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의 그 복잡 미묘했을 심경을 누가 감히 짐작할 수 있을까. 눈물을 삼킨 정선희의 용기에 응원과 격려가 쏟아졌고, 이후 꾸준히 접한 그녀의 음성은 차츰 원기를 회복해가는 그 자신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는 홀로서기를 했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12년 봄, 정선희는 MBC ‘우리들의 일밤-남심여심으로 4년 만에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에 복귀했다. 컴백 및 프로그램 홍보에 방점을 둔 인터뷰를 진행하자 했지만 지난 시간 동안의 우여곡절을 묻어버리고 지나가기엔 사연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앞섰다.
하지만 애써 그 사연을 들춰낼 필요는 없었다. 흘러간 시간만큼 상처도 아물었지만 모든 결정 그리고 행동이 신중할 수 밖에 없었을 터, 자신을 향한 따가운 시선이 여전히 만만치 않음을 인지하고 있는 가운데 TV 복귀를 결심한 그녀였기에 일부 대중의 눈초리를 의식한 질문을 던질 이유도 없었다.
당시 7개월의 공백이 대중에겐 짧게 느껴졌겠지만 내겐 7년 같았어요. 슬픔도 슬픔이지만, 일을 멈춘 순간부터 느낀 무력감, 내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막연한 불안감이었죠. 그때 정선희는 바닥이었는데, 놀랍게도 SBS 라디오에서 같이 하자고 제안해줬어요. 동아줄 잡듯 시작했죠.”
이후 정선희는 3년간 라디오를 통해 매일 청취자들을 만나 오면서 하루하루 근력을 키워갔다”. 곳곳이 상처투성이였지만 라디오의 힘으로 차츰 치유된 정선희는 어느새 이렇게 자연스럽고 밝은 미소로 TV 시청자들을 만나고 있다.
지금까지는 정선희라는 존재, 이름 자체가 그 분들에게 부담이었던 것 같아요. 라디오와 달리 TV는 왜곡의 여지도 있고요. 철문 닫히든 닫혀버리는 세상이란 걸 배웠고, 그걸 여는 것도 내 몫이구나 싶었죠. 세상 탓만 할 순 없는 거니까요.”
공백 기간 중 TV를 보다 모자이크 처리가 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는 정선희는 난 사고를 당한 사람인데, 무슨 범법행위라도 한 건가 싶었다. 시간이 지나고 어느 순간 자료화면이나 케이블 재방송에 내 모습이 나오고 있는데 그것만으로도 고맙더라”며 씁쓸한 미소를 보였다.
불가피한 공백이었지만 그 기간이 길어질수록 활동에 대한 조바심이 나지 않을 수 없었을 터. 그나마 스스로 다행이라 생각한 점은 무명의 기억을 잊어버리기 전 반짝 인기를 얻었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라” 활동 공백에 대한 충격이 상대적으로 적을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타고난 낙천적인 성격이다.
작은 일을 깊게 파고들어 상처로 만드는, 드라마로 만드는 건 싫어요. 라디오 진행하다 보면 더 힘든 사람들도 세상에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은 그 상황을 이겨나가고 또 저를 일으켜 세워주세요. 더 이상 어리광 부릴 수 없는 거죠.”
라디오는 그 스스로 끊임없이 반추하게 만드는 거울과도 같은 존재였다. 한 때 라디오에서의 발언으로 네티즌들의 뭇매를 맞기도 했지만 가장 힘든 시기 그녀를 끌어안아준 것 또한 라디오였다. 때문에 정선희는 인터뷰 내내 라디오 편애성(?) 발언을 끊임없이, 자신 있게 늘어놨다.
현재 ‘남심여심에서 정선희의 롤은 자칭 ‘세터다. 19년차 예능 베테랑으로서 이제 갓 예능에 뛰어든 새내기 후배들에게 한 방(!)을 날릴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다. 정선희는 그동안 제 의지와 관계 없이 슈터 역할을 해왔는데 지금에야 비로소 나에게 꼭 맞는 포지션을 찾았다”며 싱긋 웃었다.
이것저것 하고 싶은 건 많지만 현재 가장 큰 고민은 체력이다. 특히 ‘남심여심의 경우 육체적 소모가 큰 프로그램이다 보니 밀려나지 않기 위해선 체력 관리가 중요하다고. 건강을 위해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은 필수다. 덕분에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 중임에도 ‘아침형 인간 생활습관을 유지하고 있다.
정선희가 방송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꿈은 생각보다 소박했다.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 내가 당했던 (사고의) 느낌을 잊지 않으려 해요.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죠. 누군가 내가 웃고 있는 모습을 보고 ‘말도 안 되게 정선희도 일어나는구나라고 생각해 주신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죠.”
한창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절, 불의의 제동이 걸리기 전까지 정선희는 앞만 보고 달렸다. 미처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탓일까. 정선희는 상처를 겪은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된 소박한 행복의 소중함을 담담하게 고백했다.
예전엔 매일 다니는 길인데도 우리 집 아파트 화단에 목련이 피는 지 3년간 몰랐던 적이 있었요. 그런데 어느 해 보니 목련이 너무 섹시하게 피어있더라고요. 그걸 느끼는 내가 너무 행복해서 엉엉 울었어요. 그런 감정 하나하나를 솔직하게 부딪치며 사는 게 진짜 사는 것 아닐까요. 요즘은 내가 느끼는 감정을 더 솔직하게 느끼며 살려 하고 있어요.”
유난히 늦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탓에 아직 올해 봄꽃은 개화하지 못한 상황. 아무쪼록 정선희가 올해는 예쁜 꽃을 더 많이 보길 기원해본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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