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 '가깝고도 먼'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후보
입력 2012-09-03 13:38  | 수정 2012-09-03 17:11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선 후보는 정말 어떤 사이일까요?

두 사람은 어제(2일) 만났습니다.

현직 대통령과 여당의 대선 후보가 대선을 3개월 남짓 남겨둔 상황에서 100분간 독대한 것은 아주 이례적입니다.

임기 말 대통령의 마지막 책무가 대선을 공정하게 관리하는 것인데, 그런 대통령이 여당 대선후보를 만나는 것 자체가 남들 눈에는 곱지 않게 비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같은 당 소속이니 한 식구가 분명한데, 지금껏 두 분은 마치 남남처럼 서로 대했왔던 터라 단독회동은 더 놀라웠습니다.

두 분의 대화를 잠깐 들어보겠습니다.

▶ 이명박 대통령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 광폭행보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요즘 어디 다녀오셨다면서요?

▶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논산 태풍 피해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 이명박 대통령
호남하고 충청이 피해가 크던데….


▶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다 무너지고 처참했습니다.

▶ 이명박 대통령
바람이 불고, 낙과도 생기고…, 추석 앞두고 걱정입니다.

▶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1년 농사를 지은 건데, 불볕더위와 가뭄 속에서 간신히 수확기를 맞았는데…. 다 무너지고 농민이 망연자실해 있었습니다.

▶ 이명박 대통령
추석이 있으니 복구를 빨리해야지요.

▶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그렇게 해 주시면 감사합니다.

방송 카메라가 돌아가는 동안 대화 내내 웃음은 끊이지 않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화 말미 이 대통령이 '태풍 피해 복구를 빨리해야겠다'고 하자, 박 후보가 '그렇게 해 주시면 감사합니다'라고 말한 대목은 심상찮게 들립니다.

덕담이 오가는 의례적 말이겠지만, 대선이 코앞인 터라 현직 대통령이 피해 복구를 잘해야 여당 대선 후보의 표심도 좋아진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지나친 확대해석일까요?

단독 회동 100분간 대선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고 참석자는 전했습니다.

태풍 피해, 민생경제, 성폭력 등 사회 현안에 대해서만 얘기를 나눴다고 합니다.

참석자인 이상일 새누리당 대변인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이상일 / 새누리당 대변인
- "박 후보는 우리나라 미래 기둥인 학생들이 마음 놓고 공부하면서 꿈과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등록금 부담을 절반으로 낮춰주는 정책은 꼭 추진해야 한다고 건의했습니다. 박 후보는 정부가 보육료 지원이 불필요하다고 지적한 상위 30% 가구도 대부분 우리 주변의 평범한 맞벌이 가구라면서 국가과제인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보육은 국가가 책임지는 게 맞다고 말했습니다."

반값등록금과 보육은 박근혜 후보의 핵심 대선 정책입니다.

비록 정치 얘기는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고 해도, 박 후보의 주요 대선 정책이 거론됐던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대통령과 여당 대선 후보가 정상적인 관계였다면, 이런 얘기가 나온 것이 하나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이명박 정부 임기 내내 불편한 사이였습니다.

특히 박근혜 후보는 올해 초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으면서 이명박 정부와 선 긋기를 통해 당을 극적으로 회생시켰습니다.

때로는 야당보다 더 혹독하게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두 분이 갑자기 만나 민생을 얘기하고, 정책을 얘기한 것이 왠지 어색해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두 분이 다시 화해하고, 정권 재창출을 위해 한배를 탄 동지적 관계로 돌아온 걸까요?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와 이한구 원내대표의 말을 차례로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황우여 / 새누리당 대표
-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과 함께 말씀을 나누신 100일간 범국민 특별안전 확립기간 내에 우리는 제반의 대비를 마쳐야겠습니다."

▶ 인터뷰 : 이한구 / 새누리당 원내대표
- "어제 이명박 대통과 박근혜 후보 간 회동은 의미가 특히 강조돼야 할 것은 국민보호야말로 정부의 책임이라는 인식을 확실히 공유하고 국민에게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이명박 정부를 대하는 당 지도부의 생각이 확실히 이전과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박근혜 후보 쪽과 청와대가 소원한 관계를 풀었다면, 이재오 의원과 정몽준 의원 등 당내 비박 진영도 변할까요?

이재오 의원은 얼마 전 박근혜 후보의 대통합 행보를 '내가 찾아가고 내가 손 내밀면 화해와 통합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지극히 오만한 독재적 발상'이라고 혹평했습니다.

정몽준 의원은 유신을 옹호한 홍사덕 전 의원의 발언에 대해 '국민을 행복한 돼지로 보는 격'이라고 쓴소리를 했습니다.

이런 두 사람의 마음도 풀릴까요?

새누리당에서는 이 대통령과 박 후보의 만남 자체가 범여권 결속과 화합에 효과가 있는 것 아니냐며 기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박 후보가 이재오 의원과 정몽준 의원을 직접 만날 것이라는 말도 들립니다.

그러나 이재오 의원 쪽과 정몽준 의원 쪽은 못 만날 것은 없다면서도 무너진 신뢰관계 회복이 먼저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동안 소통 노력이 없다가 대선후보로 확정되니까 만나자고 하는 것 아니냐'며 부정적 기류도 보입니다.

어쨌든 박근혜 후보의 대통합 행보는 계속될 것이고, 그 수준은 세간의 예상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게 친박근혜 쪽의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와 관계 회복이 꼭 대선에 유리한 걸까요?

민주통합당은 박근혜 후보가 이명박 정부와 한배를 탄 동지적 관계임이 확인됐다며 공세를 폈습니다.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박지원 / 민주통합당 원내대표
- "바로 어제 박근헤 후보는 이명박 대통령과 다시 손을 잡았습니다. 통합 외치더니 결국 이명박 정권과 통합했습니다. 박근혜는 이제 이명박 정권 후계자입니다. 특히 박근혜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 만나서 반값 등록금, 양육수당 확대 논의를 했습니다. 자기의 공약을 대통령의 입을 빌려 다시 한 번 홍보했습니다."

민주통합당은 이참에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부각시키며, 박근혜 후보와 연계시키는 전략을 쓸지도 모르겠습니다.

박근혜 후보가 이런 야당의 공세를 묵묵히 이겨내며, 이명박 대통령과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이명박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탈당하지 않고 당적을 유지한 채 퇴임하는 첫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대선이 박빙으로 갈수록 이명박 정부와 차별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다시 박근혜 캠프에서 커질지도 모릅니다.

지금껏 우리가 보아왔던 역대 대통령과 대선후보의 관계처럼 말입니다.

아직은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후보의 인연의 끝이 어떤 식으로 결말을 맺을지는 아직은 속단하기 이른 것 같습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hokim@mbn.co.kr] MBN 뉴스 M(월~금, 오후 3~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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