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 안철수,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는 방법을 찾았을까?
입력 2012-11-20 11:51  | 수정 2012-11-20 18:03
야권 후보 단일화 협상이 재개된 지 하루 만에 구체적인 협상안 언론에 공개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모름지기 협상이란 최종 사인이 이뤄질 때까지 세부 내용이 알려지지 않아야 잘 끝날 수 있는데 말입니다.

어제 언론에 보도된 협상 내용은 여론조사와 공론조사를 병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공론조사는 무작위가 아니라 특정한 사람들로 배심원을 구성하고 나서 그들에게 누구를 지지할 것이냐를 묻는 것입니다.

안 후보 쪽이 제안한 것인데, 민주당은 중앙대의원 14,000명, 안 후보 쪽은 후원자 14,000명으로 구성하자는 겁니다.

언뜻 보면 괜찮은 생각이구나 싶은데, 민주통합당 쪽은 왜 상당히 불쾌해했을까요?

우상호 공보단장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우상호 / 문재인 캠프 공보단장(11월20일)
- "참으로 어이없었습니다. 우리는 다양한 대의원 구성이고 안철수 후보는 안 후보 지지하는 후원자로 구성한다, 과연 정상적인 구성 방식이겠나? 이 방안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해서 문재인 후보가 통 큰 양보한 게 아니라고 (안철수 후보 쪽에서) 백 브리핑으로 언론플레이 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협상팀 간 합의 깨고 협상내용 일부 왜곡해서 언론에 브리핑 또는 백 브리핑을 한 안 캠프는 공식적으로 사과하십시오."

문재인 후보 쪽이 문제로 삼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공론조사 배심원단 구성이 불공평하다는 겁니다.

문재인 후보 쪽 배심원을 구성하는 대의원 14,000명 가운데는 지난 경선 과정에서 봤듯 '친노'도 있지만, '비노'도 있다는 겁니다.

비노 대의원들이 문 후보를 찍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반면, 안 후보 배심원단을 구성하는 후원자 14,000명은 안 후보를 찍을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결집력이 약한 민주당 대의원들과 결집력이 높은 안 후보 후원자들로 구성된 배심원단의 선택은 이미 불 보듯 뻔하다는 겁니다.

두 번째, 왜 협상 내용을 중간에 언론에 흘렸느냐는 겁니다.

문재인 후보가 통 크게 양보한다고 해놓고, 막상 단일화 방식을 제안하니까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언론에 흘려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던 걸까요?

안 후보 쪽에서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런 내용이 알려지면서 문재인 후보의 '통 큰 양보'는 그 진정성을 의심받게 됐습니다.

문재인 캠프는 단일화 방식을 통 크게 양보한 것은 그래도 안 후보 쪽이 어느 정도 공정한 방식을 가져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인데, 이런 방식은 그 믿음을 저버린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안 후보 쪽은 극도로 말을 아꼈습니다.

유민영 대변인의 말입니다.

▶ 인터뷰 : 유민영 / 안철수 캠프 대변인(11월20일)
- "단일화 방식 협의는 객관적이고 공정하고 현실 가능한 방안으로 협의 되어야 합니다. 제가 아는 것은 여론조사 방식 +알파 포함 범주에서 논의 진행됐다는 것입니다. 더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잠시 시간을 되돌려볼까요?

안 후보 쪽은 민주통합당이 '안철수 후보 양보론'을 퍼뜨리고, 지방 조직을 활용해 '여론조사 방식'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행태를 구태 정치라며 강력히 비판했습니다.

협상 중단까지 선언할 정도로 격앙됐습니다.

안 후보 쪽에서 봤을 때, 문 후보 쪽의 그런 행동은 분명히 불공정하게 비쳤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 반대가 됐습니다.

문재인 후보가 단일화 방식을 전적으로 안 후보에게 맡긴다고 하자, 안 후보 쪽이 내놓은 안은 문재인 캠프를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문재인 후보 쪽에서 봤을 때, 안 후보 쪽의 그런 안은 승률이 50대 50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안 후보에게 유리한 안이었기 때문입니다.

단일화 방식을 안 후보 쪽에 일임하겠다고 큰소리쳐놨으니, 문 캠프로서는 처지가 난처해졌습니다.

문재인 후보가 단일화 방식을 양보한 그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문재인 / 민주통합당 후보(11월18일)
- "이미 다양한 단일화 방안의 모색은 시간상 불가능해졌습니다. 여론조사 방식으로 한다고 해도 제대로 된 논의와 실행이 어려운 상황이 됐습니다. 신속한 타결을 위해서 여론조사 방식이든 여론조사 +@ 방식이든 단일화 방안을 안 후보 측이 결정하도록 맡기겠습니다."

그런데 안 후보 쪽은 이런 밑그림을 언제부터 그리고 있었던 걸까요?

협상 재개 이후 그 짧은 시간에 이런 안을 만들었을 것 같지는 않고, 이미 오래전에 만들었던 것일까요?

안철수 후보는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골리앗이고, 자신은 다윗이라며 힘겨운 싸움이라고 여러 차례 고충을 토로한 바 있습니다.

안 후보의 말을 잠깐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안철수 / 무소속 후보(11월5일 전남대 강연)
- "저는 정치 경험도 조직도 세력도 없습니다. 여기까지 온 게 기적입니다. 매일이 기적입니다. 마치 거대한 골리앗과 싸우는 다윗입니다. 결국,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듯이 큰 변화가 있습니다."

정공법으로는 다윗이 몇 배나 덩치가 큰 골리앗을 이기기 어렵습니다.

이기려면 신체적 불리함을 극복할 수 있는 변칙법을 써야 합니다.

안 캠프는 이런 변칙법을 찾은 것일까요?

안 캠프가 이런 변칙법을 쓰는 것은 자연스러운 걸까요? 아니면 역시 불공정한 걸까요?

문재인 캠프의 반발이 거세자 안 후보 쪽은 수정안을 만들어 다시 협상을 시작했습니다.

최종 결투 방식은 다윗과 골리앗 모두를 만족하게 할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MBN 뉴스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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