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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비정한 도시’, 차가운 도시에 살고 있는 섬뜩함
입력 2012-10-18 10:52  | 수정 2012-10-18 11:07

도시의 색깔은 차갑다. 뜨겁게, 또 열정적으로 삶을 살려던 사람들이 속해 뜨거울 것만 같은 도시는 언젠가부터 차가운 이미지가 됐다. 복잡함과 외로움이 묘한 대치를 벌이며 그 차가움은 더욱 더 강조된다.
영화 ‘비정한 도시의 주인공들이 살고 있는 도시도 이 색깔이 적용된다.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지만, 외롭게만 느껴지는 주인공들. 이들 각자의 이야기는 현실 속 일반 대중의 삶이 고스란히 축소돼 들어가 있는 듯하다.
심야에 발생한 택시 뺑소니 사고. 이 사고를 시작으로 등장인물의 이야기는 얽히고설킨다. 택시 기사 돈일호(조성하), 돈을 갚으라는 사채업자 변사채(이기영)의 협박에 신체포기 각서를 쓰는 김대우(김석훈), 췌장암에 걸린 대우의 아내 홍수민(서영희), 탈옥범 심창현(안길강), 틱장애가 있는 고등학생 정봉연(최우식) 등 우리 주변에서 마주치거나 만날 수 있는 이들이 등장해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뺑소니 사고를 목격한 대우는 사채업자에게 빌린 돈을 갚으려고 일호를 협박해 돈을 뜯어내려 하고, 자살을 결심한 수민은 창현이 말리는 통해 목숨을 부지하지만 도리어 창현을 죽이는 결과를 낳는다. 영화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팍팍한 삶과 불륜, 악덕 사채업자의 협박, 자살, 집단 따돌림 등 지금 현재도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가는 식이다.

여러 개의 옴니버스 영화처럼 여러 명의 등장인물들을 통해 서로 맞닿는 부분을 그려내는데, 감독의 연출법이 독특하다. 앞뒤로 시간을 오가며 각 이야기를 연결시킨다. 복잡할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차곡차곡 풀어나가려 한 섬세함과 신선함이 돋보인다. 여기에 간간이 유머도 넣어 지루하지 않게 보이려 노력했다.
이야기 전개를 위해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인, 변사채의 아내로 나오는 ‘불륜녀 오선정(이주원)의 죽음과 관련해 속 시원하게 설명하지 않아 불친절한 듯 느껴지지만 감독은 이를 의도했다. 선정을 누가 죽인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도시 속의 공범자일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감독이 말한 것처럼 도시의 비극을 제대로 은유했다.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이들 같아 보이지만 서로 연결돼 있는 인물들. 사람들이 서로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치며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섬뜩한 기운을 지울 수 없다. 내 아들을 죽인 사람이 나를 스쳐가는 저 사람의 남편일 수 있고, 돈을 갚으라고 나를 협박하는 사람이 내가 아는 지인의 형제일 수도 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 가슴은 답답해진다.
하지만 김 감독은 결말에서 도시가 차갑고 날카롭지만은 않다는 역설도 강조한다. 비정하지만 도시도 사람이 사는, 아니 사람이 많이 사는 사람냄새 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내가 가해자일수도, 피해자일 수도 있지만 도시는 여전히 움직인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을 가슴팍에 꽂히게 만든다.
다만 등장인물들 간에 조금 더 긴장감 넘치는 연출력과,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의도가 쉽게 드러났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2005년 단편 ‘헬프 미로 여러 단편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주목받은 김문흠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88분. 청소년관람불가. 25일 개봉 예정.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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