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진출작이라고 생각한 적 없어요. 진출했다고도 생각한 적 없죠. ‘공기인형 같은 일본 영화에 출연했을 때도 이 작품이 내 연기 인생의 또 다른 발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할리우드 진출작이라고 하시는데 그 얘기 들을 때마다 오글거려요.”(웃음)
할리우드 진출작이라는 생각만 없을 뿐이지, ‘클라우드 아틀라스에 출연한 건 자랑스럽다. 워쇼스키 남매 감독과 톰 티크베어의 공동연출작이었고,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휴 그랜트를 비롯해 톰 행크스, 할리 베리 등이 의기투합한 작품이니 왜 자랑스럽지 않겠는가. 또 극에서 비중이 낮은 것도 아니고, 중요한 역할을 하니 즐거워 할 만하다.
19세기부터 근 미래까지 약 500년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여섯 개의 각기 다른 장르와 스토리를 한 편의 거대한 서사로 엮어낸 영화에서 배두나는 1인3역으로 열연했다. 극중 먼 미래 2144년 서울의 한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복제인간 손미가 가장 눈에 띄는데, 윤회사상을 다루고 있는 영화의 전체 주제를 대변하는 중요한 인물이기도 하다.
배두나는 이번 작품에 참여하며 자신의 연기가 인정받는 게 좋았다고 회상했다. 예전에는 운이 좋아 항상 훌륭한 감독들이 예뻐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과대평가 받고 있다고 생각했죠. 이번에 작품을 위해 외국에 나갔는데 영어가 안 되더라고요. 대화는 안 됐지만 ‘내 연기로 극복해보자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게 통했고, 인정을 받게 돼 좋아요.”
배두나는 ‘괴물, ‘공기인형 등을 재미있게 본 워쇼스키 감독에게 발탁돼 화상 오디션을 본 뒤, 혼자서 영국 런던으로 날아갔다. 현지에서 영어도 습득하고 싶어 좀 일찍 발길을 옮겼다. 그는 외모가 귀여운 것만으로 승부하기는 싫었다”며 오기가 생겼다”고 기억했다.
배두나는 솔직히 연기로는 기가 안 죽을 자신이 있었는데 영어 대사를 항상 신경을 써야 했다는 게 스트레스였다”며 현장에 보이스 코치가 있었는데 영어를 못하는 사람을 코치하는 게 처음이었다고 하더라. 특히 ‘th 발음을 지적받았는데 무척 힘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열정과 노력 덕에 보이스 코치는 프리미엄 행사에서 배두나를 잡고 해냈다”며 엄청 울었단다.
솔직히 잘 알지 못하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온 젊은 아시아 여배우에게 관심을 갖는 이들은 별로 없었다. 배두나는 미운 오리 새끼처럼 외롭다고 생각했는데 현장에서 감독님들이 금지옥엽처럼 예뻐해 주시니 모든 스태프가 존중해 줬다”고 회상했다.
최근 영화 홍보 차 한국을 찾았던 워쇼스키 남매 감독은 언론시사회에서 배두나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봐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인연이 쌓인 배두나와 워쇼스키 남매 감독은 최근 MBC TV ‘황금어장-무릎팍 도사에서도 함께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배두나는 워쇼스키 감독은 ‘매트릭스 때도 언론매체에 노출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거의 첫 토크쇼를 한국 프로그램으로 참여한 건데, 그것도 엄청 힘들기로 유명한 ‘무릎팍 도사였다”며 감독님들이 ‘괜찮은 프로그램이냐?고 물었는데 한국 최고의 MC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해줬고, 같이 하게 됐다”고 말했다. 화기애애하게 녹화를 했으니 방송을 보면 더 많은 재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많은 이들이 멕시칸 여성도 그가 맡았는지 모를 것이라고 하자 배두나는 깔깔대며 성공했다”고 만족해했다.
할리우드 배우 짐 스터게스와 스스럼없이 지내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짐과는 현장에서 무척 친했고, 밖에서는 벤 위쇼와 더 친하게 지냈다”며 시내에서 자전거도 타고 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영화가 개봉한 뒤에는 길을 지나가다가 많은 사람들이 알아봤는데, 촬영할 때는 편하게 다녀도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더라”고 웃었다.
봉준호, 곽지균, 정재은, 박찬욱, 고레에다 히로카즈….” 연기적으로 영향을 준 감독들을 물어보니 끝도 없이 대답한다. 한 명을 꼽을 수 없다”는 배두나는 특히 지난 2010년 사망한 곽지균 감독에 안타까움과 함께 고마움을 표했다. (‘청춘(2000)에서 함께 한) 곽 감독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며 감독님은 ‘두나야, 여기서는 이렇게 느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시는 게 아니라 마음 속 깊이 꿈틀 된 무언가가 올라오는 연기를 하게 해주셨다”고 회상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사진 강영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