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건강
[기자수첩] 엉뚱한 '저속 급발진' 사고 주장…이유 있네
입력 2012-06-01 17:10 
30일 운전자 박씨는 차에서 내리려다 황당한 사고를 일으켰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후 문을 열고 내리려고 했지만, 차는 그대로 천천히 전진해 미용실 실내까지 밀고들어갔고, 실내에 있던 손님과 종업원 등 4명이 다치는 사고였다. 이를 '급발진'으로 추정한 SBS의 '황당 보도'에 이어 '에쿠스 급발진, 미용실로 돌진' 등 선정적인 기사들이 꼬리를 물었다.

그러나 네티즌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사고 운전자는 '급발진'을 주장했지만, 이 동영상을 본 상당수 네티즌들은 오히려 운전자의 잘못이라 몰아세웠다.

사고 당시 차량 속도가 매우 느렸던 점과 브레이크 등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이번 사고는 '급발진'이 아니라 단순히 차의 변속 레버를 D에 놓은채 내리려다 차가 전진하면서 사고가 난 것이라고 본 것이다. 게다가 이 사고는 전적으로 운전자 과실이기 때문에 급발진을 주장하고 있는 운전자의 도덕성까지 문제 삼았다.

미용실을 들이받은 에쿠스 사고 하지만 이는 좀 더 심도 있게 살펴봐야 할 일이다. 해당 사고가 '급발진'은 아닐지라도, 운전자가 변속레버를 D상태에 놓고 내리는 일은 의외로 비일비재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소위 '김여사 확인 사살'이라는 이름으로 떠돌던 영상도 같은 양상이다. 그랜저를 몰던 여성 운전자가 1차 사고를 일으킨 후 놀란 마음에 변속기를 D모드로 그대로 놔둔채 차에서 내리는 바람에 사고 피해자를 2차례 가격하게 된 사고다.

'김여사 문워킹 댄스'로 알려진 우스꽝스런 영상도, 운전자가 변속기를 R(후진) 모드로 놔둔채 차에서 내리는 바람에 차가 도로를 가로지르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최근 BMW,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등 독일산 수입차들의 중형급 이상 모델에선 절대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BMW 3시리즈 이상 전차종, 벤츠 E클래스 이상 전차종, 아우디 A8 등 상위 모델) 변속기 레버가 D모드일때 운전석 문이 열리면 자동으로 P모드로 변경되는 안전 장치가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운전자가 몰던 차는 현대차 에쿠스로 가격이 6741만원~1억991만원이나 하는 고가의 차다. 그러나 이 차는 이런 기능이 아직 내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같은 어이 없는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앞서 '확인 사살'사고를 일으킨 차도 현대차 그랜저로 3048만원~4348만원이나 하는 차지만 역시 사고를 막는 기능이 없었다.

본지 조사결과 국산자동차 중 문을 열었을 때 자동으로 P모드로 변경되는 안전장치를 내장한 자동차는 기아차 K9 단 한대 뿐이었다. 이 장치를 이용하려면 전자식 변속을 하는 '시프트-바이-와이어'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 자동차 중에 이같은 변속 시스템을 장착한 차가 K9 뿐이기 때문이다.

현대차 제네시스도 시프트-바이-와이어를 도입할 예정이지만, 출시 시점이 여러 차례 미뤄지고 있다. 꼭 필요하다는 점은 알지만 우선 순위에서 밀려난 듯 하다. 국산차가 수입차 못지 않은 수준까지 발전했다고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김한용 기자 / whynot@top-rid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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