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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정만식 "'7번방의 선물'에 모두가 눈물"
입력 2013-01-27 09:07  | 수정 2013-01-28 11:01

배우 정만식(39)은 강렬한 눈빛과 표정을 통해 특유의 카리스마를 풍긴다. 특히 무표정할 때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섬뜩할 때가 있다. 그래서인지 악역을 꽤 많이 한 듯하다.
하지만 조금 더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가 악역만을 맡은 건 아니다. 영화 '원더풀 라디오'에서 아내를 잃은 사연을 가진 택시기사도, 드라마 '더킹 투하츠'에서 걸그룹 소녀시대를 향한 팬심을 감추지 못하는 북한 장교도 그였다.
23일 개봉한 영화 '7번 방의 선물'에서도 악역은 아니다. 영화는 6살 지능의 딸바보 용구(류승룡)와 평생 죄만 짓고 살아온 7번 방 수감자들이 용구의 딸 예승(갈소원)을 교도소에 데려오기 위해 벌이는 사상 초유의 미션을 그린 휴먼 코미디물. 정만식은 소매치기를 하다 들어온 봉식을 연기했다.
아빠를 만나러 7번 방에 들어오게 된 예승이 탐탁지 않은 봉식이지만 서로 너무 사랑하는 부녀의 모습에 마음이 바뀐다. 극 중 갓 태어난 딸 봉선을 만나기 위해 특사로 나갈 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그이니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정만식은 "내가 악역으로 나오지도 않고, 또 피가 낭자하지 않은 작품"이라며 "재미와 유머가 함께하니깐 좋더라. 내 주변에서도 영화를 보려 하고 좋아한다"고 웃었다.
그는 "아이를 안 좋아한다"고 했지만, "이 영화를 통해 힐링이 많이 된 것 같다"고 했다. 결혼과 아이에 대해서도 생각이 달라졌다. "예승과 떨어져야 하는 승룡 형님이 '미안합니다. 잘못했습니다'라고 하는 걸 7번 방에서 창문을 통해 보고 서 있는데 정말 미치겠더라고요. 영화를 보면서도 울어버렸어요. 같이 본 다른 배우들도 거의 다 비슷한 반응이더라고요."
정만식은 이번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과의 팀워크가 무척 좋았다고 만족해했다. 물론 기량은 맘대로 펼치지 못했다고 볼멘소리(?)도 했다. "말 그대로 조연 어벤져스인데 어떻게 제 기량을 펼쳐요. 장난 아니에요. 팀이어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큰일 났을 걸요? 아이를 통해서 힐링이 됐다면 형님들을 통해서는 교육을 받았죠."(웃음)
정만식은 김정태와 '특수본'과 '원더풀 라디오'에 이어 벌써 세 번째 만남. 하지만 함께 연기 호흡을 맞춘 적은 없다. '7번방의 선물'을 하면서 친해졌다. 박원상과는 '극락도 살인사건'을 했다. 오달수와는 2003년부터 극단 백수광부 때부터 함께 한 인연이 있다. 류승룡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지만 이번에 친해지게 됐다. 그의 말마따나 '조연 어벤져스' 덕분인지 관객은 이들의 연기를 믿고 이 영화를 택했다. 벌써 관객 160만명(28일 영진위 기준)을 돌파했다.
정만식은 "아들이나 딸이 있는 분들은 100% 눈물을 보이더라"며 "일반 상영관에 가서 몰래 보고 나왔는데 몇몇 커플들이 눈물을 닦더라. 그래도 표정은 좋아 보였다"고 만족해 했다.
1993년 연극 무대에 서며 오랜 시간 무명 시절을 거쳐온 정만식. 연극 무대에서 주로 활동한 그를 영화계에 데뷔시킨 건 '똥파리'의 양익준 감독이다. 2004년 연극 '1980 굿바이! 모스크바'를 공연할 때 양 감독이 '잠복근무'의 조감독을 데려왔고, 함께 술을 먹다 오디션 제의를 받고 출연을 하게 됐다. 그는 "70만원을 받고 첫 상업영화를 하게 됐다"고 기억했다.
연기를 하며 희열을 느낄 때는 언제일까. 남들이 자신의 다양한 모습을 보고 놀랐을 때 짜릿함을 느낀단다. 자신이 분명히 나온 작품인데 몰라보는 이들이 "왜 이렇게 다르냐"고 얘기할 때 희열은 최고다.
"오랫동안 연기해왔는데 배역으로 승부해야죠. 정만식이라는 이름은 아직 몰라도 돼요. 연기자가 관객들의 기억 속에서 어떤 역할로 깊이 박혀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다가 잠들면 되는 것이고요."(웃음)
연극 무대가 고난의 삶이라고 하는 이들이 많지만 그는 한 번도 '힘들다'거나 '지겹다', '고생스럽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공연할 때 따뜻한 기억이 있다"며 "혜화역에서 사당역까지 간 뒤 버스를 타고 집(수원)으로 가는데 자고 일어났다. 어떤 분이 내 공연 티켓 뒷면에 샤프로 '공연 정말 너무 잘 봤다'는 글을 남겼다. 감동해서 펑펑 울었다"고 기억했다. 물론 정말 생활이 궁핍해 6~7개월 가량 헬스트레이너로 활동한 적 있다.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정만식은 "돈이 없어 선배들에게 술을 얻어먹을 때도 자랑스럽게 먹었고, 부끄럽지 않았다"고 웃었다. "늘 행복했다"는 그는 후배들에게 항상 해준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연기를 하던 아는 형님이 교통사고로 한쪽 몸이 불편해지셨어요. 그 양반이 소주를 마시며 그러시더라고요. 불편한 입으로 '만식아, 난 언젠가 무대에 다시 설거야'라고 하는데 눈물이 나오는 걸 꾹 참았어요. 연습을 대충하는 후배들에게 '어제 어떤 이가 죽도록 서고 싶었던 무대를 너네가 서고 있는 거다. 그런데 대충하면 정말 죽여 버리고 싶다. 시대가 가진 많은 생각 중 하나를 전달하는 역할들이니 중요하다'고 말하죠."
이제 조금 얼굴을 알린 정만식은 조금 더 인기를 얻었으면 하는 생각은 없다. 더 다양하고 많은 캐릭터를 연기해 보고 싶을 뿐이다. "돈이나 명예는 부수적"이라는 게 그의 생각. 그는 "모두를 얻으려고 하면 속물"이라며 "다른 배우들이 속물이라는 게 아니라 내 개념이 그렇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돈을 많이 준다고 하면 열심히 하게 되긴 한다"고 웃는다.
"류승룡 형님 같이 주인공이 되는 거요? 솔직히 부럽긴 한데 바라지는 않아요. 두렵기도 하고요. 누가 미치지 않고서야 저를 주인공으로 쓰진 않겠죠.(웃음) 저 멀리에 그런 기회가 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전 보이지도 않은 것을 잡으려고 하지 않아요. 일단 제 주위를 더 잘 보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사진 강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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