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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경영 “잃어버린 10년? 난 운 좋은 배우”
입력 2012-11-27 08:55  | 수정 2012-11-27 09:22

‘(박)원상이 너 혼자 해라 하면 얼마나 싸가지 없는 형이겠어요?”
15년 만의 언론 인터뷰. 배우 이경영(53)은 인터뷰에 나서게 된 계기를 묻자 이같이 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22일 개봉한 영화 ‘남영동1985(정지영 감독)은 그에게 남다른 영화다. 영화가 주는 사회적인 메시지도 소중했지만, 제작 시스템 면에서도 의미있는 출발이었다고 한다.
그는 다른 영화에서 느끼지 못했던 일체감들을 느꼈다”고 했다. 당연히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보셨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는 말도 덧붙였다.
비슷한 질문, 불편한 질문이 반복되는 인터뷰였을 텐데 지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과거와 확 달라진 인터뷰 환경이나 자극적인 인터넷 기사 제목엔 조금 당황한 눈치인 듯 했지만.

저녁에 집에 가서 기사를 봤는데 ‘이건 아닌데… 싶더라고요. 영화 얘긴 몇 줄 안되고 자극적인 제목이 눈이 들어오더군요. 음…제 삶에 대해 쓰려면 적어도 몇 번은 만나 술 마셔야 해요. 1시간을 만나고 그런 얘길 기사에 반영한다면 그건 제가 아닐 겁니다. 한 번은 여성지에서 많은 페이지를 할애해 제 인생 얘기를 쓰고 싶다길래, 제 나이만큼 페이지를 줄 수 있냐고 물었어요. 내 인생을 쓰려면 그 정도는 돼야 한다고….”
‘남영동1985는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지난 1985년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22일 동안 고문을 받은 실화를 다룬 이야기다.
이경영은 극중 철두철미하고 냉혈한 고문기술자 이두한으로 분했다. 그는 마치 집단 최면에 걸린 듯이 찍었다”고 기억했다. 실제의 그는 너무 멋진 중년 아저씨지만, 악역의 교본”이라 할만큼 명불허전의 연기를 선보였다. 그에게 이같은 얘기를 꺼내자 소년처럼 쑥쓰러워하며 좋아했다.
박원상(김종태 역)을 거짓으로 대하면 그건 NG죠. 생명의 위협 직전까지 가는 위험한 순간도 있었습니다. 일부러 밥 많이 먹고 배도 나오게 하고 단단하게 보이려 노력했어요. 자칫 인물에 대한 연민이 생길까봐 관련 자료도 찾아보지 않았고요. 이번엔 완성에 대한 책임감이 컸어요. 고문을 해야만 하는 사명감을 가진 캐릭터잖아요. 그 일이 바른 일이고 애국하는 일이라 여기는 사람이니까.”
정지영 감독과는 ‘하얀전쟁 ‘부러진 화살에 이은 5번째 인연이다. ‘남영동1985 출연 역시 20년 영화 인연이 작용했다. 하지만 이 보다 더 중요했던 건 감독에 대한 존경과 신뢰였다. 정 감독으로부터 받은 이메일 내용 중 일부를 공개하던 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이제 정면으로 세상과 마주쳐라 ‘남영동1985가 본격적으로 충무로에 원대복귀하는 작품이 되길 바란다 ‘나, 영화 잘 만들 자신이 있다는 내용이었죠. 감독님은 제가 여자라면 한 번쯤 유혹해 보고 싶은 멋진 분이세요.”
정지영 감독은 여러 인터뷰에서 실력 있는 배우가 묻혀있는 게 아깝다”고 했다. 김수현 작가를 비롯한 충무로의 많은 관계자들 역시 이런 대배우가 꼼짝 못하고 있다는 걸 안타까워 했다.
하지만 정작 이 26년차 배우는 화려했던 시절과 자신의 연기경력을 자랑하는 법조차 몰랐다. 모두들 이경영은 불운한 배우”라고 말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저는 실력에 비해 운이 좋은 배우였습니다. 제가 가진 재능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았죠. 지금 제 연기를 잘 했다 못 했다 하는 것은 건방진 생각 같아요. 폴 뉴먼처럼 팔순을 넘겨서도 ‘아우, 이제 연기 좀 알겠어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그때 그 사건이 없었다면 절정이었을 40대의 시간을 찬란하게 꽃피웠을 것이다. ‘불꽃 ‘푸른안개에서 보여줬던 그만의 매력으로 넘실거렸을 것이다. 또, 만약 그 일이 없었다면 안성기·박중훈과 함께 국민배우로 칭송받고 있었을 것이다. 원망스럽지 않을까.
그는 잃어버린 10년에 대해 도리어 고마운 시간들”이라고 표현했다. 어느덧 쉰을 넘기고 백발이 되어버린 이 중년배우의 진심이 가슴 한켠에 와 박혔다.
그런 시간을 겪지 않았다면 지금 이런 의미있는 시간도 없었을 겁니다. 요즘엔 촬영장에 소풍 가는 기분이에요. 남들은 그 시간을 어떻게 극복했냐고 묻지만 어깨까지 머리도 길러보고 귀도 뚫었죠. 단순하게 하루하루를 살려고 노력했어요. 훌훌 털고 외국으로 나가보려고도 생각했지만 워낙 저지르는 스타일이라 나갔다면 돌아오지 못했을 겁니다. 제가 외로움을 많이 타는 편이라 집주변을 떠나질 못해요.(웃음)”
올해 10편에 가까운 작품에 출연한 이경영은 29일 영화 ‘26년(조근현 감독) 개봉도 앞두고 있다. 이 영화에서 그는 계엄군 출신의 대기업 회장 ‘김갑세 역으로 분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향희 기자 happy@mk.co.kr/사진=강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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