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멘트 】
여러 차례의 남북 경색 국면에서도 개성공단은 언제나 문은 열려 있었던 곳인데요,
개성공단은 어떤 곳인지 김태일 기자가 소개합니다.
【 기자 】
2003년 6월 남북의 정치, 경제계 인사 3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개성공단 착공식.
2000년 남북 첫 정상회담에서 구체화 된 이후 4년 만의 결실을 맺는 순간입니다.
▶ 인터뷰 : 정몽헌 / 현대아산 회장(2003년 당시)
- "꼭 이 사업을 성공시킬 것이며 그에 대한 모든 결실은 반드시 온 겨레와 함께 나눌 것입니다."
▶ 인터뷰 : 최현구 / 중앙특구개발지도 부총국장(2003년)
- "하나의 민족, 하나의 강토를 지향하는 온 겨레의 통일 열기를 더욱 고조시켜 나갈 것입니다."
2004년 12월 남측의 기술과 북측의 노동력이 합쳐진 첫 제품이 생산되면서 개성공단은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이 됐습니다.
현재 입주기업은 모두 123개 기업, 「교역규모는 2010년 14억 4천만 달러에서 지난해 19억 6천만 달러로 매년 성장하고 있습니다.」
「개성공단에 근무하는 북측 근로자는 모두 5만 3천여 명으로 1인당 월평균 임금은 144달러, 1년에 우리 돈 약 960억 원을 벌고 있습니다.」
지난 10여 년간 여러 악재에도 항상 문은 열려 있었던 개성공단.
「북한의 이번 출경금지 조치로 영원한 평화지대로 남을 것 같았던 개성공단의 미래도 불투명해졌습니다.
」
MBN뉴스 김태일입니다.[ kti9558@mbn.co.kr ]
영상편집 : 하재필
여러 차례의 남북 경색 국면에서도 개성공단은 언제나 문은 열려 있었던 곳인데요,
개성공단은 어떤 곳인지 김태일 기자가 소개합니다.
【 기자 】
2003년 6월 남북의 정치, 경제계 인사 3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개성공단 착공식.
2000년 남북 첫 정상회담에서 구체화 된 이후 4년 만의 결실을 맺는 순간입니다.
▶ 인터뷰 : 정몽헌 / 현대아산 회장(2003년 당시)
- "꼭 이 사업을 성공시킬 것이며 그에 대한 모든 결실은 반드시 온 겨레와 함께 나눌 것입니다."
▶ 인터뷰 : 최현구 / 중앙특구개발지도 부총국장(2003년)
- "하나의 민족, 하나의 강토를 지향하는 온 겨레의 통일 열기를 더욱 고조시켜 나갈 것입니다."
2004년 12월 남측의 기술과 북측의 노동력이 합쳐진 첫 제품이 생산되면서 개성공단은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이 됐습니다.
현재 입주기업은 모두 123개 기업, 「교역규모는 2010년 14억 4천만 달러에서 지난해 19억 6천만 달러로 매년 성장하고 있습니다.」
「개성공단에 근무하는 북측 근로자는 모두 5만 3천여 명으로 1인당 월평균 임금은 144달러, 1년에 우리 돈 약 960억 원을 벌고 있습니다.」
지난 10여 년간 여러 악재에도 항상 문은 열려 있었던 개성공단.
「북한의 이번 출경금지 조치로 영원한 평화지대로 남을 것 같았던 개성공단의 미래도 불투명해졌습니다.
」
MBN뉴스 김태일입니다.[ kti9558@mbn.co.kr ]
영상편집 : 하재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