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 '광우병의 정치학'과 '4년 전 추억'
입력 2012-04-30 11:44  | 수정 2012-04-30 17:28
미국에서 발생한 광우병 문제를 현지 조사할 민관 합동조사단이 오늘(30일)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조사단의 얘기부터 들어보시죠

▶ 인터뷰 : 주이석 / 광우병조사단장
- "현재 미국에서 쇠고기가 생산돼 우리나라로 공급되는 전체적인 프로세스가 안전한지 철저하게 조사해 돌아와서 국민께 보고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벌써부터 논란이 큽니다.

광우병이 발생한 현지 농장은 아예 가지 않는데다, 여러 검역시설을 둘러본다 해도 수박 겉핥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벌써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지 않다는 주장하는 인사는 아예 조사단에서 빠진 것도 불신을 키우고 있습니다.

대형 마트에서는 미국산 쇠고기 판매량이 뚝 떨어졌고, 소비자들 불안은 커지고 있습니다.

설마 2008년 5월 광우병 촛불 사태가 4년 만에 재현되는 걸까요?

정부는 지난 24일 미국에서 광우병 젖소가 발견됐지만, 검역 중단과 수입중단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일부 언론과 야권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당시 정부가 신문에 냈던 광고 내용까지 끄집어 내며 검역주권을 포기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문성근 민주통합당 대표 권한대행의 말입니다.

▶ 인터뷰 : 문성근 / 민주통합당 대표 권한대행(4월27일)
- "국민께서 먹을거리 걱정사태 또다시 벌어졌다. 국민 건강보다 귀한 것 없다. 정부가 확실히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발병하면 즉각 수입 중지하고 수입된 물량 전수조사하겠다고 신문광고까지 했다. 국민께 거짓말했다. 정부가 나서서 국민께 사실을 명백히 고백해야 한다."

정부는 지난 2003년 캐나다에서 광우병이 발생했을 때도, 그리고 같은 해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했을 때도 검역과 수입을 중단했습니다.

특히 2007년에는 수입한 미국산 쇠고기에서 조그만 뼛조각이 발견됐을 때도 검역을 중단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번에는 검역 중단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까요?

표면적으로는 이번에 발생한 광우병 젖소는 127개월로 이 소의 가공육이 30개월 미만만 수입하는 우리나라에 들어올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정부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서규용 농식품부 장관의 말입니다.

▶ 인터뷰 : 서규용 / 농림수산식품부 장관(4월26일)
- "어떠한 정치적 고려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정부에서 검역을 최대한 강화해서 국민 건강에 문제가 없도록 하겠습니다."

과학적으로 놓고 봤을 때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니까 검역중단을 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정말 정치적 고려 따위는 하지 않은 걸까요?

서 장관의 말과 달리 청와대 안팎에서 나오는 말은 조금 다릅니다.

언론보도를 보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둘러싼 부정적 여론의 확산 배경에 '미국산이라는 점과 이명박 정부 반대라는 정치적 요소가 함께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광우병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야권과 비판 세력의 의도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그런데 이런 '불순한' 정치적 의도에 맞대응하는 것 역시 정치적 셈법은 아닐까요?

혹시 이번에 검역 중단조치를 내리면, 한미 동맹에 흠집이 가고, 이후 다시 수입재개를 하려면 2008년 촛불집회 같은 홍역을 다시 치러야 하지 않을까 걱정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안 그래도 레임덕으로 사실상 '식물 청와대'라는 말이 나오는 상황에서 미국산 쇠고기 문제가 또다시 불거지는 것은 청와대로서는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지 모릅니다.

문제는 여권입니다.

4년 전 청와대 편을 들었던 과거 한나라당과 지금 새누리당은 완전히 다른 듯합니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의 말입니다.

▶ 인터뷰 : 박근혜 / 새누리당 비대위원장(4월27일)
- "정부가 국민의 위생과 안전보다 무역마찰을 피하는데 더 관심이 있다는 오해를 받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역학조사라든가 이런 것을 통해서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확실한 정보를 확보할 때까지 검역을 중단하고, 최종 분석결과 조금이라도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고 밝혀지면 수입도 중단해야 합니다."

박근혜 위원장의 이 말도 청와대가 지적한 것처럼 정치적 의도에서 나온 것일까요?

이명박 정부와 차별화하려는 선 긋기의 연장 선상일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보십니까?

박근혜 위원장 역시 4년 전 촛불 시위를 지켜봤고, 그래서 미국산 쇠고기가 가진 폭발성을 잘 알고 있을 듯합니다.

박 위원장에게 미국산 쇠고기 문제는 정말 8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선과는 무관한 문제일까요?

어쨌든 정치권 안팎에서는 미국산 쇠고기 문제로 박근혜 위원장과 이명박 대통령의 사이가 더 멀어졌다고 보고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결별 수순에 들어간 것으로 봐야 한다는 말도 들립니다.

결국, 미국산 쇠고기와 광우병 문제는 과학적 문제이고 국제규범의 영역이지만, 적어도 대선을 코앞에 둔 우리나라에서는 정치적 문제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파이시티 인허가 문제로 사면초가에 몰린 이명박 대통령과 거리두기를 통해 미래 권력을 잡아야 하는 박근혜 위원장, 그리고 총선 패배의 반전을 꾀해야 하는 야권이 얽히고설킨 그런 정치 말입니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는 그런 정치의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 김형오 / hokim@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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