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 이재오 '살린' 박근혜의 복잡한 속내
입력 2012-02-27 13:09  | 수정 2012-02-27 13:45

새누리당이 오늘 1차 공천자 21명을 확정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을 만든 6인회 핵심 멤버로, 새누리당 비대위에서 'MB정부 실세 용퇴론'을 꺼낸 것도 이재오 의원을 겨냥했기 때문입니다.

이때문에 이재오 의원의 공천이 발표되자 당 비대위가 강력 반발하는 모습입니다.


공천위는 이재오 의원이 나온 은평을이 단수신청 지역인데다 이 의원이 도덕적으로 결격 사유가 없고,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야권 후보에 비해 경쟁력이 높게 나왔다고 공천 이유를 밝혔습니다.

그러나 비대위는 MB정부 핵심 실세 용퇴론을 주장하며 재심의를 요구했습니다.

특히 공천위가 비대위 최종 의결 전에 명단을 발표함으로써 두 위원회가 정면 충동하는 양상입니다.

그렇다면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이런 논란이 일것을 알면서도 왜 친이계의 대표인 이재오 의원에게 공천을 줬을까요?

오늘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말입니다.

▶ 인터뷰 : 박근혜 /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 "공천 기준을 놓고 볼 때 야당은 정체성 공천 또는 코드 공천이라고 한다면 우리 새누리당은 도덕성 공천, 일꾼 공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1차로 선정될 후보를 비롯해 우리 새누리당의 후보들은 단지 선거 승리만이 목표가 아니라 정치를 바꾼다는 보다 큰 목표를 갖고 열심히 뛰어주기를 당부합니다."

'도덕성 공천', '일꾼 공천'이라는 말과 함께 '정치를 바꾼다'는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이재오 의원이 이 기준에 맞다고 판단할 걸까요?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얼마 전 공천 기준으로 국민 눈높이를 강조했습니다.

▶ 인터뷰 : 박근혜 / 새누리당 비대위원장(2월16일)
- "결국, 어떤 사람들이 그 일을 해낼 것인가, 사람을 통해 보여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를 갖고 싸울 사람이냐, 새 세상을 만들 사람이냐를 선택해야 한다"

'과거를 갖고 싸울 사람'이란 대목에서 이재오 의원을 비롯한 친이계 핵심 인사들의 공천 탈락을 예상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상징'이라 생각했던 이재오 의원은 오늘 공천을 받았습니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공천 기준이 바뀐 걸까요?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이재오 의원을 공천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가 친이계의 핵심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이재오 의원을 탈락시켰다가는 친이계의 집단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친이계와 이명박의 사람들이 집단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하면 안 그래도 새누리당에 불리한 선거구도는 더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친이계 핵심이라는 것이 이재오 의원을 죽일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살린 셈인 됐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친이계 의원들도 정말 계파와 무관하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이재오 의원의 측근인 진수희 의원이 얼마 전 뉴스 M에 출연한 한 말입니다.

▶ 인터뷰 : 진수희 / 새누리당 의원(2월20일)
- "저는 이제 새누리당에 계파가 있는지 실체가 있는지 되묻고 싶을 정도로 그것은 (친이계와 친박계) 없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 의원 말처럼 친이계 의원들도 이재오 의원처럼 살아남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지난 9일 뉴스 M에 출연한 이상돈 새누리당 비대위원의 말입니다.

▶ 인터뷰 : 이상돈 / 새누리당 비대위원(2월9일)
- "한나라당이 사실상 지휘부가 붕괴하고 새로 태어난 새누리당이 정강 정책을 대대적으로 쇄신했는데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납득하게 설명할 방법이 저는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새누리당은 이재오 의원을 살림으로써 오히려 다른 친이계 의원들을 대거 물갈이할 수 있는 명분을 얻었다고 보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재오 의원을 살림으로써 다른 친이계 의원들을 물갈이해도 '친이계 공천학살'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인지 당내에서는 벌써 공천을 둘러싼 파열음이 나오고 있습니다.

친이계 인사로 꼽히는 정몽준 전 대표는 트위터에 '걱정의 목소리가 들린다. 소통이 안된다. 특정인지 좌지우지한다는 얘기가 나온다'며 '4년 전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오늘 새누리당의 1차 공천 확정자가 단수 공천 신청지역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동작을'이 빠졌다 치더라도, 정몽준 전 대표로서는 기분이 상할 법합니다.

6선 의원인데다 유력한 대선후보인 자신 보고 이름도 낯선 정치 신인들과 당내 경선을 하란 뜻일 수 있으니까요.

지역구인 경기 의왕 과천이 전략지역으로 지정된 또 다른 친이계 핵심인 안상수 전 대표도 반발하고 있습니다.

안상수 전 대표의 기자회견 내용입니다.

▶ 인터뷰 : 안상수 / 새누리당 의원
- "이길 수 있는 후보, 경쟁력 있는 후보가 있는 지역을 전략지역으로 선정한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안상수보다 경쟁력이 뒤쳐지는 후보가 선정된다는 것은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조치이다."

안상수 의원은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무소속 출마 가능성도 열어뒀씁니다.

이재오 의원을 살린 만큼 정몽준 전 대표나 안상수 전 대표 등 다른 친이계 핵심인사들이 자신들이 공천에서 탈락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기우일까요?

그동안 박근혜 비대위원장과 당 지도부를 비판했던 쇄신파인 정두언 의원도 공천 걱정을 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정두언 의원이 어제 한 말입니다.

▶ 인터뷰 : 정두언 / 새누리당 의원(2월26일)
- "지금 진행되는 여당의 공천 과정은 소통은 커녕 불통을 넘어 먹통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공천 과정에 특정 계파 이외에는 접근이 차단되고 있다"

당내에서는 누구누구는 이미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얘기까지 떠돌고 있습니다.

공천 불가론에 거론되고 있는 인사 가운데 상당수는 친이계입니다.

정말 이재오 의원을 제외한 다른 친이계는 공천에서 대거 탈락할까요?

이재오 의원을 살렸지만,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생각과 달리 다른 친이계 의원들의 불안은 더 커지고 있는 셈입니다.

만일 지금의 불씨가 더 커져 공천 갈등이 표면화한다면 '새누리당은 역시 어쩔 수 없다'는 비난에 휩싸일 수밖에 없습니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고민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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