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 안철수 떠났지만, 떠나보내지 못하는 문재인
입력 2012-11-26 13:29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만해 한용운 선생의 '님의 침묵'이라는 시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안철수 후보를 보낸 문재인 후보의 마음이 이 시구와 같다 하면 너무 억지일까요?

안철수 후보가 후보직을 사퇴했지만, 문재인 후보의 마음속에는 안 후보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문재인 후보가 어제 대선 후보 등록을 한 직후 한 기자회견입니다.

▶ 인터뷰 : 문재인 / 민주통합당 후보(11월25일)
- "야권 단일후보로 등록하게 되기까지 안철수 후보의 큰 결단이 있었습니다. 고맙다는 마음 이전에, 커다란 미안함이 있습니다. 안철수 후보의 진심과 눈물은 저에게 무거운 책임이 되었습니다. 저의 몫일 수도 있었을 그 눈물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안 후보의 갑작스러운 사퇴는 문 후보에게는 결코 달가운 일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10년 전처럼 노무현-정몽준 두 후보가 후보 단일화에 합의하고, 아름답게 소주잔을 러브샷하기를 꿈꾸던 상황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입니다.


안 후보의 사퇴 기자회견은 두 지지세력이 하나로 합쳐질 것이라는 기대를 송두리째 흔들기에 충분했습니다.

격한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난 안 후보 사퇴 기자회견을 잠깐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안철수 / 무소속 후보(11월23일)
- "국민 여러분. 이제 단일 후보는 문재인 후보입니다. 그러니, 단일화 과정의 모든 불협화음에 대해서 저를 꾸짖어 주시고, 문 후보께는 성원을 보내 주십시오. 비록, 새 정치의 꿈은 잠시 미뤄지겠지만, 저 안철수는 진심으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치를 갈망합니다."

안 후보는 지지세력에 문재인 후보에게 성원을 보내달라고 말했지만, 왠지 그 말에는 서운함이 가득 담겨 있는 듯합니다.

지지자들도 당연히 그 마음을 읽었으니, 문재인 후보를 온전히 지지하긴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안철수 지지층의 절반 정도만이 문 후보에게 갔고, 20% 안팎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게, 나머지는 부동층으로 돌아간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문재인 후보가 꿈꿨던 '1+1=3'이라는 단일화 공식은 실제와 달랐습니다.

그래서일까요?

MBN 긴급여론조사에서도 박근혜 후보 44%, 문재인 후보 40%로 후보 단일화 전보다 격차가 더 벌어졌습니다.

10년 전 노무현 후보가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 이후 단번에 40% 벽을 넘으면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를 앞선 것과 너무나 다릅니다.

안 후보를 지지했던 중도와 20대는 아직 갈 곳을 찾지 못한 듯합니다.

이들을 끌어오지 않고서는 문 후보가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들을 지지층으로 흡수하려면 문 후보 스스로 잘해야 하지만, 안 후보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도 사실입니다.

문재인 후보는 결코 안철수 후보를 보낼 수 없는 처지입니다.

문재인 후보의 말입니다.

▶ 인터뷰 : 문재인 / 민주통합당 후보(11월25일)
- "이제 정권 교체를 바라는 모든 국민은 하나입니다. 안철수 후보를 지지했던 모든 세력, 후보 단일화를 염원했던 모든 분들과 함께,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꾸는 ‘국민연대를 이루겠습니다."

칩거에 들어간 안 후보는 문재인 후보를 도울까요?

서운함이 가득 담긴 듯한 안 후보의 사퇴 기자회견만 놓고 보면, 안 후보가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새 정치의 꿈이 잠시 미뤄졌다'는 말에서는 문 후보에게 그 꿈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의미가 숨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안 후보가 TV 토론 후 문재인 후보에게 실망했다는 말도 들립니다.

성인군자가 아닌 다음에야 선뜻 문 후보를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나서기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렇다고, 안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아무 역할 없이 조용히 있기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안 후보의 도움 없이 문재인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안 후보는 '옹졸한 사람' 내지 '없어도 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을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안 후보의 도움이 없어 문재인 후보가 대선에서 패한다면, 안철수 후보는 야권 지지자들로부터 '대선 패배'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비판이 쏟아질 게 뻔합니다.

정치인의 길을 계속 가겠다는 안 후보에게는 이것은 결코 가벼운 시련이 아닐 것입니다.

박근혜 후보 역시 안 후보 지지세력을 잡으려고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래야만 확실하게 대선 승리를 장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박 후보의 말입니다.

▶ 인터뷰 : 박근혜 / 새누리당 후보
- "지난 반세기 동안 이루지 못한 국민대통합과 국민행복시대를 열려고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국민이 원하는 책임 있는 변화와 새로운 정치, 새로운 시대를 반드시 만들겠습니다."

'새로운 정치', '새로운 시대'는 안철수 후보 지지층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입니다.

박 후보가 안 후보 지지층과 공감대를 넓혀가면서 이들을 흡수할 수 있을까요?

안 후보는 이런 모습을 보며 어떤 결정을 할까요?

이번 대선은 안철수 후보가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MBN 뉴스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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