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 'MB의 멘토' 최시중, '단호한' 박근혜
입력 2012-04-24 13:29  | 수정 2012-04-24 17:31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정치권에 다시 돈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 돈 바람과는 규모가 다른 듯합니다.

검찰은 내일(25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을 소환해 조사할 방침입니다.

최 전 위원장이 서울 양재동 복합물류단지인 파이시티 시행사 전 대표 이모씨 측으로부터 인허가 로비 명목으로 수억 원을 받은 혐의입니다.

파이시티 전 대표 이씨가 최 전 위원장의 고향 후배인 브로커 이 모 씨에게 11억 원을 줬고, 이 돈의 일부가 2007년 대선 당시 최 전 위원장에게 들어갔다는 겁니다.

파이시티 사업은 양재동 화물터미널 자리에 국내 최대 규모의 단일 복합유통센터를 짓는 사업입니다.

2006년 용지매입이 끝났지만, 건축허가가 나지 않아 시행사인 파이시티의 전 대표 이 모 씨는 극심한 자금난을 겪었습니다.


이때 브로커 이 모 씨가 이 전 대표에게 건축허가를 받게 해주겠다며 접근했고, 최시중 전 위원장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을 소개해줬습니다.

브로커 이 씨는 경북 영일군의 같은 동네에서 최 위원장과 함께 자랐고, 집안끼리 서로 알고 지낼 정도로 친분이 두터운 사이였습니다.

최시중 전 위원장은 브로커 이씨로부터 돈 받은 사실을 순수히 시인했습니다.

브로커 이 씨의 운전기사가 최 전 위원장이 돈이 든 보자기를 받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었다는 언론 보도까지 나온 터라 돈 받은 사실을 부인하기 어려웠을 법합니다.

최 전 위원장은 그러나 이 돈이 파이시티 인허가를 해주기 위한 대가성은 아니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받은 돈은 지난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여론조사 비용으로 썼다"

갑자기 문제가 복잡해졌습니다.

최 전 위원장의 개인적인 금품수수 혐의에 그칠 수도 있었던 수사가 2007년 대선 자금 수사로까지 확대될 수 있는 실마리가 된 셈입니다.

바로 이명박 대통령을 겨냥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최시중 전 위원장은 왜 스스로 '2007년 대선' 얘기를 꺼냈을까요?

최시중 전 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로 불립니다.

이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과는 같은 고향으로 50년 지기인데다, 2007년 대선 캠프에서도 핵심 6인회 멤버로 선거를 진두지휘했습니다.

이 대통령 취임과 함께 방송통신위원장을 재임했고, 재임 중에는 '방통대군'이라 불릴 정도로 막강한 힘을 자랑했습니다.

이런 그가 이 대통령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대선자금 수사의 실마리가 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는 것에 대해 의아하다는 반응도 있습니다.

이 대통령과 사이가 틀어진 것인지, 아니면 돈 받은 시점으로부터 5년이 지나 공소시효가 끝난 것을 알고 의도 없이 한 돌출발언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쨌든 최 전 위원장의 말로 이명박 정부는 다시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청와대는 이 대통령이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는 말을 직접 할 정도로 대선 과정에서 불법자금을 받지 않았다고 자부해왔기 때문입니다.

청와대는 당혹감 속에 일단은 검찰 수사를 지켜보겠다는 태도입니다.

민주통합당은 당장 검찰의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김재윤 민주통합당 의원의 말입니다.

▶ 인터뷰 : 김재윤 / 민주통합당 의원
- "최시중 위원장이 언론과 여론조사를 담당했는데 불법 자금으로 대선 여론조사 비용으로 썼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뒤에는 누가 있겠는가. 이명박 대통령이 있다. 결국, 지난 대선은 반칙이었고 무효임을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이 입증한 것이다. 이에 대해 검찰은 철저하게 밝혀야 한다. 대선 자체가 공정성을 상실하게 된다면 결국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는 국민으로부터 위선일 뿐만 아니라 왜곡이고 실질적으로 국민의 뜻을 반영하지 못한 대선 결과임이 입증되는 것이다."

통합진보당도 이 대통령이 정권 차원의 부정·비리를 도려내고 일벌백계하지 못하면 남은 임기를 보장받을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압박했습니다.

야권은 이 문제를 2007년 대선자금 수사까지 확대시켜 대선에서 이명박 정부 심판론에 다시 불을 지피려는 걸까요?

혹시 한발 더 나아가 2007년 대선 경선을 했던 박근혜 비대위원장도 겨냥하는 것일까요?

그러면 이 문제를 대하는 새누리당의 태도는 어떨까요?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어제 강원도를 방문한 자리에서 단호한 처리를 주장했습니다.

직접 들어보시죠

▶ 인터뷰 : 박근혜 /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법에 따라서 모든 것을 처리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선 그 부분에 대해서 누구나 예외 없이 책임질 일은 져야 하고, 또 문제가 된 부분은 법적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을 아끼던 새누리당은 박 위원장의 발언이 알려지자 뒤늦게 논평을 내놓고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습니다.

친박계 역시 최시중 수사 건은 자신들과 관계없다며 철저하게 거리두기를 하는 모습입니다.

자칫 검찰의 수사가 2007년 대선 자금 전반에 대한 수사로 번지면, 당시 이명박 캠프 측과 경선을 벌였던 박근혜 캠프에도 불똥이 튈 수도 있다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일까요?

당시 경선이 치열했던 만큼, 양 캠프 모두 많은 돈을 썼을 것이라는 얘기는 오래전부터 여의도 정가에 떠돌았습니다.

어느 쪽이 됐든 이 돈의 출처를 검찰이 들여다본다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은 아닐 겁니다.

그래서 친박계 역시 신중할 수밖에 없는 듯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박 위원장이 단호한 태도를 보인 만큼 새누리당은 정공법을 택하지 않을 수 없게 됐습니다.

이명박 정부와 거리두기를 통해 이번 총선에서 야권의 정권 심판론을 무력화한 새누리당으로서는 이번 수사에 대해 미온적 태도를 보일 수 없는 처지이기도 합니다.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정부 감싸기로 비치면 안되니까 말이죠.

어쨌든 국민은 다시 검찰의 칼끝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청와대와 친박계 역시 검찰 수사를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2007년 대선자금이라고 하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지, 또 그 상자 안에 무엇이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에서 말입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 hokim@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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