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 그의 판단처럼 훤(조선시대 가상의 젊은 임금 역)의 매력은 온전히 김수현(24)에게 녹아들었다. 시청률 40%를 넘기며 국민 드라마로 등극한 해를 품은 달(이하 해품달)이 열흘 전 종영했지만 그의 인기는 여전히 식을 줄 모른다. 종영 후 밀려든 CF가 10편을 넘고 그가 부른 드라마 주제곡마저 음원사이트를 휩쓸고 다닐 정도다. 과연 김수현 시대다.
지난 23일 오후 서울 필동 매경미디어센터에서 그를 만났다. 어디서 어떻게 알았는지, 그가 등장하자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건물 입구부터 아수라장이 됐다.
사진을 찍는 동안 그는 알 수 없는 소리를 흥얼댔다. "표정 지을 때 입모양을 만들려고 부르는 무의미한 노래"라고 했다.
다소 엉뚱해 보이던 그는 인터뷰가 시작되자 느릿느릿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의 말엔 쉼표가 별로 없었다. 끝까지 들어야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있었고 다른 말을 하는 듯하다가도 그 속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담아냈다.
"기획안을 보고 원작을 읽었어요. 원작 속의 훤이 정말 다양한 색의 매력을 가지고 있어서 이를 잘 소화하기만 한다면 그 매력이 제 것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사실 해품달이 기대작은 아니었다. 주연 캐스팅ㆍ연기력 논란도 있었다.
"아역 배우들이 굉장히 잘해줬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죠. 성인으로 넘어가면서 갑자기 화면에서 제 얼굴이 나오니까 저도 어색하더군요. 아역 배우인 진구 덕분에 집중해서 드라마에 빠져들 수 있었어요."
드라마로 인해 김수현은 이른바 아줌마 팬을 대거 거느리게 됐다. "나이는 어리지만 부인이 있는 조선시대 임금 역이었잖아요. 그래서 많은 여성 분들이 감정을 이입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고충은 없었을까. "초반에는 제 연기가 한계에 부딪힌 것 같아서 좌절했어요. 훤은 왕으로서 누군가에게 명령을 하고 사람들을 조종하고 정치도 해야 하는 데다 심리전에서 한 수 두 수 앞을 볼 줄 알고 기싸움을 해야 했죠. 제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현장에서 위축된 적도 많았고, 막막했고 답답했고 죄송했어요."
힘든 기간을 그는 동료와 선배들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그는 지금에야 "그때 조금 더 고생했어도 되지 않았나 싶다"며 웃었다.
상대역 한가인과의 실제 나이 차이 논란과 관련해 그는 "가인 누나와 저는 둘 다 초면에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 정말 어색했다"며 "그러다 마지막에는 정말 훤으로서 연우에게 기대서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사랑에 있어서는 훤처럼 순수하고 적극적이라고 했다. 그의 이상형이 궁금했다.
"좌우명이 전체를 보자 시야를 넓히자 이런 겁니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그림을 느끼는 걸 좋아하는데 연애도 마찬가지예요. 주위 사람들로부터 예쁘다 잘 어울린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이제 20대를 대표하는 남자 배우가 됐다. 라이벌 배우를 꼽아 달라고 하자 "연기자들 사이에는 라이벌이 없고 어떻게 호흡하고 교감하느냐로 경쟁해야 한다고 배웠다"는 답이 돌아왔다.
"제 나이 또래 남자 배우들이 다 모여서 소년과 남자의 경계에 서 있는 느와르 작품을 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런데 제작비가 엄청나겠죠(웃음)."
그의 아버지는 1980년대 활동했던 그룹사운드 세븐 돌핀스의 리드 보컬인 김충훈 씨다. 그래서인지 그는 지난해 출연한 드림하이에 이어 이번 드라마의 주제곡도 불렀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고요, 노래에 대한 욕심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이른 거 같아 연기를 먼저 하고 싶습니다."
차기작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7월에는 그를 스크린에서 볼 수 있다. 최동훈 감독의 영화 도둑들로 드라마 이전에 촬영을 끝낸 작품이다.
그에겐 첫 상업영화 데뷔작이다. "영화 촬영 내내 들떠 있었어요. 왕에서 도둑으로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가 가고자 하는 방향은 어디일까. "30대까지는 방향을 결정 못할 것 같아요. 지금은 도전자니깐 상대를 가리지 않고 덤벼볼 생각입니다."
[김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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