찬가지다. 난 가요프로에 나갈 때도 시청자들보다 현장에 계신 분들을 염두에 두고 공연을 하는 사람이다”고 말했다. 공연에 대한 싸이의 기본적인 태도나 애정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이날 공연에는 이하이가 ‘어땠을까의 피처링으로 무대에 올랐고 2NE1과 지드래곤이 게스트로 참여했다. 2NE1과 지드래곤은 열정적인 무대로 관객들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된 공연인 만큼 소속사 YG 식구 관리에도 특별히 신경을 쓴 모습이다.
◯ 싸이의 신곡 ‘젠틀맨 어땠어?
싸이의 신곡 ‘젠틀맨은 일렉트로닉 하우스 장르의 곡으로 멜로디를 단순화시키고 반복적인 비트를 통해 춤추기 좋게 만든 노래다. 전형적인 클럽댄스 곡인 것. ‘젠틀맨은 공개되자마자 국내 모든 음원사이트 정상에 올랐지만 호불호가 상당히 나뉜 노래기도 하다.
이미 유행이 지났다고 해도 좋을 만큼 흔한 스타일에, 곡 구성 역시 단순하다. 일각에서는 ‘너무 쉽고 안전한 선택을 한 것이 아니냐는 반응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해 싸이는 사실 더 힘준 노래도 하나 있는데 이럴때 일수록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일부러 싼티 나는 노래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기실 싸이의 ‘초심 회귀는 지난 ‘강남스타일에서부터 확고했다. 싸이는 ‘강남스타일이 세계적인 인기를 끌기 전에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동안 사람들에게 힘과 희망을 주는, 응원가 같은 건강한 노래를 많이 만들고 부른 것 같다. 그냥 놀자는 내용의 노래를 부르고 싶다. ‘새 같이 포인트가 확실한 춤도 다시 하나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태도는 곧바로 세계적인 센세이션으로 이어졌다. ‘젠틀맨은 그의 초심에 부합하는 두 번째 곡이다. 싼티가 풀풀 나고 웃기는 건 싸이라는 뮤지션의 본래 정체성이다.
13일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젠틀맨의 뮤직비디오와 라이브 무대 첫 공개였다. ‘젠틀맨 무대에 앞서 공개된 뮤직비디오는 ‘강남스타일의 연장선에 있다. 코믹하고 야릇한 상황들과 장면들의 연속이다. 특히 브라운아이드걸스 가인이 출연해 섹시한 표정을 지으며 어묵을 베어 무는 장면은 뮤직비디오의 백미다.
‘강남스타일의 말춤처럼 ‘젠틀맨의 시건방춤도 군무를 추기 적당하게 만들어졌다. 군무에 대한 의도는 뮤직비디오 전체에서 드러난다. 싸이는 MBC ‘무한도전 멤버들, 브아걸 가인과 함께 서울시내 여러 장소를 옮겨 다니며 시건방춤과 꽃게춤 군무를 선보인다.
◯ 싸이라는 아티스트의 정체성
싸이라는 아티스트의 정체성은 노래와 공연, 뮤직비디오, 안무 곳곳에서 발견된다. 싸이는 ‘젠틀맨에서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 시건방춤을 차용했다. 싸이는 13일 기자회견에서 왜 새로운 춤을 만들지 않았냐는 질문에 우리나라에 좋은 춤이 너무 많다”고 답했다.
이날 싸이는 다음번에는 우리나라에 있는 노래 중 너무 좋은 노래를 재해석하는 작업을 할 예정이다”고 밝히고 이를 통해 원래 주인들도 재조명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기실 이 같은 태도는 창작자의 오리지널리티를 첫 번째 가치로 생각하는 뮤지션에게는 상당히 거슬리는 태도일수도 있다. 하지만 싸이는 기본적으로 그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듯 보인다. 이미 좋은 것이 세상에 있으면 이를 활용해 더 재미있게 만드는 게 좋지 않냐는 태도다.
지금까지 싸이는 줄곧 그래왔다. 데뷔곡 ‘새는 ‘비너스를 샘플링한 노래고, 히트곡 중 하나인 ‘챔피언은 ‘엑셀 에프를 샘플링 했다. 싸이는 ‘도시인 ‘환희 ‘뜨거운 안녕 등을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사실 ‘젠틀맨의 뮤직비디오 역시 ‘강남스타일의 자기 패러디다.
13일 공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전세계에 유튜브로 생중계 되는 공연에서 당당하게 비욘세를 패러디했고, 공연의 최고 하이라이트였던 360도 와이어 플라잉에서는 카니발(이적 김동률)의 원곡이자, 인순이가 한차례 리메이크 했던 ‘거위의 꿈을 불렀다.
앙코르에서는 박진영의 ‘날 떠나지마 DJ DOC의 ‘미녀와 야수, 서태지와 아이들의 ‘환상속의 그대, 이정현의 ‘와,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 등을 메들리로 불렀다. 티셔츠를 찢는 퍼포먼스도 사실 비나 2PM 같은 근육질의 아이돌들이 자주 하던 퍼포먼스다. 물론 그는 감탄이 아니라 폭소를 터트리게 만드는 게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해외에서는 코미디언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한 외신기자에 말에 싸이는 한국에서도 그렇다. 코미디언으로 생각하면 그것도 감사하고, 가수도 감사하다. 뮤지션도 감사하다. 난 대중상품이다. 대중이 네임 태그을 달아주는 물건이다”고 답했다.
◯ 가수나 코미디언이나
13일 공연에 앞선 기자회견에서 싸이의 미국 매니저 스쿠터 브라운은 싸이를 ‘언더독(Underdog, 사회적 약자 혹은 패자)이라고 표현해 눈길을 끌었다.
싸이는 미국 사회에서 소수자인 동양인인데다, 잘생기거나 멋진 것과는 기본적으로 거리가 멀다. 하지만 굳이 백인 흉내를 내며 발음을 굴리거나 주류에 편입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래도 당당하고 때론 뻔뻔하기까지 하다. 스쿠터 브라운이 발견한 싸이의 매력은 그것이었다.
신곡을 영어가 아닌 우리말로 노래를 부르자고 한 것도 스쿠터 브라운이다. 처음부터 스쿠터 브라운은 싸이를 저스틴 비버 같은 전통적인 팝스타로 만들 의도가 없었다. 또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대박이 났다고 갑자기 고급스러운 발음으로 영어 노래를 부르는 것은 그의 이미지에 대한 일종의 배신이라는 것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마치 ‘KBS 개그콘서트의 ‘서울 메이트 코너처럼 더 어설퍼야 재미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이 같은 싸이의 포지션은 대중음악 아티스트에게 심한 부담일 수 있다. 음악이 아닌 뮤직비디오와 춤으로 사랑받고, ‘코미디언인지 헷갈리는 싸이의 경우 한 순간 대중들을 즐겁게 해주지 못하면 다시 기회를 잡지 못할 수도 있고, 쉽게 잊힐 위험성도 높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싸이의 타고난 천성이다. 싸이는 원 히트 원더(One hit wonder)가 되지 않겠냐는 우려 섞인 말에 한국에서도 인정받는데 12년 걸렸는데 미국에서도 그 정도 하면 뭐라도 되지 않겠냐”고 답했다.
싸이는 내일을 위해 오늘 걸작을 만드는 종류의 아티스트 보다는 당장의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걸 선택한 아티스트다.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사용해, 남들 걸 빌려서라도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 그의 창작에 대한 태도다. 이 같은 창작 태도는 실제로 뮤지션보다 코미디언의 그것에 가까울 수 있다. 하지만 그를 가수로 부르던 코미디언으로 부르던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그가 현재 전 세계인을 동시에 웃고 춤추게 만드는 예술가라는 점이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이현우 기자 nobodyin@mk.co.kr/사진 강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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