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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르노삼성을 닛산에 판다는 멍청한 오해
입력 2012-09-19 12:31 
최근 르노삼성을 둘러싼 언론사들의 추측보도가 도를 넘고 있다.

지난 5일 중앙일보는 르노가 르노삼성을 닛산에 넘길 것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실은게 그 시작이다.

보도는 '르노그룹 카를로스 곤 회장이 7월 말 르노삼성의 기흥연구소와 부산공장을 방문한 뒤 르노삼성의 지배구조 변경 구상에 확신을 가졌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곤 회장의 '확신'을 파악하다니, 이쯤 되면 취재가 아니라 독심술에 가깝다.

당연히 다음날 르노삼성측은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고 머니투데이 등 다른 언론들이 6일, 이 보도가 '사실무근'이라는 반대의견을 보도했다.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더 황당한 코미디가 시작됐다. 이후 머니투데이가 16일에 내놓은 기사 때문이다.

머니투데이는 '[단독]이재용 사장-곤 닛산 회장 비밀회동,르노삼성 어디로?'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불과 열흘전 '사실 무근'이라고 했던 보도 내용을 스스로 뒤집었다. 단독이라 이름 붙여진 이 보도는 이재용 사장이 카를로스곤 회장을 세번 만났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만난 시점이나 장소도 모르고, 회동의 사실 여부나 논의 내용도 모른다고 담겨있어 말 그대로 찌라시 같은 황당 기사다.

그런데도 기사는 용감하기 그지없다. 아무 '사실(facts)'이 담겨 있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업계 일각'이라는 익명의 면죄부를 통해 둘이 만난 이유를 적어내려간다. '르노가 지분을 닛산에 넘기는 상황에서 삼성카드가 가진 르노삼성차의 지분 19.9% 또한 함께 넘기기 위해 논의를 했다'는 내용의 설명이다. 물론 '삼성카드 지분을 닛산에 넘긴다'는 내용은 앞서 중앙일보가 보도한 추측성 기사를 받아 적은 것이고, 자신이 '사실 무근'이라고 반박했던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사실인양 슬며시 끼워넣은 것이다.

중앙일보는 한발 더 나가 이번엔 '머니투데이가 이재용 사장과 카를로스곤이 만났다고 보도하더라'라는 식의 기사를 적었다. 중앙일보 기사를 가지고 아무 팩트 없이 추측기사를 만들어낸 머니투데이 기사를 다시 중앙일보가 받아 쓴 상황이다. 다른 언론사에서도 이 기사에 등장인물만 조금씩 바꿔가며 '단독'이라는 이름으로 받아적고 있다. 있지도 않은 팩트가 몇차례 '언론사 세탁'을 하면서 사실인양 부풀려진 것이다.

◆ 르노삼성을 닛산에 넘긴다는 멍청한 발상

그러나 르노삼성을 닛산에 넘길것이라는 발상은 기본적으로 넌센스다. 르노는 우리나라에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럽에서의 사업 규모는 대단하다. 2011년 한해 자동차 매출이 우리돈 58조원에 달할 정도다. 반면 르노삼성을 닛산에 넘겼을 때 얻는 현금은 불과 1조2천억원 정도로 예상되기 때문에 최근 르노그룹이 겪고 있는 금전적 어려움을 해소하는데는 별 도움이 될 수 없다.

또 최근 르노는 점차 커지는 아시아와 동유럽 등 신흥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신차종을 내놓고 있는데, 그 중 플루언스(SM3)나 SUV 꼴레오스(QM5)의 최다 생산지역이 르노삼성 부산공장이다. 중형급인 래티튜드(SM5)는 오로지 한국에서만 생산한다.

만약 르노가 한국 공장을 닛산으로 넘기고 이들 차종의 생산을 중단하려면 3개 신차를 단종시키거나 설비를 넘겨받을 새 공장을 증설해야 한다는 것인데, 얼마 안되는 현금 유동성 확보하자고 그런 결정을 내릴 가능성은 기대하기 어렵다. 신차종 라인을 하나 증설하려면 각 조립라인만 해도 1천억원 이상이 소비되고 여러 관련 부품공장도 이에 맞춰 이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 심심풀이식 추측보도에 우려

물론 르노삼성이 내수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일부 기자들은 사진으로만 봤던 그 유명한 CEO 카를로스곤이 한국으로 온게 놀랍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럴듯하게 들어맞는 주변 상황만으로 심심풀이식 억측을 해서는 곤란하다.

최근 르노삼성을 둘러싼 억측은 극에 달해 심지어 포드의 CEO 앨런 머랠리가 한국에 온 이유도 르노삼성을 인수하기 위해서라는 주장을 하는 기자도 있다. 앨런 머랠리는 브랜드 매각과 구조조정의 대명사격인 인물로, 지속적으로 포드의 살을 빼 온 인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주장 또한 얼토당토 않다.

이번 보도로 르노삼성이라는 기업 일선에서는 고통을 겪고 있다. 영업사원들은 "자동차 회사는 영속성이 중요한데, 회사가 불안하다는 인식이 있어 판매에 어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르노삼성차의 한 직원은 "기사가 많아지면 오히려 불안한 상황이라는 인식을 키울 수 있어 이번 기사에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니면 말고 식의 보도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찌라시 등을 통해 얻은 미확인 정보를 여과 없이 기사로 만들어내는 일이 한 기업과 우리 경제에 어떤 파급을 일으키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김한용 기자 / whynot@top-rid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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