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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식·하정우씨, 1초만 더!” 소리칠 수 있는 남자[인터뷰]
입력 2012-02-23 08:52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감독 윤종빈)에서 조직폭력 두목 최형배를 연기한 하정우가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김판호(조진웅)의 머리를 질질 끌고 가 맥주병을 내리치는 인상적인 장면. ‘반달 익현을 연기한 최민식이 주인공인 영화에서 하정우라는 이름이 괜히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시작하는 신이다.
물론 배우들의 연기가 좋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장면을 캐치한 순간 포착력에도 관심이 간다. 각 인물의 살아있는 표정과 영화 촬영 현장의 분위기를 잡아내는 직업. 스틸작가 조원진(39) 스튜디오박스 실장이 하는 일이다. 낯선 직업이지만 영화 촬영 내내 감독 및 스태프, 배우들과 동행한다.
최민식과 하정우가 불꽃 튀는 연기 대결을 펼치고 감독의 컷 사인이 났을 때, ‘1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할 수 있는 존재가 조 실장이다. 현장에서 스틸작가는 ‘갑이 아니지만 이 영화의 표현을 빌면 살아있네~!”라고 할 수 있는 사진을 얻기 위해 당당히 요구할 수 있다. 조 실장은 솔직히 우리가 메인은 아니니까 쉬는 시간에 배우들에게 정중히 부탁을 하며 1초의 중요성을 설명한다”며 연기를 1초 더 해주는 건 정말 고마운 일”이라고 웃었다.
치열하게 돌아가는 현장에서 조 실장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시간은 한정돼 있다. 신이 끝나고 컷 소리가 들릴 때, 리허설 할 때, 주변에 시끄러운 소음이 있을 때, 따로 시간을 내 스틸용 사진을 찍을 때 정도다. 본 촬영에서는 소리 때문에 셔터를 거의 누를 수 없다. 얼마 안 돼 보일 수도 있지만 스틸작가는 60회차 촬영이 진행되면 다 참석, 현장의 모든 것을 찍는다. 분량은 약 2만 컷 정도. 그 중 정말 괜찮은 사진 100여장이 발행된다.

더 쉽게 설명하자면 영화 촬영 현장 공개 사진이나 영화 포스터가 공개됐다는 언론보도용 자료들에 쓰이는 사진들이 스틸작가인 조 실장의 ‘작품들이다.
햇수로 9년차인 조 실장은 이제는 배우들이 ‘1초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에 그런대로 촬영이 수월하다고 했다. 언제, 어떤 아름다운 장면이 나올지 모르니 ‘매의 눈으로 현장을 지켜보며 촬영 본능을 발휘해야 하지만 말이다.
제가 찍은 기록들이 인쇄돼 다른 사람들이 보고 그 현장이 남겨지는 게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어요. 현장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모두 담아내는 건 저 밖에 없잖아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그 환상적인 공간과 시간 안에서 현장을 기록하는 게 감사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해요.”(웃음)
배우 오지명이 연출한 2004년 영화 ‘까불지마부터 이 세계에 들어왔다는 그는 배우 하정우와 유독 인연이 깊다. 영화 ‘시간에서 호흡을 맞췄고, ‘황해, ‘의뢰인, ‘범죄와의 전쟁 등 내리 3편에서 다시 만났다. 가장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고 칭찬할 수밖에 없단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처음 김기덕 감독의 ‘시간 촬영 현장에서 만났을 때였죠. 당시 김 감독님의 조연출이었던 장훈 감독과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정우씨가 연기를 잘하는 것을 알겠다고 했어요. 김기덕 감독님 영화는 현장 편집 없이 배우들이 모든 것을 머리에 두고, 감정까지 잡아 연기하거든요. 장훈 감독이 나중에 편집을 하는데 연기가 딱딱 맞아 떨어지는 것에 놀랍다고 했어요. 저도 그렇게 느꼈죠.”
이 세계에 있는 동안 꼭 작업하고 싶었던 배우로 최민식을 꼽은 그는 원을 풀었다고 했다. 누구나 인정하는 대한민국 대표 배우인 최민식의 열혈 팬임을 자처한 그는 최민식의 작품을 거의 다 봤다. 다만 리허설이 많이 없었던 것을 아쉬워했다.
최민식 선배가 연기할 때는 연습이 거의 없거든요. 각 컷마다 표정과 연기가 지나가고 있는데 셔터를 못 누르니 그 순간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그래도 잡아낸 표정을 보면 와~ 근육들이 살아 움직이며 나오는 표정이 예술이죠. 조각 외모에서 나올 수 없는 아우라가 있거든요.”(웃음)
‘비몽에서 함께 한 오다기리 조에게는 어떤 컷이든 모든 게 다 멋졌다”고 기억했고, 내년 개봉 예정인 영화 ‘회사원에서 소지섭과 함께 한 소감은 그냥 그대로 ‘간지다. 그런 사람을 찍는 건 사진가에게 축복”이라고 좋아했다.
조 실장은 잡지 ‘주니어의 사진 기자였다. 영화 스틸 일을 해보고 싶지 않느냐는 동료의 추천에 뛰어들었다. 이런 분야가 있는 지도 몰랐지만, 기록으로 뭔가를 남기는 것을 좋아하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서 시작했다.
다른 스태프와 달리 배급사 및 홍보마케팅사와 계약을 하는 스틸 작가. 현재는 촬영 카메라의 성능이 워낙 좋아져서 스틸작가가 있어도, 없어도 그만일 수도 있다고 아쉬워했다. 하지만 감독이 연출하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장면과 다른 관점으로 중요한 컷을 찍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른 각도의 영상이 전달되는 게 달라지는 건 당연하다.
소박하다고 할 수 있지만 자신이 찍은 것을 바탕으로 전시회를 하는 게 목표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일일 수 있지만 기록하는 게 좋았다는 그는 열정과 사명감으로 일한다. 십 수편의 영화 스틸 컷을 찍은 그가 훗날 공개할 사진에는 많은 이야기가 재미있게 담겨 있을 것 같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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