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이든, 드라마든 영화든…‘내가 이걸로 뭔가를 보여주겠다!는 식의 뚜렷한 목적의식 같은 건 없었어요. 예능에서는 형들의 인솔 아래, 드라마와 영화에선 대본의 이끌림 하에 그저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뿐이었죠. 전 아직 부족한 게 많으니까.”
매주 일요일, 엉뚱한 돌발 행동과 발언을 일삼는 ‘기린이 아니었다. 오히려 사소한 농담을 건네기도 미안할 정도로 예의바르고 군기가 바짝 든 신인 연예인의 모습이었다. 그가 기자의 눈치를 슬쩍 살피더니 막상 만나보니 재미가 없죠? 많은 분들이 실망하시더라고요”라고 농을 던진다.
‘대세답지 않은 순진무구한 모습에 ‘런닝맨 속 캐릭터는 설정이냐고 물었더니 ‘런닝맨 현장에만 가면 제가 제가 아닌 것 같아요. 처음엔 실수라도 할까봐 말 한마디도 제대로 못 했는데 이젠 그냥 막 튀어나온다니까요?”라고 말했다. 몹시 반가운 듯 그의 목소리가 두 톤 쯤 올라갔다.
그는 이어 ‘런닝맨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제는 아예 없었을 지도 몰라요”라고 말했다. 늘 생각이 많고 낯가림이 심한 탓에 사람들과 친해지는 데 유독 어려움이 많았다는 이광수. 그가 고민할 새도 없이 사람들이 먼저 다가오기 시작한 건 바로 이때부터였다. ‘런닝맨을 만나 ‘기린으로 다시 태어났을 때.
많은 분들이 예능 이미지가 배우로서의 길에 장애가 되는 순간이 없냐고 물으세요. 기린 이광수와 배우 이광수 사이의 경계는 물론 제가 평생 풀어야 할 숙제죠. 하지만 ‘런닝맨은 제게 소중한 사람들을 만들어준, 내 안의 틀을 깨게 해준 분명 감사하고 의미 깊은 프로그램이에요. 앞으로도 계속 애정을 갖고 집중할 생각이고요,”
이광수는 설정, 애드리브는 없었어요. 정말 대본대로만 했어요”라고 운을 뗐다. 이경희 작가에 대한, 대본이 가진 힘에 무한 신뢰가 갔기 때문에 대본 그대로의 느낌을 표현하는 데 온힘을 쏟았다고 했다.
친구와 사랑에 헌신적인 캐릭터. 어떻게 보면 자기 자신을 돌보는 데에는 좀 인색하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분들이 제 캐릭터에 공감하고 응원해주셔서 뿌듯했어요. 드라마가 끝나고 작가님이 저를 꼭 안아주셨을 때 처음 느꼈죠. ‘아 내가 무사히 잘 마치긴 했구나하고요.”
이광수는 극중 마루(송중기)의 절친한 친구이자 마루의 여동생인 초코(이유비)의 오랜 짝사랑, 박재길 역을 맡았다. 아버지는 짝퉁 가방 공장 사장으로 재길은 재벌2세까지는 아니지만 ‘도련님 소리 듣고 깨나 귀하게 자랐다. 환장하게 착한 그는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초코를 마루의 집에 업어다 주며 이들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다.
이유비와 연기하면서 나도 누군가 오랫동안 사랑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유를 따지지 않고 나만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진지하게 마음이 갈 것 같아요. 그런 예쁜 마음을 상상하면서 연기에 몰입했어요.”
이광수는 극 중 이유비와 알콩 달콩한 러브라인을 형성해 다소 복잡하게 얽힌 인물과 사건 사이에서 달달한 웃음을 선사했다. 진한 우정에 때로는 감동을, 순수한 사랑은 이광수 특유의 순박함을 한 층 돋보이게 했다.
사실 누구를 좋아하게 되도 능하게 다가거나 대시하지 못해요. 생각이 많아 연애를 시작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해요. 연애라는 게 서로가 행복하려고 하는 건데 내가 그 사람에게 충분한 시간, 마음, 열정을 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사귀는 사람에게 미안한 일이잖아요. 호감이 생겨도 이런 이유로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않고 억누를 때도 있어요.”
그는 사람을 한 번 사귀면 진중하게 오랜 시간을 함께 한다고 했다. 자신의 처지가, 혹은 상대방의 상황이 여의치 않아 서로에게 소원해지고, 상처를 주는 과정을 유독 경계한다고 했다. 때문에 기왕이면 마음이나 시간적 여유가 좀 생겼을 때 여자친구를 사귀고 싶다고 했다.
아직 준비는 안됐지만 연애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 때도 있죠. 특히 ‘애절한 사랑을 담은 영화를 볼 때면요. 나도 저런 사랑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 사랑이든 사람 혹은 일이든 모든 면에서 신뢰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매사에 진지하게 임하려고 하고 예의바른, 신중한 사람이 되려고 늘 노력해요.”
끝으로 그는 ‘착한남자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그는 자기만을 위해서 사는 것도, 그렇다고 남을 위해서만 사는 것도 ‘착한 건 아니다”고 했다. 자신이 아끼는 사람을 지킬 수 있을 만큼 스스로를 돌보고, 실제로 그런 힘이 생겼을 때 내 주변을 잊지 않고 챙길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착한 사람이라고 했다.
데뷔 이후 제대로 쉰 적이 없어요. 방송도 연기도 모두 신기하고 마냥 즐거워 지루함을 느끼지 못한 것 같아요. 가능하다면 이번 휴식기에 여행을 꼭 한 번 다녀오고 싶네요. 무엇보다 바쁘다는 핑계로 챙겨주지 못했던 가족, 친구들과도 평범하지만 따뜻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역시 이 남자, 타고난 ‘착한남자였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 기자 kiki2022@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