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국제수로기구(IHO)의 1차 총회가 열렸다. 각국 대표가 모여 전 세계 바다의 명칭을 공식적으로 정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일제 치하에 있던 우리나라는 대표를 보낼 수 없었고 일본 대표만이 참석, 동해는 일본해로 공식 명칭이 정해졌다. 일제강점기라는 뼈아픈 역사 속에서 우리는 주권과 함께 동해의 이름마저 빼앗긴 것이다.
해방이 되어 주권은 되찾았지만 동해라는 이름만은 아직도 되찾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오는 23일, 모나코에서는 제 19차 IHO 총회가 열릴 예정이다. 이번 총회에서는 세계 바다의 공식 명칭이 기록된 ‘해양과 바다의 경계 개정 작업이 이뤄질 예정이어서 회의의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조사 결과 일본이 일본해 단독 표기를 주장하는 근거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었다. 첫 번째는 1602년에 제작된 마테오 리치의 곤여만국전도를 비롯해 근대 세계 지도 대부분이 일본해라는 표기를 쓰고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미 보편화된 일본해 명칭을 동해 단독 표기나 동해, 일본해 병기로 바꿀 경우 선박들의 운항 등에 심각한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이 가운데 세계를 향해 ‘동해를 외치는 이들이 있었다. 5명의 한국 청년들이다. 지난해 12월 30일, 다섯 명의 한국 청년들이 캐나다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스스로를 ‘동해 수문장이라고 부르는 이 청년들은 캐나다 밴쿠버를 시작으로 북미와 유럽의 9개국 20개 도시를 순회하며 동해 표기를 바로잡기 위한 홍보와 서명활동을 펼치고 있다.
동해 수문장 다섯 청년은 6개월간의 준비 끝에 학교를 휴학하고 4개월간의 대장정에 올랐다. 그러나 전체 경비의 30%만 후원을 받았을 뿐, 맨 몸으로 떠나다시피 한 그들의 여정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아르바이트로 경비를 충당하고 때로는 기차역에서 노숙을 했으며, 거리 홍보를 제지하는 경찰과 충돌을 빚기도 했다. 젊은이들은 미국 워싱턴과 이탈리아 로마, 모나코 현지 취재를 통해 일본에 빼앗긴 동해의 이름을 되찾겠다는 신념 하나로 낯선 외국 땅을 누비고 있었다.
이 뿐 아니라 재미 한인 사회에서도 미국 정계를 움직이고 있었다. 지난해 8월, 미 국무부는 그동안 유지해온 ‘일본해 단독 표기 정책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IHO에 공식 전달했다. 국제 사회에서 엄청난 발언권을 가진 미국 정부의 이러한 발표에 교민 사회는 경악했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미국 전역의 한인회들은 미국 정부를 대상으로 전방위 민간 외교를 펼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미국의 교과서 개정을 위한 법안 마련이다. 올 초 버지니아 주에서 처음 상정된 법안이 8:7로 아깝게 부결되기는 했지만 현재 미국 내 주요 7개 주에서 올해 안에 법안이 상정될 계획이다. 이와 동시에, 현지 교민은 물론 이민자 커뮤니티와의 공조를 통해 백악관과 주 의회, 행정부를 압박하는 서명운동 및 로비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 결과, 뉴욕 주에서는 커트 캠벨 미 국무부 차관보와 도널드 맨줄로 미 연방하원 아태환경소위원회 위원장으로부터 동해와 일본해 병기에 대한 긍정적인 답변을 이끌어냈으며 2만 5천 명의 대규모 서명을 통해 백악관 면담까지 성사시켰다.
결전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23일부터 닷새 간 모나코에서는 IHO 제 19차 총회가 열려 전 세계 바다의 공식 명칭이 수록된 ‘해양과 바다의 경계 개정안을 논의한다. IHO는 1953년 3차 개정판이 나온 이래 59년간 일본해 단독 표기를 인정해왔다. 과연 이번 총회에서는 어떤 결정이 내려질 것인지 국민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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