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 종목의 시축, 시투 등이 장내 이벤트에 그치는 데 반해 프로야구의 시구는 몇 년을 두고 회자될 정도로 파급이 크다.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인 프로야구의 위상과 무관치 않다.
한국 프로야구의 첫 시구자로 마운드에 오른 이는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다. 1982년 3월 27일 서울 동대문구장에서 열린 MBC청룡(LG트윈스의 전신)과 삼성라이온즈의 개막전에서였다. 이후 80년대 후반까지 시구는 정치인들의 차지였다.
연예인 최초로 시구 마운드를 밟은 주인공은 배우 강수연이다. 1987년 영화 ‘씨받이로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월드스타로 발돋움한 그녀는 한국 영화계에 독보적인 히로인이었다.
강수연은 1989년 4월 8일 해태(기아타이거즈 전신)와 빙그레(한화이글스 전신)의 광주 무등구장 개막전에서 시구를 했다. 이때부터 주로 연예인들이 프로야구 시구를 맡았다. 강수연은 2008년 10월 9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와 삼성의 준플레이오프 시구를 위해 20년 만에 마운드에 올라 팬들을 감회에 젖게 했다.
연예인 시구는 홍수아 이전과 홍수아 이후로 나뉜다. ‘홍드로 홍수아는 프로야구 개념시구(올바른 복장에 구질까지 좋은 시구)의 시초다. ‘홍드로란 2005년 그녀의 첫 시구가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역동적 투구폼과 닮았다 해서 팬들이 붙여준 애칭.
기존의 스타들이 몸매를 한껏 드러낸 핫팬츠에 하이힐 차림으로 엉성하게 공을 던졌던 것과 다르게 홍수아는 긴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포수의 미트에 강속구를 정확히 꽂아 넣어 단숨에 프로야구계의 명사가 됐다. 연예인으로서의 호감도까지 더불어 상승했음은 물론이다.
이어 랜디신혜(랜디 존슨 + 박신혜), 윤실링(윤정희 + 커트 실링), 놀란스테파니(놀란 라이언 + 스테파니), BK유리(김병현 + 소녀시대 유리) 등 수준급 시구자들이 속속 등장했다. 최근에는 가녀린 연예인들이 투구 연습에 열중하는 진풍경도 이따금 벌어진다.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로 스타덤에 오른 아역배우 김유정이 생애 첫 프로야구 시구자로 나섰다.
김유정은 8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과 넥센의 경기에 앞서 마운드에 올라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홈팀 두산의 유니폼을 레이어드룩으로 소화한 김유정은 노란 스키니 팬츠를 매치해 봄의 상큼한 기운을 더했다. 여기에 양갈래 머리가 특유의 앙증맞은 매력을 돋보이게 했다. 시구 내용도 준수했다.
공교롭게 이날은 강수연이 처음 시구를 했을 때와 같은 날짜였다. 김유정은 6살 때 영화로 데뷔해 TV드라마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4살 때 영화로 데뷔해 아역배우로 먼저 TV드라마에서 활약한 강수연과 행보도 비슷하다.
프로야구 시구자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김유정이 훗날 대선배 강수연을 넘어설 수 있을지, 결과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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