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아이돌이라는 단어는 본래 의미와 다른, ‘기획사의 시스템 속에서 만들어진 가수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아이돌에 이 같은 의미가 부여 된 이후, 지금까지 데뷔 했던 수많은 아이돌 가수 중 보아(BoA)는 단연 가장 완벽한, 무결점의 작품이었다. 똑같은 노래로 100번을 무대에 서도 단 한 번의 실수는커녕 스텝 하나, 손의 위치와 각도 차이도 없었고, 가창력 까지도 한 번의 흔들림이 없었다. 여기에 완벽한 사생활 관리까지 더해졌다.
‘K-팝 시스템이 낳은 가장 완벽한 아이돌이라는 평가는 80% 쯤은 찬사지만 20% 정도는 그녀의 한계를 규정하는 표현이었다. 대놓고 보아를 ‘기계적이라고 까지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럴 법도 한 것이 보아가 보여준 무대들은 기존의 가수들의 내세웠던 ‘아티스트의 자의식과 거리가 분명 있었기 때문이다.
보아는 좋은 멜로디의 노래와, 트랜디 한 스타일, 잘 꾸며진 외모가 뒷받침 되는 시스템 속에서 피나는 연습을 반복해 정상까지 올라갔다. 방송이나 매체 인터뷰에서 ‘뻔하게 착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기존 아이돌과 비슷했을지 몰라도 완벽한 춤과 무대 퍼포먼스 특히 가창력은 보아 이전의 아이돌 가수들과 분명히 달랐다. 분명 당대에, 현재까지도 그 누구보다 완벽한 무대를 보여주고 있지만 단지 그 모든 것들이 분명한 상업적인 성공을 목적으로 한다는 사실 때문에 보아는 하나의 아이돌 상품 쯤으로 여겨졌다.
2013년 1월 26일, 27일 양일간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홀에서 열린 ‘보아 스페셜 라이브 2013 ~히어 아이 엠(BaA Special Live 2013 ~Here I am)는 데뷔 13년 만에 준비한 보아의 첫 국내 단독공연이다. 데뷔 직후 일본 활동을 병행하며 양국에서 정상의 자리에 올랐던 보아는 2003년부터 꾸준히 일본에서 단독 공연 및 투어를 펼쳤지만 국내에서는 이번에 처음 자신만의 무대를 만들었다.
이번 공연에서 보아는 13세의 나이에 불렀던 데뷔곡 ‘아이디:피스 비(ID:Peace B) 뿐 아니라, ‘넘버 원(No.1), ‘걸스 온 탑(Girls on top), ‘마이네임(My name), ‘허리케인 비너스(Hurricane Venus) 등 히트곡들과 미국 데뷔곡 ‘이트 유 업(Eat you up), 일본에서 발표했던 ‘루즈 유어 마인드(Lose your mind), ‘범프 범프(Bump! Bump!) 등을 비롯해 ‘한별 ‘늘... ‘공중정원 같은 발라드곡, 이번 공연을 위해 자신이 직접 작사, 작곡한 ‘그런 너 까지 총 25곡을 불렀다. 이번 공연에는 이틀 간 총 6천 여명의 관객이 몰렸다.
10여명의 댄서, 4인조 밴드와 함께 펼쳐진 두 시간의 공연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하게 준비된 무대들로 채워졌다. 이번 공연에서 보아는 고난이도의 퍼포먼스와 함께 전곡을 올 라이브로 소화했다. 26일 첫 날 공연에서는 ‘마이네임 무대 중 잠시 마이크가 나오지 않는 음향사고가 있었는데 이 사고 덕(?)에 그녀가 모든 곡을 라이브로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10여년간 함께한 댄서들과 꾸민 거의 모든 무대 퍼포먼스와 직접 꾸린 밴드와의 합은 완벽했다. 블랙비트 출신 안무가 심재원과 함께 한 ‘온리 원(Only one) 커플 댄스 퍼포먼스는 그 자체로 독립된 하나의 작품으로 봐도 손색이 없었다. 여타 아이돌 가수들의 공연처럼 다양한 특수효과를 통한 화려한 볼거리는 없었지만 그럼으로써 보아의 퍼포먼스 자체에 대한 집중도는 높아졌다.
두 시간 내내 격렬한 춤과 동시에 흔들림 없이 노래를 부르는 보아의 모습은 마치 춤추고 노래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계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음이탈이 나고 호흡이 가빠지고 동작이 느슨해지는 것이 인간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그녀는 분명 기계에 가깝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냐고 묻는다면 당당히 정답을 말할 수 있는 것은 보아다.
보아는 한 곡, 한 곡의 무대를 관객들에게 표현하며 사유나 혹은 의심이 틈입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그곳에서 관객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무대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감탄과 함성을 쏟아내는 것이 전부였다. 이 처럼 말과 생각 이전에 먼저 가슴을 쿵 하고 타격해 탄성을 끌어내는 무언가를 언어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감동이라고 적을 수 있을 것이다. 가수가 무대에 오르는, 혹은 예술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똑같은 단어를 되풀이해야 할 것이다.
보아 역시 여느 가수들 처럼 공연 중 과잉된 감정으로 소리를 지를 수 있다. 혹은 흔히 하는 것 처럼 땀을 흘리며 안무연습을 하다 지친 표정을 짓거나 발목을 잡고 통증을 호소하는 영상 같은 걸 보여줄 수 있다. 이는 뭉클함이 있을지 몰라도 무대라는 한 작품의 완전무결함을 평가하는 데는 방해가 된다. 마치 ‘나가수에서 청중평가단의 울먹이는 표정을 편집하는 것이 못내 불편한 이유와 비슷하다. 보아는 관객들이 특정 노래의 부분에서 관객들이 단체로 피켓을 들어 올리는 꽤나 감동적인 깜짝 이벤트에도 다음 노래를 생각해 눈물을 흘리지 않는” 철저함의 소유자다. 인간적인 나약함을 드러내 감정으로 호소하는 것을 허락하는 타입의 아티스트가 아니라는 뜻이다. 문자 그대로 ‘완벽하기 때문에 감동적인 것은 보아만이 올라설 수 있는 경지고, 그 자체로 아티스트의 자부심이 된다.
앞서 언급한 사이보그가 등장하는 SF 영화의 세계 속에서 만약 그들에게 영화 속 설정들과 반대로 자유의지로 행동하는 것이 애초에 허락 됐다면 이야기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아이작 아시모프가 정한 로봇 3원칙 중 첫 번째 ‘로봇은 인간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으며, 인간이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방관해서도 안 된다는 원칙만 지켜지기만 한다면 인류에게는 혁명적인 변화가 올 것이다. 그 혁명은 가장 이성적인 이들로 인해 지금까지 인간이 만들지 못했던 가장 합리적이고 평화로운, 말 그대로 더 좋은 세상을 위한 것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아이돌의 스탠다드 보아에게 소위 말하는 ‘아티스트의 자의식이 발현된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 아마 일단 SF 영화 속에서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로봇들과 대비 된 인간 군상들을 우리가 부끄럽게 생각하 듯 누구에게도 아무 감동도 조차 주지 못하는 가수들이 부끄러워 질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 보아는 모든 종류의 가수들과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까지 오를지 모른다. 한 가지 귀띔 하자면 이 변화는 우리가 미쳐 눈치 채지 못한 사이에 이미 시작됐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이현우 기자 nobodyi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