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 박지원 '돌발' 검찰 출두와 그 이후
입력 2012-08-01 13:51  | 수정 2012-08-01 18:56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의 돌발적인 검찰 출석으로 여야의 수 읽기가 복잡해졌습니다.

먼저 어제 검찰 조사를 마치고 나온 박지원 원내대표의 말부터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박지원 / 민주통합당 원내대표
- "황당한 의혹에 대해 충분히 얘기했기 때문에 검찰에서도 잘 이해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터무니없는 사실이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얘기했습니다."

박지원 원내대표의 검찰 출석을 앞두고 민주통합당 내에서는 '역시 고수'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박 원내대표의 검찰 출석은 기자들은 물론이고 같은 당 의원들도 뉴스를 보고 알았을 정도로 전격적으로 이뤄졌습니다.

오전에 이해찬 대표에게 출석 의사를 밝힌것을 빼고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측근들조차 출석 한 시간 전인 오후 2시쯤에야 알았습니다.

검찰 역시 오후 1시30분쯤 변호인으로부터 오후 3시에 출석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합니다.


검찰로서는 적잖이 당황했을 법합니다.

어쨌든 검찰은 박 원내대표를 필요하면 한두 차례 더 불러 조사한 뒤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박 원내대표가 혹 재소환에 응할까요?

이미 검찰에 제 발로 찾아가 성실히 조사에 응한 만큼 재소환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들립니다.

8월 임시국회가 열리면 검찰이 박 원내대표를 다시 소환하기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당장 민주통합당은 8월 임시국회 소집요구서를 단독으로 제출했습니다.

검찰로서는 허를 찔린 걸까요?

허를 찔린 것은 새누리당도 마찬가지일 듯싶습니다.

새누리당은 박근혜 후보까지 참여한 가운데 의총을 열어 박지원 원내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반드시 처리하자고 결의까지 했습니다.

박근혜 후보도, 그리고 원내 지도부도 지난번 정두언 의원의 체포동의안 부결로 손상된 체면을 살릴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의총 전 박근혜 후보가 한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박근혜 / 새누리당 경선 후보
- "필리버스터는 또 다른 방탄 국회를 여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19대 국회 들어와서 여야 모두 특권을 내려놓기로 했고 그것이 쇄신 방향이라고 말해 오지 않았습니까? 검찰에 출두해서 밝히는 게 국민 눈높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지원 원내대표의 검찰 출석으로 국민 눈높이를 강조하면서 민주통합당을 밀어부칠 기회가 사라진 셈입니다.

어쩌면 새누리당으로서는 박지원 원내대표가 검찰 출석에 계속 불응하는 것을 내심 원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선은 다가오는데, 그만큼 민심은 민주통합당으로부터 멀어지니까요.

새누리당으로서는 대선을 앞두고 이만한 호재를 만나기도 쉽지 않았을 법합니다.

박 원내대표가 검찰에 출석한 마당에 체포동의안을 상정하는 것도 머쓱해졌습니다.

홍일표 새누리당 대변인은 '체포동의안의 전제가 되는 체포 사유가 없어졌다'며 사실상 체포동의안을 상정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습니다.

새누리당이 당황한 표정을 짓지만, 민주통합당은 다시 기세등등해졌습니다.

그동안 박지원 원내대표 문제로 대여 공세를 할 명분이 없었던 민주통합당은 당장 8월 임시국회를 소집해 민간인 불법사찰과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특검을 서두를 태세입니다.

박 원내대표를 둘러싸고 분분했던 당내 의견을 하나로 묶어내 대선 후보 경선과 대선 전략에 집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박지원 원내대표가 오늘 아침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박지원 / 민주통합당 원내대표
- "제가 검찰에 나갔을 때 10여 분의 의원들이 함께 가서 몇 분은 하루 종일 검찰청사에서 대기하면서 밤 9시부터 약 50~60명의 의원과 당직자 100여 명이 검찰청사에서 제가 수사받고 내려오기를 1시 20분까지 기다렸다. 저를 위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곧 민주당 단결의 힘 보여주는 것 같아서 12월 정권교체는 이런 치열한 단결부터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들도 한결 발걸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지난 한 달간 줄기차게 박지원 원내대표 문제 가 제기됐지만, 대선 후보들 누구 하나 똑 부러지게 말한 적이 없었습니다.

민심이 나빠지는데도 다들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박 원내대표로 상징되는 호남표를 의식해서였을까요?

아니면, 경선을 치르는 마당에 박지원 원내대표와 이해찬 대표를 비판해 봐야 좋을 게 없다고 판단한 걸까요?

어쨌든 박지원 원내대표의 검찰 출석으로 대선 주자들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경선에 임할 수 있게 됐습니다.

혹시 이 모든 게 박지원 원내대표의 전략이었을까요?

나이 일흔에 정치권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박지원 원내대표.

마치 부처님 손바닥 위 손오공처럼, 박지원 원내대표 한 사람의 원맨쇼에 검찰도, 정치권도, 그리고 언론도 끌려다녔던 하루였습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 김형오 / hokim@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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