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 문재인의 승부수, '선거보조금 포기·여론조사'
입력 2012-11-01 12:04  | 수정 2012-11-01 17:33
9회 말 투아웃에 투스트라이크 쓰리볼.

여러분이라면 어떤 승부구를 던지겠습니까?

이런 상황까지는 아니지만,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현재 국면을 돌파할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대선 후보 중도사퇴 때 선거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도록 선거법을 개정하자'는 새누리당의 요구를 덥석 받아들인 겁니다.

문재인 캠프 진선미 대변인의 말부터 들어보시죠

▶ 인터뷰 : 진선미 / 문재인 캠프 대변인(10월31일)
- "문재인 후보의 전격 결단에 의해 급하게 브리핑을 합니다. 후보 중도사퇴 시 선거보조금 미지급 법안을 수용하며 새누리당이 이정현 공보단장을 통해 공식제기한 후보 중도사퇴 시 선거보조금 미지급 법안에 대해 민주당 수용의사 밝힙니다.
문재인 후보는 정당의 이익보다 국민 참정권 지키는 것이 훨씬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새누리당의 요구를 대승적으로 수용하기로 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

현행 선거법에는 정당 후보가 후보 등록 이후 중도에 사퇴하더라도 선거보조금을 환수해야 하는 규정이 없습니다.

민주당은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 후보로 등록하기만 하면 152억 원의 선거보조금을 받게 됩니다.

이후,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 과정에서 패해 사퇴하더라도 이 돈을 돌려주지 않고 그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새누리당은 이쩌면 이점을 겨냥했는지도 모릅니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후보 단일화 문제에서 152억 원의 선거 보조금 문제는 민주통합당으로서는 굉장히 머리 아팠던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새누리당은 152억 원의 돈이 아까운 민주통합당이 설마 이런 내용의 선거법 개정 카드를 받아들이겠는가 하는 생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이정현 공보단장은 야권에서 주장한 투표시간 연장법안과 이른바 '먹튀 방지법'을 연계처리하자고 자신감까지 보였습니다.

▶ 인터뷰 : 이정현 / 박근혜 캠프 공보단장(10월29일_
- "두 가지 법을 동시에 고쳤으면 합니다. 국회에서 여야가, 어차피 법을 개정해야 할 문제라고 한다면 여야가 국회에서 합의해서 '먹튀 방지법', 대선 후보가 국민 혈세를 먹고 튀는 먹튀 방지법과 투표시간 연장법을 동시에 여야가 함께 논의해 고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덜컥 문재인 후보가 이 제안을 받아들인 겁니다.

새누리당은 당황한 모습이 역력합니다.

박선규 대변인의 브리핑입니다.

▶ 인터뷰 : 박선규 / 박근혜 캠프 대변인(10월31일)
- "문재인 후보 입장을 환영한다. 이미 여러 차례 말한 대로 새누리당은 투표율 높이기 위한 제도보완을 위해 언제든 야당과 마주앉아 논의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이정현 단장은 지금 국회에도 들어가 있지 않은 상태시죠. 두 가지 사안의 연계 얘기는 기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개인적으로 고민해 볼 필요가 있지 않느냐, 고민해달라라는 차원에서 전달한 게 아닌가 이해합니다. 선대위에서 그 문제가 공식적으로 논의되지 않았고, 두 가지 연계될 수 있는 성격은 아니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먹튀 방지법'을 문재인 후보가 수용한 것은 환영하지만, 투표시간 연장과 연계처리하는 것은 이정현 단장의 개인 생각일 뿐, 선대위나 당의 입장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정현 단장은 두 법안을 국회에서 같이 논의해보자는 것이었지, 교환하자는 의미는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이한구 원내대표를 비롯해 당 지도부 역시 '먹튀방지법'은 당연히 수용해야 할 법안인데, 그것을 투표시간 연장과 연계하는 것 자체가 정략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황우여 당 대표의 말입니다.

▶ 인터뷰 : 황우여 / 새누리당 대표(11월1일)
- "지금 말한 먹튀 방지법은 사실 선거보조금이라 후보를 내지 않은 정당에 주는 건 부당이득 성격이 있어서 법에 당연히 반환해야 하는 것이죠. 그걸 법으로 하는 게 당연하고. 이 최고 말대로 성격 다른 걸 서로 연계하자고 하는 건 악용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새누리당은 투표시간 연장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것 같습니다.

투표시간 연장뿐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투표율을 높이는 방법을 고민해보자는 겁니다.

박근혜 후보의 말입니다.

▶ 인터뷰 : 박근혜 / 새누리당 대선 후보(10월30일)
- "여러 논란이 있습니다. (투표일을) 공휴일로 지정한 데가 한국밖에 없다고 합니다. (투표시간을) 늘리는데 100억 원 정도가 들어가는데 그걸 공휴일로 정하고, 또 그럴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야 간에 잘 협의하면 됩니다."

투표시간 연장을 여야가 잘 협의하면 된다고 했지만, 사실상 부정적인 것 같습니다.

민주통합당이 가만 있을 리 없겠죠.

박지원 원내대표의 말입니다.

▶ 인터뷰 : 박지원 / 민주통합당 원내대표(11월1일)
- "새누리당이 먼저 먹튀방지법을 받아들이면 투표시간 연장을 논의하겠다고 얘기해 문 후보가 이를 받아들이자, 이제 와서 개인 의견이라고 먹튀하고 있습니다. 새누리당은 먹튀 정당입니다"

그렇다면, 문재인 후보는 왜 '먹튀방지법'을 전격 수용한 것일까요?

우선 '먹튀방지법' 수용을 통해 새누리당에게 '투표시간 연장'이라는 압박을 더욱 가할 수 있다는 겁니다.

두 법안의 동시처리를 이정현 새누리당 공보단장이 먼저 꺼냈으니, 새누리당으로서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안철수 후보 쪽을 압박하는 효과도 있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152억 원은 민주당으로서는 아까운 돈입니다.

이 돈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겠죠.

그 얘기는 거꾸로 말하면, 이번 대선에서 자신이 중도 사퇴하거나 섣부르게 안철수 후보에게 후보직을 양보해 이 돈을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은 아닐까요?

안철수 후보가 '돌아갈 다리를 불살랐다'고 말했듯, 문재인 후보도 대선 완주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친 것은 아닐까요?

더불어 민주통합당 내부 결속 효과도 노린 듯합니다.

후보 단일화 경쟁에서 안철수 후보에게 져 152억 원을 포기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민주통합당 당원이나 야권 지지자에게 분명히 밝힌 셈입니다.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안 캠프가 내심 원하는 '여론조사 방식'도 전격 수용할 수 있다고 밝힌 것처럼 안 후보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과시한 셈입니다.

최근 MBN 여론조사에서 후보 단일화 지지율이나 호남 지지율이 안 후보를 앞선 것으로 나타난 게 자신감을 줬던 걸까요?

152억 원 이라는 돈은 후보 등록일 전에 후보 단일화가 진행돼 문재인 후보가 패하면 어차피 받지 못할 돈이었습니다.

후보 단일화에 패했는데도, 돈을 받으려고 후보 등록을 한다는 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문재인 후보로서는 선거보조금 포기 수용이 박근혜 후보에게는 투표시간 연장이라는 압박을, 안철수 후보와 야권 지지자들에게는 단일 후보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드러낸 것 같습니다.

결코,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새누리당과 안철수 후보 쪽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MBN 뉴스 M (월~금, 오후 3~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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